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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심 Jun 01. 2020

결혼하니 다 청소하고 삽디다

딸이 청소를 안 해서 걱정인 분들께


결혼 전에는 엄마가 방 좀 치우고 살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치워라, 치워라’ 열 번은 말해야 치우는 시늉을 했다. 이 정도면 깨끗한 것 같은데... 하루 두 번 청소기를 돌리고, 때 되면 냉장고, 옷장, 찬장을 순서대로 갈아엎는 우리 엄마가 참 유난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담대하게도 이런 엄마 곁에서 시험 기간이 돼야 책상 정리를 했고, 입을 옷이 없어야 계절에 맞는 옷을 꺼냈다. 엄마는 고양이 키운답시고 모래 갈이나 겨우 해내는 나를 보며 저거 저거 누가 데려가나 진심으로 걱정했다. 나는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으며 마음 편한 게 최고라 굳세게 믿었다.         

결혼하고 내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내가 남편에게 좀 치우고 살라고 한다. 그가 꼬리처럼 남겨 놓은 흔적들을 정리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꼬박꼬박 하루 두 번 청소기를 돌리고, 일주일에 한 번 화장실 청소와 바닥 물걸레질을 하는 식이다. 저번에는 싱크대 기름때를 싹 닦아놓고선, 이번에는 창틀 먼지를 싹 닦아내야 하나 벼르기까지 한다. 때때로 여자가 더러우면 남편한테 쫓겨난다고 엄마가 별스러운 걱정을 하곤 하는데, 사실 우리 집에서 내가 아니라 남편을 내쫓아야 할 판이다.  

나는 왜 결혼하고 달라졌을까 고민해봤다. 한 친구도 여태껏 손에 물 한 방울 안 대다가(자랑은 아니다) 결혼하고 꼭 자기 엄마처럼 열심히 청소하고 있다고 했다. 참고로 친구네 집은 반도체 공장급으로 가구나 전자제품 표면에 먼지 한 톨 없다. 우리는 너도 어지간히 피곤하게 산다며 한 번 웃고, 보고 배운 게 그거라서 그렇게 되나 보다 하며 또 웃었다. 그런데 30년 동안 보고 배운 대로 안 살다가 갑자기 보고 배운 바대로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그러다가 ‘내 살림이라서’라는 해답을 얻었다. 나는 그간 내 살림이 아니라서 주인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내 꺼라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구석구석 찌든 때가 보이고 지지 않는 얼룩에 속이 상하더라. 사장과 직원의 마인드는 이렇게나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여기서도 드러났다.


내 살림을 하다 보니 요새 청소하는 게 즐겁다. 베이킹소다 발견하신 분 자손 대대로 번성하시고, 매직블록 발명하신 분 주식 사는 족족 떡상하시기를 바랄 정도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힘든지도 모르겠는데, 특히 집을 말끔히 치우고 샤워하고 침대 가장자리에 살짝 기대 누우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두 살 터울 오빠가 이런 내 모습을 보면 네가 언제부터 깨끗했다고 하면서 놀릴 것이고, 신혼을 거친 선배 부부들은 너 몇 년 그러다 만다고 하겠으나, 나는 당분간 청소를 열심히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러니 딸이 청소를 안 해서 걱정인 어머님들께서는 걱정을 붙들어 매셨으면 좋겠다. 자기 살림 꾸리고 자기 집 생기면(우리 집주인은 좋겠다. 세입자가 나라서.) 으레 알아서 쓸고 닦고 할 테니 말이다.

어느 날은 남편과 청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남편은 내가 원래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부지런히 움직이면 처음에는 자기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나의 청소 애착을 받아들이고 성에 찰 때까지 마음껏 하게 내버려 두는 입장이라고 했다. 나 참, 어이 털려서. 주말에 대청소하고 ‘우리집 깨끗하지?’ 물으면 ‘사실 나는 차이를 모르겠다’고 대답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나마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깨끗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데 나는 안심했다. 그래, 깨끗함의 기준이 다르니까. (화이트세요?) 내가 못 참아서 미리 해치워버린 일에 대해 억울해하지 않기로 하자. 그렇게 나를 다독였다. 오늘은 해가 좋다. 이불 빨래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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