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 연길 Nov 28. 2024

양육자 25인의 전시 소식

그리고 굳이 써보는 내 일기

24.11.27 


“육아를 하고 있지 않을 때에는 육아 일기를 열심히 썼다”

올해 내 생활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몰입의 시간이었다.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원래 굳이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쓰다보니 잘 하고 싶은 욕심이 난 것이다. 심지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구태여 어려운 길을 갔다. 휴직기간에 실컷 보려했던 넷플릭스는 아까워서 해지했다. 닉네임 투머치. 과몰입하고 있다는 생각도 안한 건 아니었다. 한두번씩 현타가 왔지만 허벅지를 찔러가며 썼다.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백번이고 접혔을 의지다. 방구석에서 nook409 긴 테이블 왼쪽에서 서대문도서관 2층 간행물 자료실 B2좌석에서 구태여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여름, 이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귀인 뜨스구스(@thsgus)님의 소개로 밑미(@nicetomeetme.kr)를 알게 되는데..


육아일기를 쓰는 리츄얼 커뮤니티.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모국에 당도한 탕아처럼 안도했다. 같이 쓰니 마음이 좋았다. 육아에 대한 좋은 생각들도 배웠고, 무엇보다도 누군가를 보호하며 사는 피폐한 쏘울을 보호 받았다. 위로였다. 아침에 먹는 설렁탕 같았다. 매일 뜨끈하고 든든했다.




이 모임에서 전시회를 연다. 멤버들이 썼던 일기를 각자 엮어보기로 했다. 기념물이자 출품물을 만들어 보기로 한 것. 나도 운좋게 참여하게 되었다. 어차피 인쇄해서 아이에게 주려고 했던 거, 굳이 예쁘게 책으로 만들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번졌다. 호기롭게 시작했다만, 당연히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을에는 거의 이 일에만 매진했던 것 같다. 구태여 컴퓨터에 인디자인을 설치했고, 출판 강의를 들었다.


아이는 내가 굳이 안해도 될 일을 하게 해준다. 그녀가 준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다. 내 별명은 미스터 효율성이었다. 여행은 물론, 주말 나들이 때도 동선을 짜는 인간이었다. 시간 단위로 스케쥴링 하는 걸 즐기는 부류였다. 육아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음’에 뭇매를 맞고, ‘내 뜻대로 되는거 없음’과 결탁하다 보니 성향이 바뀐 거다.

그러던 차에 육아일기까지 쓰게 되었고, 이렇게 전시에 출품까지 하고 있는데 뭐랄까 약간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유용성을 굳이 따지지 않는 삶, (어쩌면 육아를 포함) 굳이 하는 일들로 채우는 삶. 시간을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오히려 시간의 주인이 되고 있는 듯한 기분. 그런 잡생각들이 한 꼭지씩 모여 어엿한 300페이지짜리 기록물이 되었다.




굳이 이렇게 SNS에 올리고, 세상에 내보이는 이유는 (내가 관종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은 아래의 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전시팀 카톡방에서 다시 공유되어 반가웠다.


“소신”이라고까지 말하면 약간 거창하고 쑥쓰럽다. 나는 “굳이”라는 단어가 딱 좋다. 내가 좋았던 건 구태여 널리 알리자. 오늘도 내가 무언가를 굳이 쓰는 명분으로 충분하다.





“제가 받은 영감, 좋아하는 것은 제 선에서 그냥 소화되고 끝날 수도 있지만, 그걸 알리면 누군가 우연히 알게 되고, 좋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어요. 굳이 해야 되는 기록을 하고 싶어요. 그 주제는 환경 이슈가 될 수도 있고, 새롭게 일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겠죠. 말하고 실천하다 보면 실제로 바뀌기도 하니까요. 그런 기록자가 되고 싶어요 (손현, 『글쓰기의 쓸모』 중 이승희님 인터뷰, 2021)”





최근에도 전시준비 카톡방에서 회자된 이 대담. 다시 읽으니 역시 좋다. 전시에 많이 와주세요! 



예약링크 :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1275554/items/6321835?startDateTime=2024-12-05T00%3A00%3A00%2B09%3A00&tab=book



매거진의 이전글 흙수저를 소멸시킬 흑수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