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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Mar 09. 2020

오늘도 호두 한 개



 미안한 감정은 늘 격하게 찾아온다. 집 현관에 놓인 세탁소 영수증을 보자마자 후회가 몰려왔다. 그리고 아내의 사원증 사진. 울컥했다. 아랫입술 밑으로 작은 호두가 생겼다. 앉아있는 아내를 보았다. 열심히 미워했던 몇 시간의 내 세계관이 뒤틀렸다. 왜 나의 마음은 아직도 이렇게 몇 시간 앞도 못 보는 것일까.


 목요일인 오늘, 아침에 아내는 오후 반차를 쓰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다음 날인 금요일은 원래 쉰다고 했었나. 더군다나 아내의 친구는 얼마 전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만나기로 했다고.


 "오늘 술 많이 마시겠네?"


 내가 그렇게 말할 걸 알기에, 아내는 목요일 반차를 쓴다는 것부터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것까지 나에게 말하기 꽤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사실 그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감정 없는 표정으로 저렇게 말해버렸다. 내가 생각해도 잔인했다. 나는 아내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었다.


 조금 변명하자면 사실 이런 마음도 있었다. 아내와 나는 요새 술을 줄이고 있었다. 건강해지려고 몇 달 전부터 노력하고 있었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술자리를 피하는 데 되려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평일에 우린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다. 건강한 루틴이 이어지고 있는 나날들이었다. 싸울 일도 덜 했다. 나는 그런 좋은 습관의 나날들이 깨지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그랬다. 솔직히. 아주 조금은 말이다.


 그래서 단 몇십 분이라도 늦게 만나길 원했다. 생떼를 썼다. 이번 주 재택근무를 하며 나는 살림을 열심히 해왔는데, 분명히 순수한 의도였지만 며칠 만에 변질되었다. 나는 그 걸 비겁하게 무기로 삼기로 결정했다.


 "오늘 반차 쓰고 집에 오면 코트랑 니트 좀 세탁소에 맡겨줘"

 아내는 알겠다고 했고 우린 꽃샘추위 속에 감정을 숨기며 그렇게 출근을 했다.


 오후가 되자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생각보다 늦게 퇴근해서 집에 못 들른다고 했다. 그때부터다. 눈이 번쩍 뜨이며 심술이 났다. 마음이 꼬이기 시작했다. '일분일초라도 친구를 빨리 만나서 술을 마시고 싶은 거지?' 엄지손가락 끝까지 그 말이 차올랐지만 참았다. (그동안 그랬다가 싸웠던 일이 많았기에) 스스로 대견해했다. 쓰고 나니 부끄럽다. 내 뒤틀린 마음은 그럼에도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나는 중간중간 문자를 보내며 답장을 기다렸다(혹은 체크했다). 걱정은 수단이고 감시가 목적이었다. 본말이 바뀐 것이다. 그런 짓은 참 잘한다. 꽈배기 같은 마음을 가진 인간의 가엾은 재능이랄까.


 아내는 일분일초라도 친구를 빨리 만나고 싶은 게 사실 맞다. 최근에 자주 못 본 친구니까. 그리고 그 친구가 힘들어하고 있으니까. 이제야 인정을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당연한 것인데,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그 마음까지 소유를 하고 싶었을까. 오후 내내 아내는 문자를 보내며 나를 신경 쓰고 있었으나, 내가 스스로 부정했다. 아내에게 취기가 느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아내에게 나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나는 아내를 미워하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야근을 하고 집에 왔고, 술이 조금 깬 아내는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대화를 거부했다. 화를 내게 될까 봐 두려웠다(이건 내 지론인데, 사람은 속이 좁은 만큼 겁이 많다). 아내는 내게 말을 시켰지만 졸렬함으로 일관 대응했다. 아내의 젖을 듯한 눈망울도 모른 체하고 밥을 먹었다. 화난 등판으로 설거지를 하고 세상 건조한 말투로 헬스를 다녀오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제야 현관의 세탁소 영수증을 볼 수 있었다.


 아내는 어쩌면 진심으로 친구를 대하면서도 나에 대한 생각까지 놓지 않았다. 그리고 약속을 지켰다. 내가 열과 성의를 다해 자그마한 내 마음을 뒤틀고 있을 때 아내는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왔다. 미안한 감정은 늘 격하게 찾아온다. 부끄러웠다. 왜 나는 아까운 인생의 시간을 써가면서 나를 포함한 세상 모두를 괴롭히는 것일까.


 가끔 스무 살 적 내 모습을 떠올리며 아쉬워할 때가 있다. 그 시작은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유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일종의 자만심인데, 오늘 같은 날이면 그 회한마저 바보 같아진다. 그때보다 내가 성숙해졌다면 그 정도는 아마 머리카락 한 올 정도이려나. 나는 아직 멀었다. 곁에 있는 아내를 보면서 계속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나중에나마 한 움큼의 사람 구실을 하게 되지 않을까.


 아내의 사원증에는 나를 만난 이후의 아내의 사진이 붙어있다. 내가 처음 봤었던 아내의 밝은 미소와는 약간 다르다. 사진 찍을 때 조금 부끄러웠나. 어떻게 보면 난감해하는 표정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 사진을 읽을 수 있다. 조금은 억눌려 보인다. 한 켠에는 슬픔도 느껴진다. 나는 그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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