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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Jan 31. 2022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 그리고 내 감정들이 요동쳤다.


나는 결국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오미크론인가 뭔가 암튼 그것.

- 심지어 내가 아내도 전염시켜 버렸다.


확진 판정일 : 1/11(화), 재택치료 결정

격리 해제일 : 1/24(월)


지금은 격리 해제된 지 정확히 1주일이 된 1/31(월), 조금씩 패닉에서는 벗어나고 있다. 그래도 불안감이란 건 아직 떨쳐내기 힘들다. 설 연휴이지만 혹시 내 몸속의 코로나 잔여물이 누군가를 전염시킬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고향집과 처가댁에는 가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이다. 아내와 때아닌 동계 합숙훈련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러모로 면목이 없다. 아직도 나는 슬픔의 잔여물이 남아있다.


나는 쿼런틴 기간 동안 아래와 같은 생각들을 했다.


1. 부정 : 처음엔 인정할 수 없었다. 며칠간 같이 다녔던 무리들 중에서 나만 양성 판정이 나온 것이 이상했다. 더군다나 나는 지인들이 서운해할 만큼 방역수칙을 지키려고 용쓰는 사람이 아닌가. 이 년여간 열 번은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을 테고 모두 당연하듯 음성이 나왔었는데, 이번엔 왜? 검사에 오류가 있는 건 아닐까? 일단 믿을 수가 없었다.


2. 억울 : 그래서 억울했다.  불행한 일이 나에게 일어난 까닭을 공허하게 묻곤 했다. 작년엔   그런 적도 있었다. 누군가가 만나자고 했을  찡그렸던 , 그들의 호의를 나의 불편함으로 덮어버렸던 . 그래도 나는 모두의 안전을 위한 당위성이라는 것을 간신히 무기 삼아 둘러싼 감정들을 외면했었다. 이렇게   알았으면  그랬을까. 내가 했었던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3. 분노 : 겪어 보지 못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매섭게 몰아쳤다. 밖에 나갈 수도 없거니와 누군 가에게 털어놓지도 못했다. 창피했다. 스트레스들이 쿵쿵 하늘에서 떨어졌고 켜켜이 쌓아놓는  밖에는,  무게 밑에서 쪼그라드는  말고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살기 위해 일해야 했고, 먹어야 했고 풀어야 했다. 나는 작은  하나하나에 분노를 하고 있었다.  상대는 나보다 약한 사람들.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짜증을 냈고, 배달음식점의 응대태도에 날을 세웠다. 그리고 밤이 찾아오면, 나의 한심함에 괴로워했다.


4. 자책 : 원인 제공의 주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결국   때문인 것인  같았다. 도대체 어디서 전염된 것인지  수가 없기에 무언가를 원망할 기회조차 잃었다. 명확히  때문에 아프게  아내를  가슴이 무너졌다. 그녀는  마음을 알고 수시로 괜찮다며 되려 위로했다. 나는 어딘가로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쥐구멍 속에서 나의 부주의함을 책망하기 시작했다. 요새 일이  풀린다 했다. 코로나에 대해서도 예전보다 안일하게 여겼던  같았다. 벽시계를 거꾸로 여러 바퀴를 돌리는 상상을 하며 누워있었다.


5. 체념 :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원인을 찾기 힘든 큰 일을 겪었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다. 어쩌면 다행이다. 타인을 미워한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스스로를 꾸짖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며칠간의 시간들이 도와줬고, 나는 과거보다 미래를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코로나 걸리기 전에, 내가 타인들에게 했던 짓들을 반성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코로나에 걸린다면 꼭 몇 번은 전화해주기로 다짐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오롯이 느껴지는 감정들을 어딘가에 기록해두기로 결정했다. 좀 더 자주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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