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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Oct 23. 2024

흙수저를 소멸시킬 흑수저



 장안의 화제였던 흑백요리사. 나도 봤다.

 동네에서 팝업 술집을 열었는데, 레퍼런스를 위해 시청해야만 한다, 라는 명분 덕에 요즘 가장 소중한 잠까지 줄여가며 열렬히 봤다. 금단의 열매는 어찌나 달콤하던지. 아무튼 이미 한 차례 유행이 지나간 이 틈을 기다린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감상평을 올리고 싶어진 이유가 있었다.


“흑수저셰프의 금수저맛집”

어딘가 광고카피로 쓰이던 이 문구 때문.


스마트폰으로 그 글귀를 보자마자 이병헌처럼 이마를 짚으며 “아,안돼!”를 외쳤다. 






불공정하면 누가 이기든 지든, 카타르시스가 없거든요. 많은 사람들은 불공정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서바이벌 예능마저 불공정하면 그걸 보고 화를 내요. (폴인 인터뷰 : 흑백요리사 윤현준 PD가 밝힌 기획법, 2024.10.11)






 나는 이 프로그램에 감사한 점이 하나 있다. ’흙수저‘라는 역겨운 단어가 머릿속에서 조금 희미해졌다는 점이다. 컨텐츠가 세간의 이슈가 된 덕에 흑수저라는 발음을 들으면 흙수저보다 흑수저가 먼저 떠오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부디 그러셨으면 좋겠다. 이참에 장수 프로그램이 되어 흙수저라는 단어를 소멸시켰으면 한다.


 흑수저는 다행히도 입에 물고 태어난 개념이 아니다. 하물며 백수저도 처음엔 모두 이름없는 흑수저였다. 이름 석자로 설명이 되기 전까지 물려받은 것도 핸디캡도 없다. 본인이 획득한 계급장이다. 금수저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길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과열경쟁의 끝은 경쟁조차 하지 못하는, 그러니까 계층구조가 공고히 만들어지는 현상일텐데, 백수저가 자기 이름을 걸고 심사위원의 눈까지 가려가며 공정하게 경쟁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흑수저도 자신이 무명임을 인정하고 별명으로 불리우는데 동의한다. 양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시작하기도 전에 좌절하게 만드는 “흙수저”같은 단어가 성행하던 시대를 거치다보니 이런 승부의 모습이 신선하고 오랜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적 성공을 흑백이라는 이분법논리로 나누는 것이 걱정된다면 3화의 38분52초의 장면을 추천한다. 흑백 일대일 매치에서 에드워드 리와 고기깡패가 냉장고에 재료를 꺼내러 걸어가는 장면이다. 한쪽엔 검은 배경에 흰 냉장고들이 다른 한 쪽엔 그 반대의 것들이 줄세워져 있었다. “Black side? White side?” 에드워드 리가 물었다. 

 “..Right side” 고기깡패가 고심하다 답했다. 

 요리를 향한 출연자들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작 그들에게 흑백은 사실 크게 중요한 이슈도 아니였다. 


공정하고 대등한 연대의 시작이다. (송길영 저, 『시대예보:호명사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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