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코로나 확진자가 연 몇 만 명을 넘어 몇 십만 명을 돌파했을 때 까지도 남의 일일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저는 자부하건대 지구에서 방역을 가장 철저하게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지구까지는 아니고 대한민국, 그것도 아니고 서울? 아무튼 저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무척이나 애를 쓰는 류의 사람이었어요. 하라는 것을 웬만하면 다 하려고 노력했고 자제하라는 것은 앞장서서 안 했어요. 1차, 2차를 지나 3차에 이르기까지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을 예약해서 완료했고 식사 모임을 자제하라고 해서 식당이나 카페는 웬만하면 방문하지 않았어요. 3월 들어서는 잡혀 있던 약속들도 줄줄이 취소했죠. 그중에서는 정말 아까운 것들도 있었어요. 저는 6년 차 아미인데 글쎄 RM님이 서울 한구석에 있는 우리 동네 기찻길 어귀의 어떤 카페에 와서 크리스마스 블렌드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마시고 비스킷을 드셨다는 거예요. 그리고선 이 원두가 무엇이냐 묻고 커피 잘 마셨다고 빙긋 웃으셨대요. 그런 카페는 아미들이 돈쭐을 좀 내줘야 하지 않겠어요? 가야지 맘 먹고 나서 보니 이미 줄이 길다길래 조금 넉넉하게 일정을 잡아봤어요. 그 일정은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었지만요. 최근에는 일을 하면서 정말 좋은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이 우연히도 제가 아는 분의 아는 분이라는 거예요. 그 분과 4일간 즐겁게 함께 일했던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고 이렇게 만나게 된 게 신기해서 셋이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어요. 맛있는 것도 먹고 좀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설렜죠. 그 약속도 취소했습니다. 모두들 주변에 확진자가 너무 많아서요. 그리고 만약 그날 그 약속을 취소하지 않았더라면 셋 다 확진되었을지도 몰라요. 주변 사람이 모두가 다 확진되더라도 나만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무의미했는지 절절히 느끼고 있어요.
재택치료 및 자가격리 첫날까지만 해도 믿어지지 않았어요. 내가 정말 코로나 때문에 집 밖을 못 나가고 있는 게 맞나? 내가 코로나에 걸린 게 맞나? 나에게만은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게다가 저는 원래가 집순이라서 혼자 집에 머무는 시간이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어요. 갑자기 뭘 해야 하나 황당하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었죠. 내가 코로나에 걸리건 말건 수건 빨래는 돌려야 하고 싱크대의 음식물 찌꺼기는 계속해서 쌓여갈 테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일주일간 집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는데 냉장고가 텅텅 비어있었어요. 그래서 눈을 뜨자마자 커피 한 잔 내려놓고 식단표를 짰어요. 솔직히 이건 좀 재밌었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슨 요일 점심, 저녁에는 뭘 먹으면 좋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예전에 맛있게 해 먹었던 음식들을 쭉 리뷰했거든요. 식단을 다 짠 다음에는 거기에 필요한 식재료들을 주문했어요. 이렇게 많은 식재료를 시키다니, 이 사람 설마 코로나 환자라서 지금 자가격리 중인가? 으으. 이 집에 배달하자마자 바로 손 소독해야지. 혹시 배달기사님께서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지 살짝 염려되었어요. 괜한 자의식이 발동한 거죠. 나는 어쨌든 코로나 확진 자니까요.
내가 코로나 확진자라고요? 자신이 코로나 확진자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상담을 할 때 자주 던지던 형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해 보았어요. 가장 처음 "내가 '그거'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건 처음 경미한 호흡기 증상을 느낄 때였어요. 저는 잔병치레를 별로 안 하는 편인데 특히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때부터는 감기에도 걸리지 않았어요. 독감주사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맞았고요. 그런데도 몸이 아팠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내가 코로나 확진자라는 정체성을 형성하기에 충분치가 않았어요. 바이러스 양성 반응이 확인되었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내 이름 석자와 '양성'이라는 단어가 나란히 한 줄로 놓인 게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그 뒤로 격리 기간 동안 몸의 어딘가가 아픈 것이 느껴질 때 종종 '이것은 코로나로 인한 통증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무언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어요. 그런데 이렇게 몸의 경험을 가지고 생각하면 내가 확진되었다는 사실이 좀 더 와닿아요. 통증을 바라보는 시선도 약간 달라져요. 성가신 오한이 드는 것은 바이러스랑 내 몸이 싸우고 있다는 뜻으로 읽혀요. 역시 몸으로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는 게 이런저런 생각을 덧붙이는 것보다 훨씬 마음건강에 도움이 된다니까요.
하지만 여기까지는 늘 건강했던 내가 '환자'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지, 코로나 확진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좀 거리감이 느껴지네요. 코로나가 아니어도 살면서 크고 작게 몸이 아파본 적은 많았으니까요. 심지어 백신을 맞았을 때에도 이 정도는 아팠는걸요. 내가 환자는 환잔데 어떤 환자인지 좀 더 확실하게 와닿았던 것은 후각을 잃으면서였어요. 찌개 맛이 거의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걸 느끼면서 내가 지금 코로나를 앓고 있는 게 맞는구나라는 확신이 섰어요. 아침을 먹을 때는 커피를 코 밑에 바짝 갖다 대야 겨우 커피 향을 아주 조금 느낄 수 있었어요. 연한 커피는 물 대신 마시는 보리차와 거의 구분되지 않아요. 에어프라이어에 냉동 생지로 된 크루아상을 구웠는데 집안 어디에서도 빵 냄새가 나지 않았어요. 빵을 베어 물고 나서야 버터향이 아주 조금 느껴져요. 지금도 가진 것 중 가장 향이 진한 향수를 두 번이나 뿌렸는데 거의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아요. 자기 전에 향수를 칙칙 뿌리고 눕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것도 당분간은 부질없는 행동이 되겠어요. 가습기에 아로마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렸는데도 달리 느껴지는 게 없어요. 일시적인 증상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런저런 냄새들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좀 슬프더라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거꾸로 내가 그 냄새들을 얼마나 좋아해 왔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어요. 내가 커피의 고소한 향을 그렇게까지 좋아했구나. 그래서 아침잠이 많아서 눈을 뜨면 정신을 못 차리는데도 일어나면 제일 먼저 커피를 내려서 마셔왔던 거구나. 나는 빵이 맛있어서 좋아하기도 했지만 빵가게에서 갓 구운 빵 냄새가 흘러나올 때의 따스한 느낌 그리고 하루가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그 에너지가 반가웠던 거구나. 자기 전에 뿌리는 향수는 흑백 세상에 색깔을 입히는 느낌이라서 포기할 수 없었구나. 어차피 곧 잠들거라 몇 분 즐기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뿌렸던 이유를 이제 알겠네. 왜 항상 없어진 다음에야 그게 얼마나 귀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머리로는 안다고 하면서도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것들이 없는 세상을 경험해보기 전에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절대 알 수 없는 것인가 봐요. 스스로 코로나 확진자라는 느낌은 둘째치고 내가 평소에 뭘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고 있어요. 솔직히 저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으려고 백방 노력해왔던 것과는 별개로 코로나 시국을 버텨보자고 마련한 대안들, 이를테면 마스크 꼭꼭 잘 쓰기라던지 불필요한 모임 자제, 비대면 교육과 미팅을 환영했거든요. 지금 마주하고 있는 뉴 노멀은 저에겐 불편한 것보다는 편리한 것들이 더 많다고 느끼고 있어요. 안전하고 독립된 공간에서 내가 할 일을 하는 것,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정립한 규칙을 지키며 매일의 루틴을 보내는 것, 그러면서도 마음이 병들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양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유지하는 것. 이런 것들이 가능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 며칠 내가 원하는 종류의 삶을 잠깐 지내보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늘 반복되어 왔던 일상생활은 나에게 있어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을 멈추게 했어요.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오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이걸로 충분한가? 만족할 수 있나?'라는 의문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것은 무척 성가신 일이에요. 지금 내 삶에 무엇이 부족하고 불만족스러운지 찬찬히 뜯어봐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불편해서 애써 못 본 척했던 의문이 혼자가 되어 주변이 조용해지니까 슬며시 고개를 드네요. 그리고 며칠간 평범한 일상과는 조금 다른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이건 아닐지, 혹은 저건 아닐지 요리조리 뜯어보는 일을 열심히 해 보고 있습니다. 한동안의 작은 실험도 이틀 뒤면 끝이 나는데 이 밀폐된 실험실 밖을 나가서라도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들을 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겠습니다.
* 사진 : 집에 있다 보면 평소에 소홀했던 초록이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쳐다보며 돌보게 된다. 덕분에 겨우내 이파리 하나 내지 않던 초코싱고늄에서 새 순이 나는 순간을 바로 포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