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st historian, private timetraveler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라는 구분된 칭호를 처음 배웠을 때의 낯선 기분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아버지의 부모님은 사진 속에서만 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계도 속 호칭을 벗어난 존재, 어릴 때 나와 동생을 길러 주고, 옛날 얘기를 들려 주고, 무릎에 앉으면 꼭 안아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친, 외를 따질 필요 없이 각각 유일한 존재였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를 부를 때는 어떤 접두어도 필요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2016년 1월 26일 돌아가셨다.
여기까지만 썼는데 눈물이 주륵주륵 흐른다. 분위기 좋고 비엔나 커피가 맛있는 광화문 카페에서 모양 빠지게 냅킨에 코를 풀고 있다. 당황스럽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할아버지와 나의 기억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
2016년 1월, 나는 이제 막 만으로 1년을 채워 가는 한국 최고의 정통 시사주간지 시사IN 막내 기자였다. (좋은 언론사입니다. 많은 구독 부탁 드립니다) 하라는 것을 다 하고, 하고 싶은 것까지 추가로 잘하고 싶은 욕심 넘치는 신입이었다. 잘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과, 내가 잘 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을지도 모르는 저널리즘 산업의 불안함과, 막상 잘하는 방법은 뾰족하게 모르는 데에서 나오는 조급함이 내 안에서 격렬하게 마찰하고 있었다. 벅차다고 느끼기도 전에 지쳐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숨쉬기를 잊어버리면 더 버티기 어려운 스트레칭 동작처럼.
설 특집으로 선배 기자가 준비하는 기사에 서포트 겸 디지털 미디어 기획 지원으로 붙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노트북을 든 채로 병원에 들어가 대기실에서 인터뷰 녹취를 받아 적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때까지 나의 인생의 일부를 차지하는 어떤 생명도 잃어 본 적이 없었다. 가족처럼 깊은 관계는 더더욱. 우리 집 멍멍이도 아직 기운차게 살아 있으니까(내년에 수능 볼 나이다). 나는 한참 전부터 그런 궁극적인 상실을 아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암 투병을 오래 하셨고 중환자실을 드나드셨다. 그러나 나는 두려워 하는 것 외에 딱히 마음의 준비를 할 줄 몰랐다. 전혀 반전이 아닌,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예정된 결말임에도 나는 많은 충격을 받았다.
돌이킬 수 없는 종류의 충격이었다. 무기력, 수면장애가 심해지고 급기야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3월에 병원을 찾았다. 1년여 간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꾸준한 관리 덕분에 지금은 훨씬 상태가 좋아졌다. 하지만 지금도 번아웃이 심해지거나 날씨가 며칠씩 안 좋거나 나쁜 일을 겪으면 무기력한 증세가 찾아온다.
그 때는 이런 의문이 나를 깊이 좌절시켰다.
'누구나 한 번 이상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경험을 할 텐데, 왜 나만 이렇게 끝없이 힘들어할까? 우리 할머니, 엄마, 아빠도 의연한데 내가 왜? 나는 세상에서 제일 유난스럽고 정신이 나약한 쓰레기인가?'
부모상도 아닌 조부모상으로 며칠씩 쉬면서 힘들어 하는 나의 모습. 주변 사람들은 나를 다정하게 걱정해 주었지만, 대부분 조부모와 나만큼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아해 하기도 했다. 그 자연스러운 반응도 전부 내가 유난하다는 근거 같았다.
물론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할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70억 인구 중 그 어떤 두 명의 관계와도 다른, 유일한 관계이니까. 나는 울고 싶은 만큼 울고, 힘든 만큼 힘들어하고, 할아버지에 대해 마음껏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썼어야 했다. 이 단순한 진실을 모르고 자학적인 사고에 빠진 것은 내가 특별히 무식해서가 아니고 아팠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때보다 덜 아픈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아픔에 대해 쓸 힘이 생겼다. 5년 동안 조금씩 쌓였다.
아픔에 대해서만 쓰고 싶지도 않다. 할아버지와 나는 26년 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에 쓸 이야기가 너무 많다. 단순히 귀여워 하고 귀여움 받는 이야기 말고도. 어떤 식으로 할아버지와 나에 대한 글을 쓸 것인가?
이제는 옆에 없는 할아버지로부터 나에게로 닿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일기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1995년부터 2014년까지. 다이어리 한 권에 한 해씩. 중간에 몇 해를 건너 뛰고, 총 17권.
다이어리는 전부 엄마나 아빠 중 한 분이 당시에 몸 담았던 회사에서 나눠 준 회사 다이어리다. 튼튼하고, 년도가 큼직하게 표시되어 있고, 깔끔하니 쓰기 좋다고 항상 한 권씩 달라고 하셨던 게 기억난다.
지금부터 나는 매일 하루씩 할아버지 일기를 디지털로 옮길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한, 할아버지의 일상과 추억과 생각에 대한 나의 주석을 덧붙이려고 한다. 할아버지의 일기에 나의 일기를 덧댈 예정이다. 할아버지의 일상에는 내가 등장하기도 하고, 등장하지 않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서로의 곁에 있었을 때의 하루하루와 다시 만나고 싶다. 나는 17권의 일기만큼 천천히, 충분히 할아버지를 그리워 할 것이다. 어떤 생각은 반박하고, 어떤 행동은 지겨워하고, 어떤 풍경은 선명하게 기억해 낼 것이다.
이것은 가장 사소한 역사서다. 가죽 표지를 넘겨, 나는 아주 사적인 시간여행을 떠난다.
p.s
할아버지의 허락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할아버지의 일기를 공개적인 곳에 올려도 되는지 고민했다. 할머니의 자문을 포함해 가족 회의를 연 결과,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허락하실 것이라는 중론이 모였다. 다만 등장인물의 실명은 감추고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관계 호칭으로만 서술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