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했던 노래, 뉴스가 되다

이중생활자의 꿈

by 이중생활자 홍원표

우리가 무대에 오르자 몰려든 기자들의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동시에 켜진 방송국 카메라의 조명은 너무 환해서 무대 조명의 입체감을 지웠다. 무대 위에는 많은 깃발이 펄럭거렸다. 행사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있었다. 가슴은 긴장감으로 조여왔지만 우리는 힘차게 노래했다.


다음날, 모든 신문과 방송이 일제히 우리 사진과 영상을 쏟아냈다. 내 생애에 가장 뜨거운 관심이었다. 특이한 점은 우리 모습이 연예나 예술 쪽의 지면이 아닌 사건 사고가 담기는 사회 지면에 실렸다는 점이다. 기사의 내용도 우리가 공연했던 행사에 대한 것뿐 우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무대에 올랐지만, 렌즈의 초점은 우리 노래보다 그 자리에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 고무되었다. 언론에 내 모습이 나왔다는 것보다, 세상의 주목을 받는 뜨거운 현장에 설만큼 내 노래가 인정받았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캠퍼스에 가을이 내려앉은 1학년 2학기의 어느 날이었다. 누나밖에 없는 내게 친형이 생긴다면 딱 이 형이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늘 다정했던 노래패 회장 선배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우리 얘기 좀 할까?


평상시와는 사뭇 다른 선배의 분위기에 나는 이유도 묻지 못한 채 마른침을 삼키며 선배를 따라나섰다. 교정 한적한 구석에 멈춰 선 선배는 이전에 본 적 없는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되는 일인데.. 너 12월에 전대협 노래단에 가서 공연 한 번 할 수 있겠어?”


전대협 노래단. 선배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나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대협(전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은 전국의 모든 대학교 총학생회의 연대 조직이었다. 당시 전대협은 단순한 학생조직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4·19 혁명에 이르기까지 불의에 맞서 가장 먼저 거리에 나섰던 학생들의 계보를 잇고 있었다. 80년대와 90년대를 가로지르며 민주화의 최전선에서 독재의 서슬 퍼런 칼날에 맞서고 있었다.


‘전대협’이란 이름은 신입생인 나에게 ‘독립투사’와 동급의 경외심을 일으켰다. 대체 저 무시무시한 권력 앞에 맨몸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학점과 취업이라는 안온한 미래를 향해 달리는 이들과 달리, 자신의 삶을 던져 모두의 내일을 구하려 하는 그들의 희생은 늘 나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게다가 전대협 노래단이라면 전국 최고의 뮤지션 선배들이 모여 있을 것이 뻔했다. 그런데, 코흘리개 1학년인 내가 그곳에서 노래를 한다니.


“올해 12월에 모든 노동자, 농민, 학생, 시민 단체들이 모여서 ‘전국연합’이란 조직을 만들거든. 그때 전대협 노래단이 축하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노래할 사람이 조금 더 필요한가 봐. 우리 학교에 도와줄 사람이 있겠냐고 연락이 왔더라고. 그래서 문득 네 생각이 나서 얘기하는 거야. 부담스러우면 안 해도 되고.”


너무 아득한 과거의 일이라 그 순간의 감정들이 흐릿한 잔상으로만 남아 있다. 갓 스무 살이 된 대학교 1학년 생이었으니 분명 덜컥 겁이 났을 것이다. 워낙 엄중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잡혀 가진 않을까 막연히 상상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두려움을 무릅쓰고 서툰 사명감과 함께 한 번 해보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었던 것은 아마 고등학생 때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꿈만 같았지만 결국 포기해야 했던 나의 축제. 이번만큼은 나의 무대를 그 슬픈 꿈의 서막처럼 만들지 않겠다는 절박함. 실패의 기억이 역설적이게도 용기가 된 것은 아닐까.


그날 이후, 나는 전대협 노래단에서 공연을 준비했다. 모든 멤버들이 네다섯 학번 위의 까마득한 선배들이었다. 그중 전설처럼 이름을 날리는 학생 가수들도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실력은 압도적이었고 그만큼 당당했다. 나는 그런 선배들의 자신감이 부러웠다. 그래서인지 함께 연습하는 시간이 내게는 매번 숨 막히는 실전이었다. 나의 미숙함이 공연의 오점이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나는 노래하고 또 노래했다.


결국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듬해 나는 ‘조국과 청춘’에서 노래하게 되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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