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궁례를 합니다.

이제 어른으로 첫걸음을 뗍니다.

by 홍유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순례 씨가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글쎄."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순례 주택, 유은실, 비룡소


집궁례(執弓禮)를 하는 날입니다. 집궁례란 궁사가 사대에 올라 활쏘기를 처음 할 때 치르는 예식입니다 (무예신문, https://www.mooye.net/17972) 원래는 하나의 제례처럼 생각해서 상차림을 하고, 술을 올리며 절을 하는 행사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그러한 절차를 지키는 것보다는 약식으로 진행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집궁례를 하면 좋은 점이 두 개나 있습니다. 하나는 나만의 궁대가 생기는 것입니다. 궁대에는 자신의 이름과 소속이 자수로 새겨져 있지요. 궁대는 평소에는 활을 보관하는 활 주머니의 역할을 하지만, 활을 낼 때에는 화살을 허리에 찰 수 있게 해주는 띠입니다. 일종의 간소화된 화살통이라고 보면 될까요? (https://namu.wiki/w/%EA%B6%81%EB%8C%80) 그동안에는 활터에 있는 공용 궁대를 사용했습니다. 이제는 저만의 장비가 하나 더 생겼네요. 궁대를 활터의 어른들께서 허리에 매어 주고 덕담도 해주면서 집궁례가 마무리됩니다. 인정해 주고 인정받으면서 서로 축하하는 분위기에 마음이 출렁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때부터 사대에서 혼자 연습할 수 있는 자격이 생깁니다. 그동안에는 반드시 사범님이나 다른 접장*님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사대에서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언제든지 활터에 올라서 활을 낼 수 있습니다.


집궁례를 마쳤으니, 이제부터는 교육생이 아닌 신사(新射)입니다. 제 궁대에 저의 화살을 꽂아 옆구리에 찹니다. 아직은 많이 미숙하고 활에 끌려가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정식 궁사입니다.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넘어야 할 산도 많지만, 정식 궁사가 된 것만으로도 당당합니다. 이제야 사대에 혼자 서는 것을 허락받았다는 것이 더 맞겠지만요.


언제부터인가 어른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사는 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삶에 끌려가는 날이 많더라도 그랬지요. 나이를 먹을수록 혼자만을 챙기는 삶이 아니라 주변을 챙겨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래서 어깨에 짊어진 무게도 점점 늘어났지요. 그래도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애쓰고, 그렇게 애쓸 자격이 있는 당당한 어른으로 살기 위해 참 많이 노력했습니다. 내 몫의 짐을 묵묵히 감당하면서요. 진정한 독립이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인간답게 홀로 서기 위해서 그러했던 것은 아닐지요. 넘어지더라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을 연습하고, 언제나 내 삶을 위해서,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온 우리는 정식 어른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삶의 흔적을 마음으로 되짚으며 활을 냅니다. 어떻게든 두 발로 서서 나를 지탱하고, 내 힘으로 활을 잡고, 내 몸에 맞추어 표를 잡습니다. 활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끝까지 버티고 노력합니다. 때로는 활의 힘을 이용해서 화살도 보냅니다. 바람이 너무 세거나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으면 활을 잠시 내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때로는 세찬 바람을 뚫으며 화살을 날려 보지요.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화살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롯이 저 혼자만의 과정입니다. 다른 분들이 조언을 들으면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몸과 활을 맞추는 시간. 활을 내는 시간은 저의 힘으로 삶을 산다는 말에 담긴 의미를 찾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활을 통해서, 점점 더 어른이 되어 갑니다.



커버 이미지: 세계 전통 활쏘기 대회(출처: 예천활축제 홈페이지 https://www.ywaf.kr/foreign)


*접장: 한 순에 다섯 개의 화살을 연달아 맞춘 사람. 한 순은 활을 한 번 쏘는 세트로 보시면 편하실 것입니다. 한 순에 다섯 발의 화살을 쏘는데, 이때 다섯 발을 다 맞추면 몰기를 했다고 합니다. 접장은 몰기를 한 사람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붙이는 호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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