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같은 크리스마스

이런 크리스마스도 좋다

by 홍 연길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에게 무슨 선물 받고 싶어?”

“새우!”

”응!?“


잘못 들었나 싶어서 12월 내내 물어봤었다. 늘상 대답은 같았다. ”새우(shrimp)“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인천에 놀러 갔을 때가 떠오른다. 까주는 족족 새우를 흡입하던 그녀. 영속할 수 없는 물건을 지니기보단 현재의 포만감에 집중하겠다는 심산인가.

리빙 탈 물질주의, 물욕 없는 아이, 그녀 덕분에 고심은 깊어만 갔다. 어떻게 하지? 새우인형을 사야 하나(그런 것이 있나), 새우과자가 어떨까(소중한 의견을 주셨던 지인 감사합니다). 고민의 끝은 “감히 고객의 뜻을 의역하지 마라. 그들이 원하는 걸 하라”. 새우를 먹고 싶은 것이 소원이니 새우를 먹게 해주는 것이 왕도다. 마켓컬리 산타에게 루돌프 샛별배송을 부탁드렸다.


이브날에는 어린이집을 땡땡이치기로 마음먹었다. 복직이 다가오니 내가 더 아쉽다. 힘들긴 해도 꼭 붙어있고 싶었다. 아내 회사 앞으로 가서 종로 직장인들 틈에서 만두전골을 점심으로 먹었다. 감사하게도 아기의자가 있는 식당이 직장인 거리에도 있었다. 날은 추웠지만 기분이 따뜻했다. 아이도 마음이 편했나 보다. 기저귀경보가 떴다. 당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그렇게 대하는 편이 좋다. 크리스마스니까. 쿨한 표정으로 명동 롯데백화점 7층 유아라운지로 아이를 안고 갔다.



원래 명동 성당에 갔다가 캐럴이 울려 퍼지는 주변거리를 거닐려고 했다. 딸과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기저귀를 갈고 창 밖으로 보이는 명동 거리를 바라보고 바로 마음을 접었다. 그날만큼은 대한민국에서 단위면적당 인구밀도가 제일 높은 곳. 명동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육아인이 되면서 얻게된 포기의 지혜. 날씨도 쌀쌀해서 하루종일 백화점 안에서 놀았다. 1층 샤넬매장부터 10층 면세점 잔망루피매장까지 부녀가 정말 두루두루 훑고 돌아다녔다.


퇴근하고 뛰어온 아내와 14층 식당가에서 빨간 낙지볶음을 먹고, 지하 1층에서 쿠키선물을 사고, 다시 1층으로 올라와 구세군 냄비를 찾았다. 아이 손을 잡고 성금을 했다. 크리스마스에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딸랑딸랑 아저씨가 기억에 남았나보다. 아이의 눈이 종처럼 빛났다. 백화점 앞 정류장에서 캐럴을 들으며 7021번 버스를 기다렸다. 한 곳에 더 들러야 했다. 이브 파티에 초대해 주신 동네까페 까루나(@gallerykaruna)에 방문했다. 우리 동네에서 아이를 예뻐해 주시는 분들이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곳이다. 따뜻했다.



다시 새우 얘기로 돌아가서,

폭풍 같은 하루를 보낸 나는 당연하게도 아이를 재우다가 잠들었는데.. 늦잠까지 자버렸다. 부랴부랴 사놓았던 선물포장지를 찾아서 마켓컬리 박스를 포장했다. 트리 밑에 공손히 놔두고 침실로 달려갔다. 내가 더 신났다. 정작 아이는 거실로 나오자마자 어제 산 듀플로 레고만 찾았다. 억지로 억지로 갖은 유인책을 써서 언박싱 퍼포먼스를 하고(정작 까만 생새우를 보고 약간 놀랐는지 당황한 아이를 안아주고) 온 가족이 맛있게 구워 먹고 해피엔딩. 나는 안도했다.




어젯밤에 놀지 못했다. 아내와 나는 피노누아를 아침부터 깠다. 할 수 있을 때 한다. 과감함의 지혜다. 하루종일 집에서 이것저것 하면서 놀다가, 점심엔 새우국물로 국수랑 파스타도 볶아 먹었다. 낮잠도 잤다가 청소도 하면서 홀리데이를 쉼으로 채웠다. 그러다 보니 살짝 답답해졌다. 고민을 하다가 동네에서 열리는 파티에 또 참석했다. 자주 가던 빵집(@hv_a_meal)과 가보고 싶었던 신생 밥집(@zipdri.welcome)의 콜라보. 모두가 역시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아이가 신났다. 예전 같았으면 늦게까지 마셨겠지만, 와인 한두 잔 마시고 아이를 재우러 집에 왔다.


그래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이런 크리스마스도 좋다. 매일 밖으로 싸돌아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다행히도 같이 거리를 나돌던 연인이 가족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한 분이 더 찾아왔다. 귀엽고 예뻐서 껴주기로 했다. 이렇게 셋이서 연말을 보내고 있다. 동네 이웃들도 많이 생겼다. 가까운 이들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는 이런 거구나. 물론 젊은 날의 신촌, 이태원, 홍대, 신논현도 좋았다. 이런걸 보면 역시 홍상수는 틀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겪어보니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다. 사유하는 이 순간만이 내가 사는 시간이다. 당장 좋은 것, 이를테면 지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새우 같은 것을 소망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게 되길 트리 앞에서 빌면서 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