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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Mar 09. 2020

어른도 밤이 무섭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다. 허나 어른들에겐 ‘만약 그랬더라면’이라는 생각의 방문이 제일 두렵다. 예나 지금이나 말이다. 불현듯 찾아오면 더욱 그렇다. 태생이 지질한 나에겐 소변이 찔끔 나올 정도로 그렇다. 현관문을 닫아도 새어 들어오는 한기처럼 오늘 같은 밤 문득문득 찾아온다. 이럴 때면 어두컴컴한 거실에 앉아 담담한 척 스탠드를 켠다.

 

 어느 책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나쁜 생각들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쓴 맛이나 악취부터 걱정이나 불안, 통증처럼 생존에 관련된 감정들을 감지하는 데 더 예민하게끔 진화되어 왔단다. 한마디로 나쁜 자극에 뇌는 더 ‘열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 좋은 생각들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태생이 소심한 나에겐 더욱 그렇다. 이렇게 창을 초점 없이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후회라는 감정이 그중 최고봉이다. 완전 괴물이다. 예전에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생겼을 이득에 대해서 나는 최선을 다해서 상상한다. 살면서 그때만큼 창의력이 샘솟는 순간이 없다. 셰익스피어가 부럽지 않다. 극의 주연은 언제나 후회라는 그 괴물이다. 지금의 나를 원망하기 위해 얼마 안 되는 나의 총기(聰氣)를 소진한다. 오늘처럼 힘들었던 날의 밤이면 더욱 그렇다.

 

 물론 후회는 필연이다. 시간의 축적은 끊임없이 가지 못한 길을 만든다. 꼭 인생극장의 이휘재가 아니더라도 어른들은 수많은 결정과 후회를 짊어지며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며 버틸 뿐이다. 나도 꼰대가 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수년간 그렇게 단련해 왔다. 그래도 이렇게 괴물이 찾아오는 밤이면 속절없이 무너지는 이유는 뭘까.

 

 내 또래인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법 비디오들을 시청함에 따라 비행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 경우도 있었지만, 마음이 콩알만 한 나는 그러지도 못했다. 결정의 순간에서 늘 안정적인 선택만 했다. 그게 도리어 괴물을 등장시킬 줄은 몰랐다. 호환, 마마, 전쟁보다 더 무서운 후회라는 괴물이 나에게 찾아오게 될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나는 멍하니 일어나 현관문이 잘 잠겨 있는지 또 한 번 확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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