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매달 Dec 12. 2019

Change your words.

삐딱이가 바라보는 세상

삐딱이가 바라보는 세상

 내가 예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영상이 있다. 시각장애인이 구걸을 하는 것으로 영상은 시작된다.


 'I'M BLIND. PLEASE HELP.'(나는 장님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그러나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그걸 보고 있던 한 여자가 와서 문구를 고쳐놓는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돈을 주기 시작한다. 궁금한 장님이 여자가 왔을 때 물어보았다. 내 종이판에 뭐라고 썼나요? 그러자 그 여자가 말한다. 뜻은 같지만 다른 말들로 썼어요. 그리고 영상에서 마지막으로 여자가 쓴 문장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IT'S A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아름다운 날입니다. 그리고 난 그것을 볼 수 없네요.)


 우리나라 옛 속담에도 있지 않은가. '아'다르고, '어'다르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닫아버리기도,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은 왜 꼭 불행해야 하나요?:빈곤 마케팅으로 보는 일반화의 오류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빈곤 마케팅'에 관한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후원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이런 빈곤 마케팅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이겠지. 이러한 빈곤 마케팅으로 인하여 인권문제가 발생하고 심지어 현재는 대역까지 등장하여 광고를 진행한다고 한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것을 안다. 행복과 돈은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가난한 사람은 모두 매일매일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인 걸까? 그렇다면 돈이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기만 해야 하는데 그건 또 아니다. 결국 부자 = 행복의 공식은 오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 = 불행의 공식 또한 오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후원을 받아야 하는 단체에서 불쌍하고 불행한 삶을 강조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불쌍하고 불행하다는 프레임에 갇혀버린다. 물론 한국형 자본주의 사회는 문제가 많다.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고 겉핥기식으로만 알고 있는 나도 계속 문제점이 느껴질 정도니까. 하지만 후원을 받을 수 있는 단기적인 효과만을 봐서는 안된다. 앞으로 그들에게 씌어질 가난이란 사회적 낙인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학이 되면 결식아동들은 불안해한다. 한 끼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곳도 없고, 결식아동이 햄버거나 치킨을 먹으면 결식아동이 햄버거를 먹어? 결식아동 맞아? 하며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관련 내용의 기사를 보며 깜짝 놀랐다. 결식아동은 그럼 편의점 삼각 김밥만 먹어야 하는 건가? 불쌍한 사람만 삼각김밥을 먹는 것인가? 왜 이런 프레임이 생긴 걸까? 가난한 사람은 왜 눈물을 흘리고, 힘들고, 안타까워야만 하는 것일까? 이러한 인식은 언제부터 생겼으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없어져야 할 많은 사회적 낙인들


 사회적 낙인들은 너무나도 많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생긴 낙인과 프레임, 가난한 사람에게 낙인 된 불행, 희생을 강조하는 한국 집단 등 열거하지 못할 만큼 다양한 낙인들이 존재한다. 한 4년 전이었나. 카페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영어 공부 방식을 추천해 달라고 하며 어떤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이런 부분에는 이상하게 갑자기 친절한 사람이 된다.)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하시는 것이라면 오픽이나 토익스피킹을, 정말 회화 실력을 올리고 싶은 것이라면 이런이런 프로그램이 있고, 어쩌고 저쩌고.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며 번호를 교환하고 후에 커피나 한 잔 하자고 계속 연락이 와 만난 자리에서 나는 너무 화가 나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살인자들은 조상 중에 살인자가 있는 것이고, 살인자의 DNA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거예요.'


 지금 내가 들은 소리는 뭐지? 나중에 DNA를 계속 이야기하고,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길래 사이비 종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우선 나는 너무 화가 나 그분에게 말했다. 언니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부전공이 복지예요. 사회적 낙인을 찍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어떤 아이의 아빠가 살인자면 그 아이는 언제든지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건가요? 그게 말이 되나요? 계속해서 DNA를 이야기하는 그 사람에게 나는 말을 끊으며. 언니 어차피 저와 언니의 대화는 계속 평행선인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배워온,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방향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예요. 언니도 물론 마찬가지겠죠. 서로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기로 해요. 하고 자리를 나섰다.


 물론 이 경우는 사이비 종교의 이야기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이다. 범죄자의 자식은 손가락질을 받고, 가난한 사람은 그저 불쌍한 사람이다. 이런 낙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 우리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게 생각하고 있을 생각의 오류를, 낙인을, 일반화를 경계해야 한다. 불행을 강조하지 않아도 우리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change your words, change your world

 

 첫 시작에 말한 영상의 마지막에 나오는 문장이다. 당신의 말을 바꾸세요. 당신의 세상을 변화시키세요.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은 세상을 바꾸는 첫 시작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겨울은 살찌는 계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