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얼굴을 합성하는 사이트가 유행일 때였다. 나 역시 재미 삼아 내 사진, 남자 친구(현 남편) 사진 하나씩 넣어 미래의 아들딸을 구현해보았다. 못생기게 나오면 좀 그러니까 처음부터 잘 나온 사진으로 했다. 잘 나왔다 싶은 사진은 주로 측면이거나 후면이어서 고르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끝내 베스트 사진 두 개를 찾아 냈다. 이게 뭐라고 로딩되는데 살짝 떨렸다. 결과는... 대성공! 잘 차려 입히기만 하면 아동복 모델쯤은 거뜬히 소화할법한 귀요미 남녀가 뿅 하고 나왔다. 아기는 다 귀여운 법이지만, 내 자식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뭐랄까 미래가 촉망됐다. 성장과정 중에 역변만 일어나지 않으면 됐다 싶었다.
인스타 피드를 내리다가 ‘유전자의 힘’ 짤을 발견했다. 나한테는 봤다 하면 꼭 들리고 마는 마성의 게시물이었다.(나만 그래?) 야구선수 이대호 딸, 배우 김응수 딸, ‘큰 범수, 중간 범수, 작은 범수, 여자 범수’로 통칭되는 배우 이범수 가족까지 고전적인 증명 사례가 순서대로 있었다. 도경완 거푸집 의혹을 받고 있다는 가수 장윤정 가족도 새로 업데이트됐다. 나는 노올랍다는 얼굴로 남편(구 남자친구)에게 보여주면서 ‘위대한 힘은 반지나 스톤에 있는 것이 아니라 DNA에 있다’는 견해를 전했다.
남편은 전체적인 얼굴형은 아버님을 닮았고 눈매는 어머님을 닮았다. 나는 누구 하나 딱 닮은 건 아닌데 엄마와 비슷한 분위기가 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나는 남편에게 내 자식이 남편만 빼다 박으면 서운할 것 같고, 그렇다고 내 사각턱이나 무다리는 물려주기는 싫다고 말했다. 사각턱이 외국에서는 고급진 이미지라 하고 허벅지가 굵으면 나이 들어 당뇨나 성인병에 안 걸린다 한들, 지금 보기에 예쁘고픈 마음은 나나 걔나 똑같을 텐데 굳이 대를 이어 물려줘야 하나 싶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이건 나 닮았으면 좋겠다, 이건 나 안 닮았으면 좋겠다’ 놀이가 시작됐다. 남들이 보면 또 시작이다 했을 법했다.
일단 외모부터 정리해보자. 얼굴형은 남편을 닮기로 했다. 눈코입이 조금 맹숭맹숭하더라도 얼굴형이 예쁘면 반 이상 먹고 들어간다는 사실을 지난 수년간의 분석을 통해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아가야, 꼭 아빠 닮아서 손이나 머리카락으로 얼굴 가리지 말고 당당히 드러내렴. 아가야, 근데 그거 아니? 사각턱은 머리 묶는 게 가장 잘 어울린대.^^ 그리고 얼굴 크기는 평균보다 살짝 작아야 된다는데 합의했다. 막 연예인처럼 소멸 위기일 필요는 없다. 친구나 애인이 부담스러워한다. 그런데 이건 좀 복불복일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나는 평균인데, 우리 아빠는 머리가 크고 오빠는 나보다 작다. 키 185cm 남자 형제보다 얼굴이 크다는 건 상당한 현타가 오는 일이다. 여하튼 스프레드가 넓으니 알아서 잘 선택하기를 바란다.
눈은 누구를 닮아도 상관없다. 둘 다 크다. 그래도 눈매는 내가 좀 더 예쁜 것 같다. 고양이처럼 살짝 올라간 거 좋아하면 나 닮고, 댕댕이처럼 살짝 쳐진 거 좋아하면 아빠를 닮으렴. 대신 아빠를 선택하면 나중에 늙어서 눈밑 지방 재배치를 해야 할 수도 있단다. 알겠지? 콧대는 무조건 남편이다. 이쯤 되니 옛날에 그림 여러 개 그려놓고 스톱! 외쳐 얼굴 완성하던 게임 느낌이 난다. 나는 콧대가 없다. 안경 쓰면 안경테가 광대에 닿는다. 이쯤 하겠다. 머리카락은 나야 나다. 남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백발이 된다. 두어 달이면 검은 머리가 연한 갈색을 거쳐 회백색이 된다. 그래서 남편은 종종 자신을 공자의 제자인 ‘안회’에 비유한다. 그가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다던 안회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중에 따로 탈색할 필요는 없겠네’ 생각한다.
키는 남자는 176, 여자는 163 이상이면 좋겠다. 구체적이어서 좋지 않은가. 이 수치도 마찬가지로 다년간의 분석을 통해 도출해낸 결과다. 어쨌든 그런 게 있다. 저 키가 넘어야 옷을 입어도 으른 태가 난다. 다행히 키는 후천적인 요인도 중요하다고 하니 어렸을 때부터 철봉 특훈에 돌입하기로 한다. 우유도 많이 사 줄 테니 무럭무럭 자라거라. 근데 몇 살쯤 되면 나보다 커질까? 나는 참고로 엄마보다 작고 오빠랑 25cm가량 고도차가 난다. 살찌는 유형은 좀 복잡하다. 나는 얼굴부터 찌고, 남편은 마지막에 얼굴이 찐다. 이것만 보면 남편 손을 들어줘야 하겠으나, 남편 뱃살은 튜브형이다. 엄지검지로 딱 잡고 ‘제 2의 엉덩이’라고 놀리는 부분이다. 어떻게 옆으로 찌는 아직도 의문인데, 남편은 죽어야 빠진다고 했다. 실제로 몸무게가 10kg 이상 빠져도 옆구리살은 똑같았다.
외양은 이쯤이면 됐고 능력치로 넘어가겠다. 이쪽 파트는 생각보다 명쾌하다. 언어능력은 나, 수리능력은 남편, 운동신경은 나, 체력은 남편이다. 이 중에 하나라도 어긋날 경우, 먹고사는 문제가 위험할 수 있다. 아니, 남들보다 몇 배로 노력해야 남들만큼 한다고 정정하겠다. 남편은 이 중에서 유별나게 운동신경에 집착한다. 옛날에 친구들이랑 축구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친구들 노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참 웃긴 건 남편은 축구 잘하게 생겼다.
사실 건강하게 태어나준다면야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건강히만 자라 다오’할 자신은 없는데, 때때로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해서 참 행복하다고 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자식인데 객관적으로 봐도 못생겼다는 반응이 꽤 있다. 내가 너 못생겨도 쌍꺼풀 수술, 교정까지는 A/S해줄게. 그러니까 올 건지 말 건지 좀 정해주겠니? 너가 태어나고 싶다고 해야 나도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어?’라고 물어올 때 뭐라 대답할 수 있을거 같아서 그래. 딱히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런건 아니야. 정말이야. 엣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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