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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Nov 28. 2021

각자의 박스 안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니

요새 MBTI검사가 유행이라고 하기엔 유행 탄지 한참이 된 것 같다. 이제 모두들 자신의 성격을 알파벳 네 글자 안에 넣어서 자기소개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혈액형을 묻는 질문은 식상해진 지 오래고 그걸로 성격토크를 하는 것도 진부하기 짝이 없다. 처음 혈액형별 성격유형이 유행했을 때도 이렇게 재밌으면서 동시에 황당한 느낌이었을까? 사람들이 자신의 혈액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라고 한다. 전후 국가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비상시에 급하게 수혈을 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야 해서라고 하더라. 사람들이 혈액형에서 MBTI로 꾸준히 자신과 주변 사람의 성격을 탐구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무엇에 대비하기 위해 이렇게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못 해서 안달인 걸까? 내 기준에서 너무너무 이상한 인간을 만나서 고전한 적이 있는데 다시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당하지 않으려고 총알을 모으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런 사람에게 대처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복기해보려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판을 돌아보며 조용히 다음 수를 기약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성격을 연구하고 구분해보려는 시도는 심리학 역사상 아주 오래된 일이다. 성격이론은 사람을 어느 각도에서 어떤 식으로 바라볼지 결정하는 렌즈 같은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 이론 갈래마다, 또 그 이론을 받치고 있는 학자마다 각자가 구축한 성격이론을 가지고 있다. 그중 MBTI는 칼 구스타프 융이라는 심리학자의 성격이론을 바탕으로 마이어-브릭스 모녀가 만들어낸 성격 검사이다. 검사가 만들어진 당시는 근거 기반의 심리검사 개발 기술이 갖춰지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MBTI 개발자들은 융의 이론적 기반 위에 자신들의 경험을 더해 사람들의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분류했다. 물론 현재 사용되고 있는 MBTI 검사는 이후 계속된 연구에 따라 상당 부분이 수정되었고 현재는 다년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의 고유한 모습을 나타내는 신뢰로운 검사로 자리매김했다. MBTI검사가 말해주는 성격 분류는, 다른 모든 성격이론이 그러하듯 결국 성격에 대한 누군가의 관점이다. 실제로 인간의 성격이 고작 16가지의 유형으로 나뉠 만큼 단순할 리도 없고 한 사람의 성격을 오직 한 가지 유형에 대한 설명만으로 완전히 기술할 수도 없다. 한국 MBTI연구소 연구부장님은 최근 일어난 MBTI붐에 대해 사람을 유형이라는 박스에 처넣으려는 시도 같다고 말하며 우려를 표했다. 그 검사가 말해주는 건 하나이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이런 경향을 선호한다. 선호先好라는 말을 뜯어보면 '먼저'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것도 좋고 그것도 좋아, 그러나 굳이 고르자면 이 쪽이지. 혹은 둘 다 싫으니 아무것도 고르고 싶지 않지만, 둘 중에 조금이라도 덜 싫은 것을 고를 수는 있어.


출처 : https://youtu.be/rZ-x5uNhb4w






무언가에 대한 선호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공간, 좋아하는 소리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늘어놓아 보라고 한다면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방식이나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 또한 선호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좋고 나쁜 것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때론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서 논할 때보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의견이 더욱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바로 그 옳고 그름이 아닌 선호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었다. 우리는 분명 같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문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마치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처럼 들렸고, 이야기는 점점 산으로 가는 듯 느껴졌다. MBTI상으로 N형인 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머릿속으로 다음 주제를 연상하며 여기서 저기로 순간이동을 하는데 S형이었던 그 친구는 돌다리를 건너듯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면서 이동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나는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고 앉았는데 그 친구는 진짜 있을 법한 일들을 말했다. 이 글을 쓰는 방식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별로 생생히 와닿지 않는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실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눴다는 거야? 뭔 얘기 했는지 하나도 안 써놓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어떻게 이해하란 거야.'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의 차이는 n극과 s극처럼 서로 만날 일이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이 친구와 이전까지 나눴던 대화에 대해 생각해본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설마 처음부터 줄곧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물론 그럴 리가 없다. 확률적으로도 그러하고, 여태까지 함께했던 시간들이 줬던 편안함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어떤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것과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가까워지는 것과는 별로 연관이 없어 보인다. 서로 아주 달라도 아주 좋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때면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다른데 이렇게 오랜 시간을 어울려 다녔다니.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성향이 비슷하다고 해서 다 좋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서 무언가 아웃라인을 잡거나 세부적인 내용을 확인하거나 실제로 필요한 것을 묻는다면 아마 우리는 높은 확률로 벙쪄선 서로를 쳐다볼 것이다. 또 확실한 것 없이 늘 열린 결말을 내느라 대화를 매듭짓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얼마나 찝찝하고 불편한 일인가? 결론을 내지 않고 열어두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상당하다. 마치 대기전력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연비 안 좋은 가전제품이 된 듯한 기분이다.






MBTI의 성격유형별 설명을 읽다 보면 성격을 고작 16가지로 나누었을 뿐인데도 이렇게나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파벳이 한 개만 달라도 아주 다른 성격이 된다. 심리검사는 결과가 어떻게 출력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훨씬 중요하다. 기왕 MBTI라는 것을 해서 내 성격이 어느 박스 안에 들어가는지 알아냈다면 이제 이걸 어떻게 써먹어볼까? 어떤 면에서는 아주 다른 사람들이 서로 잘 지내보기로 했다면 나와 네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확인사살을 굳이 다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와 너 모두를 존중하는 의사소통 방식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i-메시지는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감정을 느낀다'라고 자신의 상태를 상대방에게 담담히 알려준다. 여기에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 추측하는 언어가 빠져 있다. MBTI를 통해 알게 된 자신의 성격유형 또한 이렇게 활용해보면 좋겠다. MBTI 검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이지, 각자를 어떤 틀 안에 가두고 나와 맞지 않는 특성을 배척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과를 좋아한다고 배를 좋아하는 사람을 나무랄 수 없듯이, 왼손잡이를 놀리는 오른손잡이가 존재할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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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areer4u.net/Main/Main.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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