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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심 May 08. 2020

결혼식에서 춤을 추기로 했다

EBS <나도 작가다> 공모전


결혼식에 춤을 추기로 했다. 벚꽃 피는 주말, 남의 잔치를 찾아준 하객분들께 ‘재미’를 답례하기 위해서였다. 흥겨운 결혼식. 나는 이번 행사 콘셉트를 이렇게 잡았다. 우선 몸치 박치 길치인 남편을 꼬드겼다. 그는 평생 둠칫 둠칫 또는 휘적휘적 춤춰왔지만, 메인 댄서 자리를 제법 순순히 받아들였다. 다음으로 백댄서를 물색했다. 후보를 추리고 개인별로 전략적으로 접근해나갔다.
‘다이어트 겸 방송댄스 배워보지 않겠니?’
‘너 스포츠댄스 동아리였지? 오랜만에 다시 무대에 서보지 않겠니?’
‘요새 소개팅에 지쳤다며! 아주 자연스럽게 괜찮은 여성 만나보지 않을래?’
‘다음 주에 여기 연습실로 와. 너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춤을 추게 될 것이야.’
낚시질은 백발백중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신랑, 신부, 서로 일면식도 없는 4명이 프로젝트 팀을 꾸리게 되었다. 결혼식 축무 TFT. 프로젝트 마감 기한 4월 7일. 우리에게 3번의 연습이 남아 있었다.    

첫 연습을 개시했다. 그들은 이름을 말하고, 나이를 보고하고, 자기는 어떻게 낚이게 되었는가 증언한 후 순서대로 눈을 흘겼다. 나는 목동, 금천, 인천, 용인에서부터 눈을 흘기기 위해 달려와준 그들이 너무 고마웠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주말에 시간을 뺀다는 게 얼마나 사려 깊은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고마워’는 쑥스러워서 ‘고오맙다’는 인사를 돌렸다. 선생님이 짜 온 안무를 보여주었다. 동작이 많은데 빠르기까지 했다. 감히 내가, 네가, 우리가 이 춤을 춘다고? 도통 믿기 어려웠다.

신랑 신부는 중간에 등장할 예정이었다. 이미 춤출 거라고 떠벌리고 다녀서 딱히 아무도 놀랄 것 같지 않았지만, 나름 서프라이즈였다. 덕분에 나랑 남편은 친구들의 방송댄스 입문을 지켜볼 수 있었다. 가관이었다. 표정은 왜 저렇고 골반은 왜 저기서 저렇게 나오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선생님은 조금 당황하시는 듯싶더니 준비해온 안무를 덜어내기 시작했다. 피피티 30장이 요약 3장으로 줄어드는 기분이랄까. 선생님은 어느새 ‘느낌만 내자’며 목표를 낮춰 잡았다.

나의 차례가 되었다. 주로 말하고 걷고 먹는 행위만 보여주던 사람들 앞에서 춤사위를 보이려니 부끄러움이 일었다. 이내 나는 중학교 수련회에서 신화 오빠들의 와일드 아이즈를 선보였던 과거의 나를 소환했다. 곧잘 따라 하니 친구들이 ‘저거 저거 자기가 돋보이려고 우리 데리고 온 거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너무 빨리 들켰다. 남편은 익히 보고 들은 대로였는데, 강약 없이 강강강강 몰아치는 그의 동작 1234는 임팩트를 주기에 충분했다.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두 번째 연습날이었다. 불평할 법도 한데 다들 성실히도 도착했다. 청첩 돌리면서 날짜와 시간 잡는 일에 신물 난 상태여서 괜히 찡했다. 그래서 배불리라도 먹이고픈 마음에 햄버거를 쐈다. 연습실 한 켠에 자리를 펴고 먹었다. 언제부턴가 돈을 쓰지 않고는 놀기 어려웠는데 마룻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주접떠는 일이 즐거웠다. 시간이 얼마 없어 한시바삐 진도를 뺐다. 공연일이 다가오니 모두 열심이었다. 특히 전신 거울을 마주하는 것조차 창피했던 우리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상(像)을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신체비율도, 동작도 뭔가 잘못됐음을 인정해나갔다. 우리는 용기 있고 진지했다.
 
파트별로 지도받다가 처음으로 단체 연습에 돌입했다. 음악 없이 구호에 맞춰 천천히 진행했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구석구석 엉성하지만 처음과 끝이 있는 첫 무대를 마쳤음에 탄성이 새어 나왔다. 우리가 해낼 줄 알았어! 긴 연습기간 끝에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아이돌이 이런 기분이었을 테다. 역시 경력 개발, 내 집 마련, 노후 준비보다 재밌는 건 세상에 많았다. 합을 맞추다 보면 일종의 짜릿함이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들과 두고두고 기억할 추억을 만들었다는 짜릿한 확신을 가졌다.

세 번째 연습에 안무 연습 동영상을 찍었다. 시간에 휘발되지 않고 데이터로 각인될 퍼포먼스라니 유독 긴장이 됐다. 이렇게 왜곡, 미화 한 점 없이 기억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선생님은 ‘자기 객관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전신 거울 몹보다 강력한 빌런이 있었던 것. 다행히 비트에 멱살 잡혀 끌려다니다 보니 카메라는 안중에 없었다. 하지만 익룡 소리를 내며 손가락 사이로 촬영된 영상을 목격해야 했다. 생각보다 심각한데? 다시! 처음부터! 한번 더! 연습만이 우리를 구원할 터였다.  

어느 순간, 그렇게 빨랐던 박자가 할 만하게 느껴졌다. 바닥을 향했던 시선을 일으켜 세워 다른 사람 움직임을 살펴볼 만큼 시야도 넓어졌다. 대형을 맞추기 위해 적당히 동선을 조정하는 여유도 생겼다. 동작이 커지고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뗀석기가 간석기로 날을 세우듯, 결혼식 하나쯤은 찢어버릴 만한 칼군무가 완성됐다. 이게 가능하구나. 우리는 갈매기살과 소주로 서로의 성장을 축하했다. 정말 진짜 공연만이 남아 있었다.   
 
웨딩드레스를 차려 입고 일찍부터 신부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당최 주목받는걸 어색해하다 보니 나는 시시각각 고장 나는 중이었다. 멀리서 한달음에 나의 결혼식을 찾아준 하객들에게 기괴한 미소를 지어 보일 때쯤, 홀에서 전주가 들려왔다. 리허설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듣자마자 요즘 말로 ‘찐 웃음’이 튀어나왔다. 맞다. 나는 내 친구들과 함께 핫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시작은 비루하고 도전 과정은 남루하였으나, 결국엔 로맨틱, 성공적일 무대를 떠올리니 갑자기 ‘오늘 진짜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똑같은 결혼식에 재미라도 선사하고자 도전했던 축무는 나를 가장 흥겹게 만든 것이다.

친구들이 포문을 열자 박수가 터졌다. 남편의 댄스 브레이크에 환호가 쏟아졌다. 나는 신이 나는 바람에 웃는 표정을 신경쓰지 못하고 잇몸을 드러냈다. 연이어 오랜 시간 갇혀 있던 내적 댄스가 바깥 세상으로 뿜어져 나왔다. 나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고식에 6명이 함께여서 든든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유부 데뷔 무대였다. 친구들과 춤을 추기로 한 일은 결혼 준비하면서 가장 잘한 일이다. 물론 개인적인 입장이다.


결혼식 축무의 시작
남편의 댄스 브레이크
스스로 만족해하는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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