킷캣 에어팟 케이스 커버

써놓고 보니 풀네임이 괴상하다

by 홍 연길



나이가 무색한 취향이 어쩐지 머쓱하다만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저번주였나, 아내랑 아이가 지하철역으로 깜짝 마중을 나왔던 날이 떠올라서 그렇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유튜브를 보고 있었어서 다리에 팍 안기는 꼬마가 우리 애인지도 몰랐다. 얼른 에어팟을 귀에서 뽑아서 부랴부랴 케이스에 넣었다. 그 과정에서 커버 뚜껑이 어디론가 날아갔나보다. 그래서 오랜만에 새로 샀는데, 보면 볼수록 그날의 반가움이 기억난다. 킷캣 디자인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졌다. 도대체 물건의 의미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도 하다. 에어팟을 넣어두는 케이스는 그 자체로도 수려하다. 유수의 디자이너들이 장고를 거쳐서 만들어냈음이 분명하다. 그에 비해 쿠팡에서 산 킷캣 모티브의 케이스 커버는 조악하기 그지없다. 근데 나는 왜 굳이 사서 예쁜 걸 가리고 있을까. 기억을 박제하는 의미가 있다며 행복회로를 돌린 건 나중일이다. 흠집 나지 않게 보호해야 한다는 관성 때문에 구매했을 것이다. 아이러니다. 커버를 갈면서 오랜만에 날 것의 케이스를 보고 나니 이제 그만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을 사고 쓰는 것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최근 읽고 있는 책들은 이런 생각들을 반영한다.


- 물욕 없는 세계 (스가쓰케 마사노부)

- 인간의 경제학 (이준구)

-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정지우)

- 나를 소개하는 키워드 찾는 법 (이루리)


모아놓고 보니 제목들이 다소 자극적인 면이 있다만 그렇다고 히피스러운 내용들은 아니다.

[물욕 없는 세계]는 취재가 잘된 잡지를 읽는 기분이라면 [이준구 교수의 책]은 군상극 드라마를 볼 때의 재미가 생각난다. [정지우 작가님의 저서]는 나를 신명 나게 꾸짖을 줄 알았다. 읽어보니 묵묵해서 먹먹한 응원을 받았다. [이루리 님의 책]은 아카이빙 기술을 알려주는 듯했지만 실은 생산자로서의 인생을 살기를 당부하는 건 아닐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모두 의외성에서 오는 갭모에가 있어서 황홀하다. 공통적으로는 주체성을 강조한다. 제목과는 달리 모두 인문학에 가까운 책들이다. 우리가 경쟁적인 분위기에 사로잡혀 간과하고 있는 것들, 이를 테면 시간의 중요성 내지는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세상엔 맨큐의 경제학 예제처럼 딱 답이 맞아떨어지는 문제만 있지 않다. 손해를 본다고 해서 패배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그렇게 효율에 효율만을 추구하며 살 순 없다. 나는 그간 너무나도 그렇게 살아왔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쓰라린 기분 덕에 잘 읽힌다. 소유보다는 경험을, 물건보다는 순간을 소비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


오랜 기간 홍연길에서 동네생활을 하면서 느껴온 감정과 기록들, 육아일기를 쓰며 고심했던 생각들이 쌓였다. 그 시간들 덕에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육아일기를 쓰며 고심했던 마음들이 쌓였다. 좁지만 깊어지는 탐구들이 삶의 레이어를 두텁게 만들고 있다. 내 시간을 두껍게 만드는 방법 이외의 것들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는 중이다.


얼마 전 이루리 님의 북토크가 끝나고 나는 우문을 했고 저자는 현답을 해줬다. 그 스토리가 좋은 예다. 나는 노션 앰버서더인 분께 정리를 시작하는 게 어렵다고 두려움을 토로했다. 일단 버릴 건 버리면서 해보라고 말해주셨다. 본인도 불안감 때문에 이런저런 방법을 해보다가 지금의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격려했다. 핵심은 뒷 문장에 있었다. 해봤으니 지금이 있는 것. 과거도 지금이고 지금은 또 미래다. 물건은 어쩌면 그 순간들을 거쳐가는 객체일 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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