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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Sep 11. 2024

여행지에서 신발을 사는 이유

홀라인 평대점 방문기



 빡빡이로 머리를 밀고나서 조금 즐거워졌다. 일단 너무 편해져 괜한 짜증이 현저히 감소했다. 하루의 가용시간 또한 늘어났다. 오분 안에 샤워하고 스킨로션까지 바를 수 있다. 오분만에 아기 침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약간 바보같이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능이 감소한건지 행동이 약간 어벙하고 존박표정이 될 때가 있는데, 요즘날의 고테츠 머리스타일이 그런 간지를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아웃도어 라이프 스타일 샵, 홀라인 평대(@hollain_eastjeju) 구경은 즐거웠다. 머리가 짧아지니 왠지 비박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객기덩어리가 되었다. 실제로는 글램핑도 잘 안가지만 상상은 자유라서 즐겁기만 하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KEEN의 트래킹화. 올해는 특히 여행지에서 신발을 자주 사고 있다. 빈도로 놓고보면 가장 일상적인 아이템이라서 여행의 즐거움을 떠올리는 데 좋기 때문이다.


 신어보고 맘에 들면 아내와 하나씩 살 심산이었다. 아예 똑같은 색깔, 그러니까 커플운동화는 어쩐지 쑥스러워서 피하려 했지만 내가 고른 디자인은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용이었다. 이 때부터 상황이 약간 맥없이 웃기기 시작했다. 황해의 하정우가 도박판에서 잃을 때처럼 초조한 몰골이 된 나는 더군다나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기에 기분이 몹시 초라해졌다. 그래도 신어봐야했다. 사장님께서는 정확한 실착 사이즈 측정을 위해 샘플 양말을 빌려주신다고 했다. 흔쾌히 승낙하지 말아야했다. 발가락 양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벙어리 양말이었다. 엄지발가락 부분과 디 아더스만 나뉘어져 있었다. 교토에서 얼굴을 하얗게 칠하신 분들이 신었던 걸 본 것 같다. 왠지 바보같은 내 모습을 보고 아내의 웃참챌린지가 시작되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양말의 색깔은 국방색이었다. 무장공비처럼 허겁지겁 양말을 챙겨신었다. 닌자거북이 발을 신발에 쑤셔넣고 대충 사이즈를 확인한 뒤 구매했다. 그때부터 정신이 혼미했다. 사장님께서 홀라인은 서울에도 있다고 하셨는데 내 머릿속에 퓨즈는 이미 나가있었다.


 찾아보니 상수역(@hollain)쪽에 있다. 집에서 멀지 않으니 가볼 예정이다. 양말은 꼭 신고갈 생각이다.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강태공이 티백을 낚시하는 귀요미를 추가로 구매했다. 다행히도 알리나 테무에 없다. 요 신발을 안 신은 날에는 책상에서 홀라인의 굴욕을 떠올리며 미소짓게 되기를 고대한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캠핑은 못하더라도 제주에서 트래킹은 꼭 해볼 계획이다. 그 때 홀라인에서 쉬어가며 오늘을 이야기하면 즐거울 것임이 분명하다. 제주의 동쪽을 가면 들릴 곳이 생겨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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