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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심 May 27. 2020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열두번째 밑줄


아이를 간절히 원해서 난임 병원을 찾은 건 아니었다. 결혼 2년 차, 30대 중반 나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으니 주변의 성화가 날로 거세졌다. 여러 사람들에게서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고, 문제가 없더라도 ‘노산’이니 얼른 병원에 가 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혹시 건강에 문제가 있나 싶어 들른 병원에서는 ‘수치는 정상이지만, 2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았으면 난임으로 볼 수 있다. 일단 과배란 시술을 해 보고, 안 되면 인공수정을 하고, 그다음은 시험관 시술’이라는 일련의 흐름을 설명하더니, 다음 예약 날짜를 잡아 주었다. ‘이게 뭐지? 다들 이런 건가?’ 싶은 마음이었다. “이렇게 가야 합니다”라는 의사 앞에서 “안 할래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서 잡아 준 일정대로 과배란 주사를 맞았다. 생리통이 심해지고, 찢어지는 듯한 복통이 이어지고, 자궁 유착과 난소 물혹이 생겼다. (중략)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극심해졌다. 매달 시험을 다시 치르는 기분이었다. 테스트기의 한 줄은 낙제다. 다른 친구들이 다 가는 학교에 나만 떨어진 상황이랄까? 세상 모든 여자들이 ‘그냥’ 또는 ‘덜컥’도 하는 임신을 하기 위해 나는 내 몸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조금씩 밀려들었다.(중략)


건강도 회복되고 난임 병원 갈 일도 없으니 다시 취업을 하자 결심했다. ‘나 같은 경력직이 설마 취업이 안 되려고?’ 했지만 ‘서류 광탈’의 아픔이 몇 달간 지속되었다. 그제야 내 이력서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서른일곱,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는 여성. 경력직으로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기가 뜻밖에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유리 천장을 실감했다. 연봉을 절반 이상 깎지 않으면 취업이 어려웠다. 남들은 자존심을 버리라 했다. 왜? 나이가 들었으니까? 기혼자라서? 아이가 없어서? 지금껏 만들어 온 내 가치를 스스로 반 토막 내라고? 그 정도 월급 주는 것도 고마워하라고? 화가 났다.(중략)


어렵게 시간을 맞춰 만난 친구 모임. 할 말이 없다는 사실, 정확히는 끼어들 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친구들은 30대 초중반에 결혼해 둘째, 셋째를 낳을지 말지 한창 고민하던 시기였다. 다들 임신이 너무 잘되어 고민이라면 고민이었다. 모임에서는 온통 아이들 이야기뿐이었다. 내 아이 걱정, 내 아이 자랑, 내 아이 미래 예측, 마지막은 아이용품 돌려 쓰기···. 이런 이슈들의 무한 반복이었다. 어느 한 군데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다. 어느 날, 친구 모임에서 몇 마디밖에 입을 열어 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글픔을 느꼈다. 출산과 육아라는 경이로운 체험을 공유하는 즐거움에 신난 친구들. 나라는 존재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다.(중략)


쉬는 김에 체력이나 만들어 놓자 싶어 운동을 시작했다. 문화센터나 각종 재취업 강좌도 쫓아다녔다. 내 또래의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반가웠다. 그들도 말을 걸어왔다. 아이가 없다고 하면, 으레 결혼하지 않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녀들은 결혼한 여자에게 아이가 없다는 사실에 놀라워했고, 다들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처음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내 이야기는 애 엄마들 사이의 신기한 가십 중 하나였을 뿐, 아이가 없는 내게 다가오는 이는 없었다.(중략)


천정부지로 솟는 전세가 때문에 집을 알아보고 있을 때였다. 때마침 분양한다는 곳이 있어 상담하러 갔다. 결혼한 지 3~5년 내의 신혼부부, 자녀가 많을수록 순위가 올라갔다. 우리에겐 아무 해당 사항이 없었다. 아이가 없으면 연말정산에서조차 아무런 공제 혜택이 없다. 신경 쓰지 말자, 신경 쓰지 말자고 되뇌어도 집 밖으로 나가면 ‘아이 없는 삶’이 매 순간 ‘필요결핍조건’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초라했다.(중략)


딩크 모임에 갔더니 “당신은 자발적 딩크인가?”라고 묻는다. 처음부터 선택한 자신들과 이렇게 흘러온 나는 근본이 다르다고 한다. ‘비자발적 딩크···.’ 아이 문제를 미리 선택하지‘도’ 못한 사람들. 아이가 없어서 받은 차별과 비슷한 차별이 그 안에 존재했다. 선을 긋는다. 그리고 너와 나는 다르다고 밀어낸다. 어이없었다.(중략)


직접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는 친구들. 딩크든 난임이든 그냥 흘러온 사람이든 구분하지 않고, 그냥 아이 없이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찾았다. 둘이 살게 된 계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 삶을 대신 살아 본 자가 없으므로 그들의 상황이나 선택에 ‘우열’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냥 ‘지금까지 힘들었지?’라는 한마디로 서로를 위로했다. 아이가 없는 상황을 그대로 인정했다.  이런 선택을 했는지, 과거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까?’ 놓고 그들과 이야기했다. ‘어떻게 하면 지금  시간을 충실히 보내고, 둘이서 행복할  있을까?’ 함께 머리를 모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고 있다. 정규직 채용은 꿈꾸기 어렵지만 그럭저럭 아끼면서, 답답할 땐 가까운 ‘친구’들과 차를 마시면서, 남편이 일찍 들어온 날이면 술 한잔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


- 이수희의 책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부키) 중에서 -


매거진 <책 표지와 밑줄친 문장들>은 책을 읽으면서 밑줄친 문장들을 모으고, 표지 한 장 그려 같이 껴넣는 개인 수납공간입니다. 요새 시간이 많아서 누가 보면 배곯고 다닌 사람처럼 만나는 족족 책을 해치우고 있거든요. 제 마음을 요동치게 한 문장이 누군가에게도 수신되기를 바라면서 칸칸이 모아놓을 예정입니다. 고상한 취향을 보여주기 위해 그럴싸한 문장만 골라낼 생각은 없습니다만, 예쁜 표지를 만나면 표지가 예뻐서 올리는 주객전도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 1회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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