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책 깨우기 프로젝트 8
연남천. 여기가 어디인지 아시는지요? 정식으로 등록된 곳은 아닙니다. "연남동에 있는 홍제천"이 원래의 지명입니다. 이곳을 매일매일 산책하시면서, 전소영 작가님께서 피고 지는 풀들을 하나씩 하나씩 그려가며 만들어내신 아름다운 책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가을로부터 시작되었다.
첫 문장부터 설렙니다. 은연중에 "시작은 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일까요? 시작이 가을이라니, 가을부터 살기 시작해서 겨울을 나는 풀들이 있었던가, 새삼스레 떠올려봅니다. 가을, 내년을 바라며 씨앗을 날려 보내는 <참쑥>을 시작으로, 낙엽 사이로 피는 <산국>, 겨울에 열매를 맺는 <좀작살나무>와 <수까치깨>, <배풍등>을 지나 봄을 알리는 <쑥>과 <냉이>, <꽃마리>. <옥잠화>, <돌단풍>, <라일락>과 함께 봄이 익어가면, <애기똥풀>과 <메꽃>이 핍니다. 욕심내어 물을 머금지도 않고, 뾰족한 잎을 억지로 둥글리지도 않으면서, 각자의 계절과 삶을 살아가는 풀꽃들이 피고 지면, 다시 가을. <박주가리> 씨앗이 다시 한번 계절을 살기 위해 멀리 날아오르면서 이 책은 다음의 한 해를 기다리며 끝을 맺습니다.
전소영 작가님의 다른 책, <적·당·한·거·리>도 그러하듯, 작가님은 식물 속에서 우리네 삶을 읽어 내십니다. 그 안에서 내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따스한 일입니다. 풀 한 포기도 소중하게 바라보는 작가님의 시선 덕분에 그것도 가능하네요. 서로 다투지 않고, 뿌리내린 자리에서 자신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풀꽃들. 매년 피고 지기에 새삼스럽지도 않고, 도심에서조차 쉽게 보이는 풀들입니다. 평범함에도 저마다의 생을 알차게 살아내는 생물들이 너무나도 대견합니다. 나무의 생애를 가장 높게 평가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천사들의 제국>도 생각나네요. 그 소설의 한 대목처럼, 누구와도 다투지 않고, 누구를 질투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대로 이름값을 다하며 남김없이 살아내는 풀꽃들, 식물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오늘은, 성실한 꽃들이 활짝 피어 난 어느 봄날이니까요.
어느덧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언제나 똑같은 계절은 없다.
반복되는 일에도
매번 최선을 다한다.
올해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연남천 풀다발 (전소영 작가님)
전소영 작가님의 또다른 책: <적·당·한·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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