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가는 마음을 멈추면 내가 보입니다.
나를 깨닫는 과정은 나를 아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 끝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 다산, 어른의 하루-날마다 새기는 다산의 인생 문장 365
조윤제 지음, 윤연화 그림, 청림출판
활터에는 여덟 개의 원칙과 아홉 개의 교훈이 있습니다. 각각 집궁제원칙(執弓諸原則)과 궁도구계훈(弓道九戒訓)이라고 하지요. 집궁제원칙이 주로 활쏘기의 기술과 관련된 것이라면, 궁도구계훈은 자신의 마음가짐과 타인에 대한 예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
총 17가지의 항목의 근간에 흐르는 가장 큰 원칙은 '나를 아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피고, 나에게서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찾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흔히 말하는 맹목적인 '노오력'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나를 대하는 예의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집궁제원칙 안의 '발이부중 반구저기(發而不中 反求諸己)'라는 글귀를 좋아합니다. 사실 활을 내다보면 핑곗거리가 참 많아지거든요. 화살이 과녁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핑계로 말할 것들이 주변에 산재합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잘 안 보여서, 옆에서 정신을 산란하게 해서, 햇빛이 비추어서,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라서 등등요. 그런데 그런 모든 핑계에 "그래서?"라고 속으로 되물어보면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게요. 화살이 과녁까지 못 가는 이유를 잘 찾아보면 답은 하나입니다. 그리고 저도 압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요.
사실 내가 부족해서, 나 때문에라는 자책이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남 탓도 좀 해봐야 마음도 편하고, 때로는 주어진 것이 부족한 나의 환경도 훌륭한 핑곗거리가 됩니다. 그것들을 좀 탓해보기로 그것이 그리 나쁜 것인가요? 사람이 어떻게 계속, 모든 것을 내 탓으로만 돌리겠습니까. 그러면 너무 힘들잖아요. 그리고 힘든 주변 환경 안에 내가 오도카니 들어가 있는 것도 사실 아닙니까. 그래서 남들은 쉽게 도달하는 곳에 나는 아등바등 노력해야만 겨우 턱걸이로 도착하기도 하지요. 그런 상황에서 남 탓도 좀 하고, 환경도 조금은 아쉬워하면서 내 마음을 편하게 가지는 것이 무에 그리 나쁘겠어요. 저는 적당한 남 탓은 정신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함에도 화살이 과녁에 닿지 못하는 것을 계속 남의 탓만 하면, 저는 계속 빗나가는 화살만 보내게 되더군요. 제가 하늘의 해를 어떻게 숨기고, 보이지 않는 바람을 어떻게 막겠습니까. 손오공도 아닌데 구름을 불러 빛나는 해를 가릴 수도 없고요. 그러니 그것들을 뚫고 나갈 무언가를 계속 찾아야만 했습니다. 힘이 부족하면 헬스를 해서라도 어깨의 힘을 길러야만 했고요. 바람이 불면 오조준도 해야 합니다. 눈이 부시면 선글라스도 끼고요. 컨디션이 안 좋으면 잠시 쉬면서 나를 회복해야 하지요. 그렇게 몸을, 마음을 만들면서 문제의 원인을 내가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화살은 과녁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배우지요. 나보다 잘하는 사람 역시 자신만의 노력으로 저기까지 가 있을 테니 원망할 필요도 없다는 것 말입니다. 궁도구계훈에서는 이를 불원승자(不怨勝者)라 합니다. 간혹 그런 분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쟤는 성격이 좀 이상해.", "쟤는 보기만 해도 ○○없어."라는 말속에 못남을 가득 담고 말하는 분들 말이에요. 옆에서 가만히 보면, 욕먹는 사람보다는 욕하는 사람이 못난 구석이 많을 때가 많더군요. 오히려 원망의 대상이 되는 분들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면서 자신의 몫을 감수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가기에 비난의 대상이 되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특히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뭔가 끌어내리고 싶은데, 원망하고 싶은데 마땅한 것이 없을 때 성격이 이상하다는 말이, 인성이 못났다는 말이 앞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실체가 없으니까 주관적인 판단으로 뱉을 수 있는 말이지요.
그래서 활터에서 활을 낼 때,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옆에서 함께 활을 낼 수 있음에 감사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때는 그야말로 "노오력"이 필요합니다. 사실 저는 계속 한 발도 못 맞추는데, 옆에서 계속 관중(화살이 과녁에 맞음)을 하고 있으면 마음은 좀 불편하거든요. 특히나 앞서서 활 내신 분들이 연달아서 관중을 하는 관중 행렬이 저한테서 끊기면 왠지 미안합니다. 그럴 때 마음을 끌어 모아 "노오력"을 합니다. 이 분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은 내가 더 크기 위한 성장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이분들을 보고 배우겠다고요. 고수들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울 수 있기에 염치 불고하고 활 내시는 모습을 유심히 봅니다. 그렇게 미움으로 달려가는 마음을 잠시 멈추면, 그때서야 조금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은 무엇이 부족한지
어떻게 고쳐가야 하는지
그래서 나는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그런 소소하면서도 아름다운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말이에요.
커버 이미지 출처: <인천마을 리포터> 인천의 명소를 찾아서-국궁을 배우다 (https://url.kr/cdjtux)
집궁제원칙(執弓諸原則)
1. 선관지형 후찰풍세(先觀地形 後察風勢) : 활을 쏠 때에는 먼저 지형을 관찰하고 바람의 흐름을 살핀다.
2. 비정비팔 흉허복실(非丁非八 胸虛腹實) : 발은 비정비팔의 모양을 하고, 가슴은 넓히고 배에 힘을 주어서 단단하게 만든다.
3. 전추태산 발여호미(前推泰山 發如虎尾) : 활을 잡는 줌손은 태산을 밀듯이 힘을 주고, 깍짓손은 호랑이가 먹이를 사냥할 때 꼬리가 펴지듯이 자연스럽게 뒤로 뺀다.
4. 발이부중 반구저기(發而不中 反求諸己) : 활을 쏘아서 맞지 않으면 자신의 자세와 마음가짐에서 문제를 찾는다.
궁도구계훈(弓道九戒訓)
1. 정심정기(正心正己) :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
2. 인애덕행(仁愛德行) : 어짊과 사랑으로 덕스러운 행실을 한다.
3. 성실겸손(誠實謙遜) : 정성스럽고 참되며 남에게 나를 낮추어 순하게 대한다.
4. 자중절조(自重節操) : 자신의 품위를 소중하게 하고 절개와 지조를 굳게 지킨다.
5. 예의엄수(禮儀嚴守) : 예를 차리는 절차와 몸가짐을 엄하게 지킨다.
6. 염직과감(廉直果敢) : 곧고 청렴하며 용감하고 결단성을 강하게 가진다.
7. 습사무언(習射無言) : 활을 쏠 때에는 말하지 않는다.
8. 불원승자(不怨勝者) : 나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9. 막만타궁(莫彎他弓) : 남의 활을 당기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