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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Jun 16. 2023

길고 긴 터널을 지나며

누군가에게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기르기 위한 시간 #심리상담후기



2021년 10월 텀블러(Tumblr)에 작성했던 글을 가져오면서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올해 6월 말부터 시작된 호주의 코로나19로 인한 두 번째 락다운. 처음에는 반가웠다. 엄청난 양의 대학원 과제를 일과 병행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락다운도 정부 지원금도 모두 반가웠다. 허용되는 것은 5km 이내 반경에서 식료품 쇼핑 하는 것과 1시간 이내의 운동뿐. 다른 이들을 만날 수도 없고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만 허락된다. 그래서 초기 락다운에 우리는 서로의 집에 오고 갈 수 없는 형편이 되어 (서로 이외에 다른 사람을 접촉하면  안 되므로) 각자가 사는 곳의 중간지점에서 만났다. 운동도 하고 커피도 테이크어웨이를 해서, 할 수 있는 걸 하며 이 휴식을 제대로 누려보자며 처음엔,  즐겼다. 그간 쉼 없이 달려오고 다른 나라에 와서도 계속 달려온 나에게 이 락다운은 쉼이자 휴식이었다.


그러나 딱 한 달이 지나자마자,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이 락다운은 누구에게는 조금 힘들고, 누군가에게는 미칠듯한 스트레스라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생활비 걱정 안 하는 게 어디야, 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는데 점점 생활 패턴이 깨지는 게 눈에 보였다. 아침에 8시면 일어나던 내가 점점 9시, 10시, 11시... 어느 날에는 밤낮이 바뀌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도 갈 곳이 없으니까, 해야 할 것들은 느슨한 데드라인으로 삶 속에 중첩되어 있었으니까. 그렇게 지내기를 한 달, 이제는 대학원 세 번째 학기가 시작되었다. 아, 큰일이다. 잘 쉬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에너지 레벨도 바닥났어!!!


이때부터 다시 무지막지한 TO-DO-LIST를 만들며 방안에서라도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해보자며 스스로를 푸시하기 시작. 그러나 이뤄야 할 목표를 정했는데 내 능력치가 아직 모자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또 서울에서 들이대던 가혹한 채찍과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다. 지난 학기와 지지난학기에 이제 겨우 공부의 흐름을 좀 익히고 수업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게 되었을 뿐인데, 그리고 에세이를 무리 없이 쓸 수 있게 되었을 뿐인데. 나는 이번학기 모든 과목에서 존재감을 발휘해야 한다는 무리한 목표를 세웠다. 존재감 발휘란, 세미나에서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 연습을 말한다. 계속해서 언어와 문화와 지식의 갭이 느껴지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런데 문득, 말도 잘 못하는 애가 무슨 수로 존재감을 발휘해?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 해답은 '다른 애들이 하는 것보다 몇 배로 준비해서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놔야지'로 귀결되었다. 맞는 말인데, 피곤한 인생이다. 피곤해.....


그렇게 삼주를 살았다. Week1, Week2, Week3... 을 보내면서 수업이 들어가는 게 너무 긴장되고 떨려서 두려움이 엄습할 정도로 나의 일상을 불안감이 갉아먹었다. 내가 원하던 건 이런 게 아닌데, 그저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열심을 다하려고 했던 것뿐인데. 점점 목표를 성취 못하는 내 모습이 그려지면서 도망가고 싶어졌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속은 타들어가고 머리는 점점 복잡해지는 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내가 스스로 판단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상태 - 자신감 부족의 상태에 이르렀다. 그 어느 것도 쓸 수 없었다. 머리와 마음이 혼란스러워 어느 것도 확신을 갖고 단호히 해낼 수 없었던 상태에 이르니 아무것도 하기 싫고 다 던져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심리상담을 받았다. 지금까지 총 2회, 일주일에 한 번씩 받았다. 마음이 힘들어서 심리상담을 받는 것에 대한 터부의 문턱을 넘었고, 어떤 리뷰에서 봤지만 고민하던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큰 도움을 받았다. 실제로 가족, 친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건 사람별로 다르고 (우리는 청자를 배려해야 하니까) 상담받을 수 있는 깊이도 지극히 그 사람의 경험과 마음상태에 비례하기 때문에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못한다. 그래서 찾은 서비스, 마인드프로라는 어플로 상담 전문가 선생님께 상담을 받았다. 미국인들은 '나 요즘 테라피스트 만나'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던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서비스가 여러 개 생긴 걸 보면, 우리나라도 점점 마음과 심리를 전문가에게 치료받는 것에 대해 오픈되어가고 있는 과정인 것 같다.


상담 때 첫 질문은 그냥 좀 편하게 살아도 괜찮은데. 그게 왜 안될까요? 했더니 마음속에 무슨 욕구가 있는지 바라보자고 하셨다. 마음에는 늘 두 가지 욕구가 충돌하고 있다는 것과 그 욕구는 자아와 초자아 즉 의식과 무의식이 하는 이야기라는 걸 상담을 통해 다시 알게 되며 여러 정황들을 정리할 수 있었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았고, 나의 욕구와 어린 시절 경험들을 연관 지어보았다. 아동복지학을 공부하며 어느 정도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어린 시절의 경험을 뒤로 미뤄두고 성인의 자아를 '입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의식할 수 있는 선에서 친구와 대화를 하면 어떤 경험에 대해 공감과 지지를 할 수 있지만 상담을 통해서는 현재 느끼는 것들과 내 과거를 연관 지어서 바라볼 수 있다. 그 연결로 지금까지 느껴온 것들을 카테고리화할 수 있으니 상담받고 난 뒤에 마음이 명확해졌다.  


간략히 정리하면 이 정도다.

- 인정욕구가 사랑에 대한 갈망과 연결되었다는 것.

- 초자아의 목소리에서 벗어날 것. 를들자면 더 높이, 잘해야 돼, 실수하면 안 돼, 이렇게 살면 큰일 나...같은 것들.

- 무조건 나를 죽이고 내 색깔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찾고 사랑하는 것이 핵심.


생님의 코멘트가 하나하나 너무나 와닿았고, 마지막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라고 하셨다.


틀리면 뭐 어때, 실수하면 뭐 어때, 잘리면 뭐 어때, 큰일 안나. 다 살아지더라고.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말랑말랑함과 허심탄회함은 실수도 실패도 많이 해봐야 된다. 어정쩡하게 공부한 나는 이걸 못했지. 늘 '잘될 거야, 괜찮을 거야'를 되뇌었지만 이제는 '뭐 어쩌라고' 같은 마인드로 살아보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동안 너무 건조하고 진지하게 매사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다.



이 터널을 건너며 바닥까지 내려갔고 지겨울 정도로 잠을 자며 나를 비워내고 그간 겪은 것들을 소화해 냈다. 잠을 많이 자는 나를 질책했는데 사실 내 안에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욕구와 좀 쉬고 싶은 욕구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열심히 안 살고 싶은 건 아닌데, 나 지금 좀 혼란스럽고 쉼이 필요하다는 몸의 신호. 나를 좀 더 돌아보고 아껴줘야 한다는 신호였다. 그 신호를 자꾸 놓치고 게으르다며 질책하고 몰아붙여서 미안.... ㅎ


방안에만 있고 습관처럼 해오던 환경적 도움 (도서관 가기, 카페 가기)도 없고 사람과 소통도 없는 상태에서는 힘든 게 당연한데 왜 그걸 인정해주지 않았을까. 무턱대고 이 정도는 괜찮아야지, 하는 게 초자아의 폭력이고 힘든 상황일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강하다고 믿어주는 게 자기 신념이라는 걸 깨달았다.   상담을 마무리하며 선생님은 두 권의 책을 추천해 주셨는데, 지금 학교 공부와 일들로 바빠서 전공책인 <수용 전념 치료>는 나중에 읽고 조금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새로운 나를 여는 열쇠>는 알라딘에서 해외배송으로 바로 시켰다. 상담을 하며 내 마음을 뚜렷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며 또 어떤 것들을 만나게 될지 너무 기대됨.   


이 터널을 건너는 건 어려웠지만, 비워낼 것들을 비워내니 내 안의 혼란투성이들이 보였다. 이건 아마도 나를 더 찾고 자아를 더 견고히 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에 대해 더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믿는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우리의 세계관에서 출발하므로.  경직된 사고, 이거 아니면 안 돼, 난 안 될 거야 등... 머리에 떠오르는 말들은 초자아의 수작이고 이게 신앙과 연결되면 Baaaaam! 사람을 꼼짝달싹 할 수 없도록 경직된 사고관에 가둬둔다.


 또 하나,  내 상태에 대해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그걸 실행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는데, 그럴 때는 그저 판단 없이 들어주는 사람들, 그리고 가볍게 시도해 보는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들 (아이폰 머리맡에 두고 자지 않기, 스트레칭하기, 수영장 가서 놀다 오기)이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 힘들 때 내 기준에서 충고하고 그만 마음을 닫아버리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기르기 위한 시간이었다 믿는다.


#심리상담후기





원문 링크 - https://www.tumblr.com/fearless-grace/664358925700825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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