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 연길 Aug 28. 2024

나 자신과의 관계

영화 '챌린저스' 감상평



타인의 평을 보지도 듣지도 않고 쓴 관람일지.

전혀 분석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내 개똥철학과 궤변이 가득 담긴다. 그래서 좋다.

앞으로 영화 감상은 최대한 이런 식으로 하고 싶다. 

나무위키나 이동진 유튜브는 글을 쓴 후에 봐도 늦지 않다.



2024년 6월 13일 10시, 라이카시네마 B6석에서 보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세 명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한 명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다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개인적인 해석이다. 타시 덩컨은 ‘욕망’을 나타낸다. 모든 인간이 가진 마음의 씨앗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데 아트는 ‘절제’, 패트릭은 ‘분출’하는 태도를 대변한다고 보았다. 두 자아의 형태는 한 사람이 동시에 지닐 수 있다. 다만 그들의 키스처럼 늘 뒤엉킬 때가 문제다.


 내가 감정이입을 한 캐릭터는 역시 아트 도널드슨이었다. 욕망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그와 가깝기 때문. 사실 그런 자세는 꽤 괜찮은 방법이기도 하다. 모두가 억제하기를 약속한 사회 속에서, 그러니까 룰 안에서 성정대로 인내만 해내면 된다. 이기는 게임을 쌓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2라운드 경기도 못 넘기는 본능에 충실한 분출이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수밖에. (내심 부럽기도 하다)


 다만 인간이기에 오래갈 순 없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균열은 찾아온다. 마음껏 분출하고 싶은 마음을 (어쩌면 필연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패트릭이 라켓 헤드에 공을 끼울 때마다 씁쓸하게 웃어넘기는 것도 지친다. 각성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 온몸에서 땀이 날 정도로 좋아하는 것에 열중하는 몰입의 찰나. 그때 대면하게 되는 마음의 소리, 이 영화에서는 타이브레이크로 표현하고 있었다. 나도 그 시퀀스에 흠씬 빠져들었다. 그러면서도 뜨끔했다. 나는 나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인생에서 중요한 과제는 자기의 다양한 자아를 통합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자기 자신이라고 다 잘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거든요. 과거의 나도 저는 타인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의 내가 잘 통합되지 않는 것의 증거인 셈이죠. 그때의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타인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소설이든 영화든 어디에서도 좋아요. 그 과정이 자기 사랑의 시작인 것 같아요 (김영하 멘트 요약, 「tvN 알쓸인잡-우리는 어떤 인간을 사랑할까-1편」, 2022. 12. 9)






 왜 감독은 테니스를 소재로 골랐을까. 한 인간이 가진 두 감정의 랠리를 보여주는 효율적인 수단이기 때문이었을까. 발리를 주고받다가 결국 그들이 엉키는 장면은 꽤 극적이긴 했다. 나도 어느새 타시가 되어 “컴온!”을 외치고 있었으니까. 분명 그 이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보여준 테니스 코트가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이 스포츠 종목만 줄 수 있는 시각적인 쌔끈함이 분명 있다. 그러고 보니 이 감독(루카 구아다니노) 이런류 미장센의 변태 같은 장인이다. 여러모로 볼거리도 많은 영화였다.


 메모를 휘갈기고 나서 영화관을 한번 둘러보았다. 우연인지 비치된 어라운드 매거진이 눈에 띄었다. 이번 호 주제는 관계의 모양(Being together). 목차를 살펴보니 역시나 자신과의 관계도 꼭지로 다루고 있었다. 라이카시네마 문을 열고 나오면서 그 잡지를 주문했다. 이 모든 과정까지 영화에 대한 경험으로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은 생존을 위한 착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