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화살을 과녁으로 보냈습니다.
20kg의 짐을 지고 올라갔습니다.
저는 정말 그 짐을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그 짐을 열어보니 먹을 것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함부로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 남자의 자격, 이경규 님의 강연 중에서 -
일중례(一中禮). 활터에서는 일중례라는 것을 합니다. 집궁을 마친 신사(新師)가 처음으로 과녁에 화살을 한 발 관중하는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활은 다섯 발을 한 순이라고 합니다. 일중은 이 다섯 발 중 한 발을 과녁에 맞혔다는 뜻입니다. 양궁처럼 점수를 내는 것도 아닌데 그 한 발 관중하는 것이 무에 그리 어렵냐 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러했거든요. 금방 과녁을 맞히고 잘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일중(一中)까지 그렇게 오래 걸릴 줄 정말 몰랐습니다. 잠시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사대에서 과녁까지 거리는 145m입니다. 즉, 사대에서 활을 낼 때 조금만 벗어나도 화살은 과녁을 크게 벗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되겠지요. 처음 활을 배우면서 활을 감당하기도 힘든 신사들이 어떻게든 한 발의 화살을 과녁으로 제대로 보낸다면,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축하해주고 싶은 기쁜 일입니다.
저는 약한 활을 씁니다. 연궁(軟弓)이라고도 합니다. 센 활(강궁, 强弓)의 반대라면 약궁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직관적이겠지만 대부분은 연궁, 부드러운 활이라고 합니다. 센 활은 아무래도 활 자체의 힘이 좋기 때문에 화살도 곧게 잘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활 자체가 약하면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일단 바람이 많이 불 때는 화살이 바람을 덜 타도록 약간의 오조준도 해야 하고요. 온몸을 이용해서 활을 보내야만 합니다. 먼 거리를 날아가게 하려면 조금 더 높은 지점을 향해서 활을 내야 합니다. 그래야 포물선을 이루면서 과녁에 떨어지거든요. 그러다 보니 화살은 제 거리를 다 못 나가서 과녁보다 훨씬 앞에 짧게 떨어져 버리기도 하지요.
무수히 많은 화살 중에 단 한 발. 그 한 발이 과녁에 맞아서 불이 들어오던 그때의 기분이란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뭐랄까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신호랄까요? 그 신호를 보고 난 후부터, 그동안 그렇게 과녁까지 가기 힘들던 화살들이 과녁 근처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만나는 딱 한 번의 성취의 힘이 아닐까 했습니다. 무언가를 하다 보면, 이상하게 딱 한 계단을 오르기 힘든 지점이 생깁니다. 그 한 계단만 올라가면 좋겠는데, 그 턱이 너무 높게 느껴져서 마치 계단에 아등바등 매달려 있는 버거움도 느낍니다. 그런데 그 한 계단에 나를 끌어올려놓았다는 생각. 그 감각이라는 것은 참 대단했습니다. 그저께의 내가 어제의 나를 들어 올리고,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들어 올림으로써 일어난 발돋움. 인생에서 만나는 일에 담긴 어려움이라는 짐을 함부로 내려놓지 않았던 과거의 내가 만들어 낸 오늘의 내 모습인가 합니다. 인생의 어려움이은 어딘가에 올라서 열어 보어야만 "한 계단 위에 올라서 있는 나"를 보여주는 가방은 아닐는지요.
커버이미지: 남원 신계리 신장상(출처: 국가유산청, 일상에서 발견한 문화유산)
- 관련기사: 전북일보, http://www.sjbnews.com/news/news.php?number=836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