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들어 연애 상담 주제가 달라졌다. 주로 최근에 소개팅을 했는데 이 남자랑 잘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고민이란다. 외모, 직업 다 나쁘지 않고 계속 만나고는 있는데 확 땡기는 게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럴 때면 나는 이 때다 싶어 달려든다. 연애한다고 어디 닳는 거 아니니까 일단 만나보라고, 너 연애 쉰 지 너어무 오래됐다고, 우리 나이에 시간 빼고 돈 써가며 사람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냐고, 맨날 천날 외롭다 나는 결혼할 수 있을까 해쌓지 말고 남자를 만나라고 호들갑을 피운다.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싶으면 나는 사계절은 만나고 결혼해야 하니까 식은 내년 가을쯤이 좋겠다고, 너는 여의도고 그쪽 직장은 판교니까 신혼집은 사당이 좋겠다고 진도를 국수 뽑듯 뺀다.
그러면 친구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홍대 상상마당에서 뛰노는 중인 것이다. 그래도 일 년은 만나봐야 되겠지? 근데 그게 안 맞으면 어쩌지? 하고 이것저것 질문하면 나는 ‘넌 is 뭔들’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여지없이 ‘으아아, 연애고 뭐고 다 귀찮다’하면서 산통을 깨버린다. ‘어디 이익준(<슬기로운 의사생활> 중 조정석 극 중 역할) 같은 남자 어디 없나. 진짜 거미라도 될 걸 그랬나 봐’하며 개나발을 분다. 서로 진짜 질린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거 마저 먹고 가자하면서 끝나는 고민 상담. 그게 요새 트렌드였다.
어느 날은 친구가 너는 결혼하니까 좋으냐고 물었다. 6년 연애하고 2년 결혼 생활하는 걸 빠짐없이 지켜봐 온 입장에서 오랜 시간 사이좋은 우리 커플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고 했다. 자기는 충분히 이기적이고 길게 연애를 해본 경험도 없어서 누군가와 맞춰가며 평생 살아야 하는 게 배로 어렵게 느껴진다고 했다. 요새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할지도 모르겠고 썸이라도 탈라치면 이 남자랑 안 되는 이유부터 찾는 증상도 털어놨다. 나는 얘가 얼마나 괜찮은 여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8년간 깨달은 노하우를 전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준비한 이번 특집은 이런 남자 만나서 결혼해라다.
첫째, 잘생긴 남자를 만나야 한다.
정말이다. 잘생긴 거 상당히 중요하다. 나는 결혼식에서 ‘잘생겨서 사귀자고 했다’고 공표했을 만큼 남편의 외모에 큰 매력을 느꼈다. 얼굴 본다고 하면 너는 얼마나 예쁘길래 하겠지만, 내가 말하는 ‘잘생김’은 조각 같이 잘생겼다는 뜻이 아니고 본인 취향에 얼마나 들어맞느냐 하는 의미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 만큼 사람 취향도 다양해서 객관적으로 못생겼어도 본인 취저(취향저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외모가 때때로 애정을 증폭시키고 갈등을 해소하는 ‘멜팅 포인트(녹는점)’가 된다고 생각한다. 연애 때는 오랜 냉전 끝에 만나는 날 긴장하면서 약속 장소로 갔는데 막상 서로 얼굴 보자마자 빵 터졌다든지, 결혼하고서는 이 똥고집쟁이 갖다 버릴까 싶다가도 싱긋 웃어 보이면 분하게도 화가 누그러드는 일이 종종 있었다. 오래오래 같이 살 텐데, 나를 사르르 녹이는 외적 요소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결혼하면 떡진 머리에 몇 년 입었는지 모를 티셔츠 입고 꾀죄죄하게 돌아다니긴 하는데 그때는 살찌기 전에 멀끔하게 슈트 차려 입고 데이트했던 기억을 끄집어내면 된다. 다르긴 해도 같은 사람이다.
둘째, 자존감을 높여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남편은 나한테 항상 ‘예쁘다, 쨔란다(잘한다)’한다. 처음에는 그냥 습관처럼 하는 소리겠거니 했는데, 이게 쌓이다 보니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됐다. 그리고 나도 이 사람한테 이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연인 간에 서로 어여삐 여기고 어여쁘다 말해주는 게 얼마나 중한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자기 애인한테 못생겼다고 놀리고 네가 제대로 하는 게 뭐가 있냐고 질책하고 힐난하는 분이 생각보다 꽤 있어서 놀란 적이 있었다. 제 사람 귀한 줄 모르고 자존감 깎아 먹는 사람은 가차 없이 쳐내야 한다. 나도 구 남친(들)한테 ‘못생겼다’는 말도 들었고 ‘화장 다시 해라’는 말도 들어봤다. (부들부들) 남편 옆에 있으면 부족하긴 해도 내가 썩 괜찮은 사람 같게 느껴진다. 연애 칼럼니스트 곽정은도 말하지 않았나.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다는 분명한 증거는 함께 있을 때 변해가는 내 모습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 그런데 한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 맨날 예쁘다 귀엽다 해줬더니 자기가 진짜 귀여운 줄 아는 것 같다. 아재요. 다른 사람 앞에서 행여 그러지 마이소.
셋째, 개그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쓰면서도 진부한데 개그코드가 맞아야 한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사람이랑 있으면 미친다. 같이 놀면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갔지 싶고 오늘 자알 놀았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진짜배기일 가능성이 높다. 티키타카라는 말이 괜히 축구 이외의 영역에서 널리 쓰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보통 조용하고 차분하게 생겼다는 얼평(얼굴평가)을 듣는 편인데, 남편 앞에서는 웃기고 싶어서 환장한 애 같다. 재간둥이가 따로 없다. 항상 개인기와 준비한 이벤트 쇼쇼쇼, 난 당신의 연예인이다. 남편은 특히 내가 쿨의 이재훈을 따라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냥 웃는 게 아니라 진짜 쳐 웃어서 기분이 나쁠 때가 있지만 그가 웃으니 나도 좋다. 똑같은 이야기에 똑같이 반응하는 것도 재밌다. 상대방이 해준 말인데 까먹고 서로 다시 말해줄 때도 재밌다. 잠들기 전에 오늘 새롭게 발견한 짤을 공유하면서 함께 웃는 시간이 즐겁다. <동상이몽>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배우 소이현이 남편에게 ‘나를 웃기려고 하지 마. 자기는 나를 너무 웃기려는 강박이 있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인교진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거 진짜 나를 위한 건데, 자기가 웃으면 그냥 행복해.’ 이 정도 마음이면 그 연애 대찬성이다!
넷째, 잘 싸울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연애 상담을 하다 보면 너무 많이 싸워서 고민이라는 커플이 있고, 너무 안 싸워서 고민이라는 커플이 있다. 나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위험하다 보는 편이다. 수십 년간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아무리 인격이 고매하고 배려심이 넘쳐도 그렇지 어떻게 한 번도 안 싸울 수 있지? 기이한 노릇이다. 나는 싸울 땐 싸워서 제대로 화해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늘상 주창한다. 여기서 제대로 화해한다는 건 각자 자기 입장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상대방 입장이 그럴 수 있다 납득하는 상태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얼마나 구질구질하고 지질한지 나도 안다. 나도 연애하면서 내가 뭐 때문에 기분이 상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99절절 설명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다행히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상대방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몇 시간이 걸려도 두 손 꼭 붙잡고 이래 이래 해서 이랬고 이래 이래 해서 저랬다 설명했다. 덕분에 앙금 없이 건강한 관계를 지속해올 수 있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상처 받든 지 말든지 내비려두는 놈 같다. 그럴 거면 왜 사귀냐!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면 초코파이나 사 먹어라! 좋아하는 사람이 오해하지 않게, 상처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면 수고롭더라도 뭐든 하는 게 맞지 않나. 자존심이 더 중요하면 자존심이랑 사귀면 되겠다.
다섯째, 교감이 잘 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람은 정신적인 교감도 하고 손도 잡고 어깨동무도 하면서 육체적인 교감도 나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친구가 다섯 가지를 유심히 듣더니 어렵다 했다. 맞다.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 않고 앞으로 공들여 찾아보겠노라 했다. 내 친구는 좋은 사람이니까 좋은 사람을 만날 테니 사실 걱정 없다. 얼른 투투도 치르고 100일도 기념하면서 예쁘게 만나기를 고대할 뿐이다. 그런데 쓰다 보니 우리 커플이, 특히 남편이 대단히 이상적으로 그려진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아닌가? 여하튼 개뿔 다 똑같다. 우리 역시 뻗대고 어긋나기 일쑤다. 그래서 우리도 관계를 잘 가꾸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부단히 서로 웃겨주고 칭찬해주고 잘 싸우며 교감하려고 노력한다. 둘이서 행복하자고 맺은 인연임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머리 빠져도 잘생겼다 해줘야지. 크, 취한다. 나의 트루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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