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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Nov 07. 2023

쪽팔림에 대한 기억

쪽팔림 박사


나는 원래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던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으로 쪽팔려봤던 기억이 아직 강렬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두 발 자전거를 처음 타던 시기였는데, 몇 달 해보니 두 손을 놓고도 몇 분간은 주행이 가능해졌다. 사실 그 행동이 그렇게도 하고 싶었다. 멋져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때는 영화 비트와 정우성의 시대였으니까.


사건이 발생한 그날도 올림픽에 나갈 사람처럼 맹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하필 우리 반 아이들이 멀리서 보였다. 두근거렸다. 내 기술을 선보이고 싶어졌다. 클리셰적인 전개일 수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보기 좋게 넘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침몰했다. 두 손을 놓고 자신 있게 페달을 밟았으나, 조향이 안되니 핸들이 왼쪽으로 살짝 꺾였고, 자전거는 안 쪽으로 원운동 했다. 지면과 각도는 90도에서 80도, 70도로 차츰 기울어졌고, 나는 하나의 나선이 되어 마치 허리케인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쓰러졌다. 아니, 점점 누웠다는 표현이 사실 더 정확하다. 그 광경은 지금 내가 생각해도 꽤 고퀄의 슬랩스틱 코미디와 같았으니, 십여 명의 박장대소를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그때부터 나는 쪽팔림을 아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쪽팔림 문맹이 단박에 벼락치기로 검정고시를 통과한 것이다. 땅을 보며 걷는 일이 잦아졌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겨드랑이가 젖곤 했다.


역시 한 번 깨우치는 게 무섭다. 느닷없이 이상한 재능이 생기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곳이 쪽팔림의 위협이 도사리는 공간으로 보였다. 나는 치욕업계의 셜록 홈즈가 되어 수치스러울 상황을 미리 캐치해 나갔다. 막막했다. 어떤 모험을 해도 쪽팔릴 것 같았다. 한 마디로 쪽잘알이 된 셈이다. 생각이 많아졌고 상상력이 풍부해졌다. 그 걸 다른 말로 하면 불안감이라 칭할 수 있으려나. 창피당할 가능성이 높은 일을 귀신 같이 알아채고 피해 다녔다. 운 좋게 무사했던 날에는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다. 다분히 그 생활을 이어나간 덕에 쪽팔림 석사학위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밥 벌어먹고 살다 보니 쪽팔림을 무릅써야 할 일이 생기곤 했다. 급한 일을 핑계로 무단횡단을 서슴지 않게 했다. 누가 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자제품 서비스 센터에서 내 잘못으로 고장 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뗀다던지, 인터넷 쇼핑몰에서 막무가내로 환불을 요구하기도 했다. 쪽팔림을 조금만 감내하면 얻는 이득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우기면 된다. 약자를 갈구면 어떻게든 얻을 게 있다는 걸 체득한 셈이다. 이를테면 예상되는 결과가 더 이상 불안하지 않기에 적극적으로 낯 뜨거운 행동을 감행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어른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었다.


돌연 경각심이 들었다. 다시 쪽팔림을 모르는 상태로 회귀할 순 없다. 세상 모든 인간관계는 상대적이다. 내가 부끄러움을 외면한다면 누군가에겐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렇게 지낼 순 없다 않다. 스스로 피곤할지언정 쪽팔린 행동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방황은 길었다. 다시 깔끔한 어른으로 돌아갈 때다. 쪽팔림 박사 학위를 준비해야겠다. 부끄러운 행동과 생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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