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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심 Feb 11. 2020

엄마 아빠에게 퇴사를 비밀로 했다(상)


나는 부모님에게 고민을 얘기해본 적이 없다. 주로 혼자 알아서 한다. 느닷없이 호주로 떠났을 때도 그랬고 진로를 바꾸거나 이직을 할 때도 홀로 결정하고 책임졌다. 이따금 실패할 때면 한소리 듣기 싫어서 부모님에게 즉각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부모님이 사실과 다르게 알고 있는 기간이 생겼다. 좋게 말하면 독립적이었고 까놓고 말하면 막돼먹은 자식이었다.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석사논문을 쓸 때 나는 부모님에게 퇴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대신 학교 도서관으로 9시 출근, 6시 퇴근하면서 열심히 회사 다니는 모습을 연출했다. 굳이 출퇴근 시간에 2호선을 타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3개월을 같이 사는 사람들을 속여가며 논문을 썼다. 때때로 도저히 논문 진도가 나가지 않는 날은 몰래 집에 숨어들곤 했는데, 집에 일찍 귀가한 아빠와 마주칠 때면 연차라고 둘러댔다. 그놈의 회사는 휴가가 왜 이렇게 많냐고 이상하게 여길 법도 했지만, 아빠에게 회사는 20년도 전의 일이라 별 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결국 나는 ‘너 내 말 안 듣고 사기업 가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고, 졸업을 했고, 부모님이 원하던 공공 쪽에 재취업하게 됐으니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행복한 엔딩이었다.

세 번째 퇴사 후, 나는 그때와 똑같이 ‘부모님 몰래’ 백수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전 직장에서 입은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 때까지만 퇴사 보고를 보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금세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미루다가 말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쓴소리 듣는 게 죽기보다 싫었고, 어느 때보다 취약한 나에게 그런 아픈 말은 손톱만큼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사실 지난번처럼 아무도 모르게 어물쩍 넘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는데, 그래도 말은 해야 할 것 같아 찝찝하게 한 달을 보냈다. 4대 보험 자격상실 통지가 엄마 집 우편함에 떨어질 일이 없으니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나는 이번 설 명절에 성실히 회사 다니는 척을 했다.

쓴소리 듣기 싫어서 퇴사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니.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노릇이지만 나는 정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미 관뒀다는데 나이 서른 먹고 출가한 딸내미한테 해봤자 얼마나 할까 싶어서 한번 (말로) 두들겨 맞고 끝내자 싶은 마음에 콱 말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겁이 나서 뒷걸음질 쳤다. 경험적으로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을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인내심이 부족해, 조직 부적응자일지도 몰라, 이러다 나이만 먹고 물경력만 생기는 게 아닐까’ 충분히 자책했는데, 부모의 입으로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일은 그간의 경험으로 족했다.

상처주기로 작정한 부모의 말에 상처 받지 않을 자식이 있을까. 엄마 아빠 기대에 못 미치는 삶을 살아온 딸자식은 이렇게 힘들 때마다 기댈 곳 없어 외롭고 부모가 앞장서 나를 비난할 것 같은 피해의식에 괴롭다. 본인은 홀라당 까먹고 마음 편히 지내시겠지만, 나는 빼곡히 가슴에 새겨 놓았다는 걸 부모님은 아실랑가 모르겠다. 나는 각인된 통증이 저릿하게 느껴질 때마다 부모의 권력을 실감한다. ‘당사자인 내가 제일 힘드니까 적당히 좀 하시라고요!’하는 자녀의 항거 따윈 ‘부모가 돼서 자식한테 이런 말도 못 하냐!’ 한 마디로 일순간에 제압해버리는 무소불위의 힘을 느낀다. 그래서 그 절대 권력자에게 한번 속시원히 지랄도 못해보고 나는 그렇게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혼자를 자처하게 되었다.


“그는 부모와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실은 어머니가 그의 마음을 헤아렸다기보다 자신의 형편이나 기대를 그에게 억지로 강요했으며, 자신은 늘 그것에 부응하기 위해 맞춰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감하기보다는 감정을 지배하는 편이었던 어머니는 그의 ‘안전 기지’가 될 수 없었다. 이렇게 성장한 그는 회피 및 불안이 강한, 공포 회피형 애착 성향을 갖게 되었다.(중략)
이 경우에 아이는 자신의 기분이 무시당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중략)
본래 안전 기지로서 아이를 지탱해줘야 할 부모가 아이의 자존심이나 자신감에 상처를 주고,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부모를 피하는 것 말고 자신을 지킬 방법이 없다. 부모에게 회피형 애착을 보인다는 것은 과거 일 때문에 실망한 나머지 더 이상 부모와 가깝게 지내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낀 결과라 할 수 있다.”
- 오카다 다카시의 책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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