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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심 Jun 02. 2020

신혼, 재테크를 해야할 때

재테크 하다 말다 반복하는 꿈많은 부부에게


최근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무순위 3가구 청약에 26만 명이 몰렸다는 기사가 났다. 미계약분에 3년 전 분양가를 적용해 당첨만으로 3억에 30억짜리 아파트를 마련하고 수억의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는 로또 청약의 기회여서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서울지역 전체 청약자보다 많은 숫자라 했다. 이 소식을 접한 뒤, 나는 당장 대출 없이 3억을 조달할 수 있는 현금 부자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부자들은 항상 기회를 잡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무려 부자도 아니면서 자산 불리기에 소홀한 내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끝나서 슬프지만 넷플릭스에 <도깨비>가 올라와서 다행인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미혼일 때는 한 달에 50만원이면 충분했다. 값비싼 화장품이나 옷, 가방을 욕심 내지만 않으면 월 150만원씩 저축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을 모아 1,800만원을 만기 해지했을 때, 나는 정말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내가 그들보다 한참 적게 벌지만 더 많이 저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주식이니 부동산이니 안 그래도 머리 아팠는데, 지금처럼 열심히 적금 부으면 부자는 아니더라도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처녀였다.

결혼하고 재무관리를 맡게 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월급에서 용돈 쓰고 나머지는 몽땅 은행에 맡기면 되는 심플한 삶에서 벗어나, 스케일이 커지고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생애 처음으로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때 가슴이 쿵쾅거리고, 대출이자며, 관리비며, 공과금이며 부모님 집에 얹혀살 때는 없었던 지출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안 쓰고 덜 쓰는데 익숙한 새가슴 나에게 결혼은 통제할 수 없이 돈이 줄줄 새어나가는 위기의식을 줬다. 반드시 써야 할 돈을 쓰는데도 계속 불안했다.      

남편과 재정계획을 세웠다. 지출 항목을 정리하고 주어진 예산 안에서 소비하기로 했다. 한 달 소득, 지출액, 저축액을 알고 나니 그나마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예적금 이자율을 적용해 10년 후 자산 총액을 계산해봤다. 분명 절대 액수는 결혼 전에 볼 수 없었던 큰돈이었다. 그러나 내 집 마련, 육아, 노후 준비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적어도 연간 수익률이 5%는 돼야 언감생심이나마 세 가지 모두 꿈꿔볼 수 있었다. 이것도 두 사람이 모두 급여 소득자로서 근면 성실하게 일한다는 가정 하에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안타깝지만 올해 초 나는 퇴사를 했고, 꿈은 더욱 요원해졌다.

나는 아이를 낳고 싶다. 남편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의 재능을 뒷받침하고, 아이가 자신의 진로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물려줄 유산은 없어도 부모 부양 부담을 주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산 시나리오는 명백히 우리에게 노력하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우습게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돈에 대해 치열하게 공부해야 했던 것이다. 재테크는 안 하고 싶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아니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연간 수익률 5%를 목표로 돈 공부를 시작했다. 일단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부터 읽었다. 나는 가난한 부모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소비만 하고 투자를 하지 않았으며, 대출을 죄악이라 생각해왔다. 심지어 손해 보고 사는 게 마음 편하다며 이해를 따지는 일을 터부시 하고,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것이 삶의 진리에 근접한 방식이라 믿어왔다. 마음가짐을 바꾸는 게 시급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 자본주의에서는 내가 아니라 돈이 일하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돈을 굴릴래도 굴릴 거리가 있어야 해서 종잣돈 모으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에 미뤄 뒀던 통신사 가족 결합을 했고, 보험료만 비싸고 보장은 없는 CI보험을 정리했다. 멜론을 끊고, 데이터 무제한을 포기했다. 종국에 나와 남편의 용돈까지 비용 절감 여파가 미쳤는데, 나는 흔쾌히 삭감에 동의했으나 남편은 버티기 전략을 구사했다. 용돈으로 소득의 15%로 보장하라, 급여 인상률과 연동하여 지급하라며 하도 합리적으로 설득하길래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결과적으로 단시간에 경제적 자유를 일군 어느 자산가처럼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일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투자금을 모으는 속도가 약간 아주 약간 빨라졌다.

동시에 투자처를 찾기 위해 주식, 부동산, P2P 학습에 나섰다. 각자 잘할 수 있는 주력 영역을 찾을 때까지 골고루 공부하기로 했다. 나는 재테크 분야 추천 도서를 읽고, 유튜브 강의를 끼고 살면서, 주말에 강남에서 하는 부동산 강의를 들었다. 이론과 실전은 별개라고 해서 소규모 자본으로 투자도 병행했다. 그렇게 은행 앞에서 줄 서서 특판 CMA에 가입하고, 몇 시간씩 발품 팔아 아파트 임장을 다니고, 경제 흐름을 느끼기 위해 인덱스에 올라타거나 달러를 사고팔며, 동학 개미로서 삼성전자의 주주가 되는 경험을 했다. 워낙 쫄보라 투자금액이 적어서인지 수익이 나도 외식 한 번 안 하는 수준이고, 대개 실력대로 겨우 손해만 면하고 나온 날이 많았다.

투자는 너무 어려웠다. 분명 올라야 하는데 횡보하고, 떨어져야 하는데 올랐다. 스마트 머니의 행방을 알 길이 없어 혼란스러웠다. 투자했다가 원금 손실이 났다 치면 괜히 했다 후회했고, 돈 아끼는 건 점점 힘들어졌다. 안 할 때는 찔리고, 할 때는 모르겠는 상황이 이어졌다. 모으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스스로 안심시키던 과거로 자꾸만 회귀했다. 그렇게 재테크를 하다 말다 하다가 지나치지는 못하는 상태에서 우연히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기사도 보게 된 것이었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26만 명의 사람들은 큰 자극이 되었다. 덕분에 나 역시 돈 공부를 재개하기로 마음먹게 됐다. 집은 사고 싶어도 못 사고, 청약은 가망 없어 보이고, 자꾸 롱장(상승장)에 숏때리고(하락에 배팅) 있지만, 실력을 쌓다 보면 시간과 함께 부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재테크의 비기를 또 한 번 믿어보기로 한 셈이다. 앞으로 나는 성과는 없고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26만 명을 떠올릴 생각이다. 그러니 꿈 많은 여러분도 26만 1명(나 포함)을 보면서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함께 끝끝내 부자가 되시면 좋겠다. 하다 말다 하면서도 하다 보면 뭔가 이루지 않겠냐는 게 소소한 내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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