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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한슬 Jun 09. 2021

2005 06 09

무엇인가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서예 교실을 아무래도 이달은 쉬어야 할 것 같다.


무엇인가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연락이 원장한테서 왔는데 변명하기도 어색하다. 왠지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매너리즘에 걸린 것일까?


2005년 6월 9일 목요일



사실 나는 꾸준히 일기를 써 본 적이 없다. 지난 봄에 대청소를 하다가 1월에 딱 일주일 동안 앞장만 쓴 일기를 발견했다. 정말 나다운 기록이다. 초등학교 방학 때도 늘 미루다가 한꺼번에 썼다. 일기를 펼치면 뭘 써야 할지 항상 막막했다. 요즘의 하루는 규칙적이라 더 그렇다. 평일은 운동 루틴, 먹은 음식, 달곰이 챙기기, 회사 일로 꽉 차있다. 원래 할아버지 일기도 매일 열심히 쓰다가, 인스타그램에 동시에 올리던 계정이 이상한 광고 계정에 해킹 당해서 잠시 의욕을 잃었다. (잠시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18일...)


매너리즘에 걸린 것인가? 할아버지 일기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해지려는 찰나에 감정이입이 되는 일기를 발견했다.


할아버지의 고풍스러운 취미들. 서예, 한시 쓰기, 수필 쓰기. 그 중에서도 서예는 정말 꾸준히 하셨다. 할아버지 집에는 붓, 화선지, 먹, 벼루가 정말 많았다. 휴지 대신 화선지를 쓸 정도였다. 엄마, 아빠가 지금 사는 단독주택을 지을 때 상량문도 할아버지가 쓰셨다.


나도 그 영향을 받아서 대학교 신입생 때 서예동아리에 들어갔다. 나름대로 전시회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보러 와 주셨다. 그 때 전시했던 모든 동아리원 중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전시를 보러 와 준 사람은 나 뿐이라 엄청 자랑스러웠다.


내가 일기에 쓸 내용이 없는 건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쓸 줄 몰라서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처럼 꾸준히, 열심히 하던 취미가 갑자기 내키지 않는 날엔 그냥 그렇다고 쓰면 되는데. 내키지 않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고. 매너리즘인가? 무엇인가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변명하기도 어색하다. 그렇게 쓰면 되는데.


나는 내키지 않으면 그냥 안 한다. 하기 싫다고 기록하진 않는다. 기왕이면 할아버지를 본받아 어딘가 하기 싫은 마음조차도 적어 놓다 보면, 무엇인가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그런 다짐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21년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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