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어떻게 독서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불분명하지만 어느 인터넷 카페를 보고 갔던 것 같다. 처음 독서모임에 참여했을 때는 얼마나 설렜던지. 주중에 책을 열심히 읽고,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머릿속으로 쉬지 않고 생각을 하면서 책을 뒤적거렸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순간에도 다시 책을 훑어읽고 정해진 장소에 도착하면,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
교직에 발을 들인 이후, 나의 모든 인간관계는 교사들로 점철됐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 뿐 아니라 갖가지 모임에서도 학교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대화는 즐거웠으나 뭔가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던 것 같다. 세상 굴러가는데도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온갖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상대가 필요했다. 하지만 교사들과의 대화는 직장에서 만난 사이인 만큼 대화 주제가 한정적이었고 나는 늘 깊이있는 대화가 목말랐다. 그런 나의 목마름을 채워준 것이 바로 독서모임이었다. 갖가지 직업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책에 대해,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모임을 통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생각들을 접하기도 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세계에서 벗어나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는지 보고 듣고 느꼈다. 독서모임은 내 사고를 확장시키고 대화의 폭을 넓혀주는 좋은 도구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코로나로 인해 근 몇 년간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하지 못했다. 온라인 화상 모임을 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다들 삶이 바빠서인지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솔직히 내 개인적인 상황도 모임을 참여할 만큼 여유가 있지 못해서 설사 모임을 했다한들 참여했을 것 같진 않다. 그렇게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에 지친 나에게 얼마 전,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인과의 깊이있는 대화가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활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단체 카카오톡에 독서모임을 재개할 것을 제안했다.
“저희 줌 독서모임을 하는건 어떨까요?”
독서모임 단톡방에 어렵게 운을 뗐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근 2년간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한 채 생활해왔다. 이유인즉슨 결혼 7년차에 접어들어 아이를 갖기 위해 난임 휴직까지 했건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나였는데 아기만은 내 인생에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패배감이었다. 노력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얻어낼 수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해온 내게 임신은 끝낼 수 없는 숙제였다. 몇 차례 유산을 겪으며 나는 심해와도 같은 깊은 어둠속으로 침잠해갔다. 다른 사람들의 연락도 달갑지가 않았다. 내 인생에 아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그때, 보물 같은 아이가 찾아왔다.
너무도 귀한 아이가 찾아왔지만 책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임신 기간 중에는 책을 읽기가 어려웠다. 책만 손에 쥐면 어지럽고 메스꺼워서 도저히 활자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어렵게 얻은 아이다보니 임신 기간 동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고,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여 글의 내용이 머릿속을 튕겨나가기 일쑤였다. 책은 점점 내게서 멀어져갔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직장생활을 하며 1년에 책 100여권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인 나였는데.. 너무도 기다렸던 임신이었지만 이 기간은 독서에 있어서는 암흑기와도 같았다. 독서에 열중할 정신적인 여유와 체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출산을 하고 밤낮으로 아이를 키우는 중 이상하게 독서를 향한 마음속 불씨가 차츰 되살아났다. 필요에 의해 육아서를 읽기 시작하였는데 책을 읽는 그 시간은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독서를 향한 열정은 점점 커져갔고, 잠깐 아이를 맡기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아기가 자는 틈틈이 책을 읽었다. 그렇게 나는 점차 회복되고 있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시작한 독서모임. 출산 후 100일 쯤이었던 것 같다. 독서모임 멤버들은 나의 수줍은 제안에 다들 기다렸다는 듯 환영했고 그렇게 우리의 독서모임은 재개되었다. 우리는 책 추천을 받아 리스트를 만든 뒤 투표를 통해 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하였다. 기대를 갖고 책을 주문하고 육아하는 틈틈이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함께 이야기해볼 문제를 떠올려보았다. 이게 얼마만의 모임인가. 모임 생각만 해도 들뜨고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근 3년만에 온라인으로나마 함께 얼굴을 마주했다. 어린이집 다니던 아이를 둔 아빠는 이제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었고, 신혼부부는 그사이에 아이가 태어나 돌쟁이 아이를 키우며 모임에 참여했다. 서로의 근황을 전하며 나도 어렵게 엄마가 되었음을 알렸다. 다들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나는 못내 어색해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우리가 서로의 삶을 나누고 책의 신선한 관점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동안 어느덧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렇게 우리의 독서모임은 새로 시작되었다.
독서 자체가 갖는 유익은 누구나 안다. 독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준다. 하지만 독서‘모임’은 독서가 갖는 유익을 넘어서 우리에게 새로운 유익을 가져다준다. 독서모임을 통해 나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양함을 느끼고 포용과 관용의 태도를 배웠다. 내 생각을 보다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고,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어떠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경험한다. 이것이 독서모임이 내게 준 유익이다.
최근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책 불편한 편의점에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얼마나 달콤한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