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읽기 프로젝트 19
보건실. 예전에는 양호실이라고 부르던 곳입니다. 이 단어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저는 약 냄새가 떠오릅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배가 아파서 난생 처음 보건실에서 소화제를 받아 먹었는데요. 그때 알약을 삼키지 못해서 알약을 씹어 먹었거든요. 그 때 느꼈던 약냄새가 홀연히 떠오르네요. 학교에서 아플 때, 가장 먼저 가는 곳. 쉼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침대 한 칸을 흔쾌히 내어 주는 곳. 필요할 때 약을 내어 주고, 먹여주는 곳. 보건실은 쉼과 돌봄의 상징인 것 같습니다.
여기, 김하준 선생님께서 오랜 시간 동안 보건실에서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보건실을 찾아옵니다. 단순히 배가 아프고, 열이 나는 아이들도 있지만,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픈 아이들도 있습니다. 교실이 편하지 않아서, 집에 아무도 없어서, 방과 후 수업에 들어가기 싫어서 보건실에 오는 아이들도 있지요. 죽으려고 옥상에 갔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보건실로 들어 온 아이, 관리가 필요해서 보건실로 오는 아이. 보건실에는 수많은 사연이 가득합니다.
어느 날은 육십 명의 아이들이 왔다 가기도 합니다. 각자 다른 얼굴만큼, 다른 사연을 갖고 보건실로 오면, 선생님은 아이들을 하나하나 살핍니다. 선생님은 사진을 찍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살핍니다. 마음의 렌즈를 갈아 끼우면서, 때로는 광각 렌즈를, 때로는 줌 렌즈를 끼우듯 아이들을 보는 시각을 달리하면서 마음까지 살피고자 노력합니다. 그런 보건 선생님은 학교에 단 한 분뿐인 의료인입니다.
아이들의 성교육도 담당하시고, 때로는 어떤 아이가 데려온 새 한 마리도 보살핍니다. 기절했던 새를 날려보내면서, 생명을 살려 냈다는 기쁨을 아이와 함께 나누기도 하지요. 식물을 기르면서 아이들을 더 깊게 이해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있기에 소중하고 행복한 공간, 교실과 집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편안하게 쉬는 공간. 아파도 참는 곳이 아닌, 마음껏 아파도 되는 곳. 보건실은 아마도 우리 생각보다 더 소중한 곳인 듯 합니다.
코로나 이후로 보건 선생님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해졌지요. 쉼없이 내려오는 공문을 보면서 마스크를 구입하고, 체온을 재고, 아이들을 귀가 시키는 일까지 열심히 노력하십니다. 우리가 이 감염병을 슬기롭게 헤쳐 나왔던 것은, 정말 많은 의료인분들의 노력 덕분입니다. 그 중 학교에서 혼자 그 많은 일을 감당하셨던 보건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마음껏 아프다 가> “아파도 괜찮아.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쉬다 가.” 누군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해주면 정말 고맙지 않을까요? 열이 나도 학교 가서 아프라며 부모님이 등을 떠밀던 우리네 어린 시절. 개근상을 꼭 받아야만 한다고 배웠던 어린 시절. 그렇게 쉬지도 못했던 시절에도 오직 한 곳, 선생님 허락을 받고 잠시나마 잠들 수 있었던 그 공간. 보건실. 그곳이 새삼 그리운 것은 바쁜 일상을 다독거려주는 휴식 같은 곳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커버이미지: <여기서 마음껏 아프다 가> 앞표지(출처: 알라딘 인터넷 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