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학습, 그 씁쓸함에 대하여

에세이와 함께 - 3. 우리가 쓰는 말들

by 홍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이후, 우리는 특별히 평일에 어딘가를 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평일에 학교에 다니고, 부모는 평일에 각자의 일을 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일에 학교나 직장을 빠진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쩌면 아파도 학교에서 아팠던, 우리가 커 온 방식이 머릿속에 굳게 남긴 흔적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가.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누가 내일 일본을 간다더라, 누구는 제주도에 간다고 하더라. 누구는 일주일 넘게 몽골에 간다더라며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놀랐다. 처음에는 학기 중간에 어디를 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랐다. 잘 몰랐던 것을 인정한다. 정보가 부족했다. 학기 중 수업 일수의 약 10%에 해당하는 날짜만큼 출석으로 인정되는 체험 학습을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정보가 채워지고 나니, 궁금해졌다.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 것일까? 무엇을 체험하러 가는 것일까? 좋은 체험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아서 여행사 사이트를 뒤져 보았다. 대체적으로 휴양과 쇼핑으로 채워진 여행 상품들은 휴가 때에 종종 가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의 검색 능력과 정보력이 부족해서 찾지 못하는가 싶어서 찾기를 그만두었다.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여름 방학을 한 달 정도 앞두고 같은 반 아이 하나가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헬스장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고, 알게 된 지 반년쯤 지났을 때였다. 나이가 두 살 많기에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 여담이지만, 이 사람 이후로는 아이와 같은 학년인 아이들의 엄마에게 절대로 언니라 부르지 않게 되었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던 중, 이 사람이 여행 이야기를 꺼내며 나를 굉장히 불쌍히 여기는 눈빛으로 나름 조심스럽게 말했다.


“왜 체험 학습 한 번도 안 가?”

“곧 방학이잖아요.”

“방학에 가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평소에 가야 하는 거야.”

“... 가서 뭐 하는데요?”

“리조트에서 쉬다 오는 거지. 그런 것도 해봐야 해.

나 어제 우리 □□이 여권도 만들었잖아. 구청 가면 만들어 주더라.”

“…”

“○○이(우리 아이)는 여권 없지?”

“곧 재발급받아야 하는데, 만료 기간이 언제였더라. 봐야겠네.”


검색 능력 부족이라기보다는 정말 체험이라 할만한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이 맞았다. 그 아이는 휴양을 체험하러 가는 것이다. ‘쉼’을 체험하러 가는 것이라면 그 역시도 학습이겠지. 연차를 몰아서 휴가를 내어 쓰는 어른의 삶을 아이들도 이미 공유하는 세상이었다. 유행을 따라 살지 못하는, 영리하지 못한 내 삶의 방식에 일견 회의도 들었다. 학기 중에 싸게 놀러 가지 못하는 나의 고지식함이 이렇게 멸시받을 일이던가?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뭐라 하고 싶지도,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저 사람이 누군가를 대하는 방식이 그러한 것일 수도, 남들이 그러하다고 나도 다 따라서 할 수도 없으니.


생각보다 그런 사람은 많은가 보다. ‘개근 거지’라는 말이 뉴스에 심상치 않게 떠도는 것을 보면서 그때의 일이 생각났다. 개근이라는 덕목은 어느새 빈곤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자기가 있어야 하는 곳에서, 있어야 하는 시간에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그 성실함은 이제 빈곤의 표상이 되었구나. 내가 아이를 키운다고 내 삶에만 폭 박혀 있는 동안에 세상은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 나는 학기 중에 아이에게 진정한 ‘쉼’을 가르치지도 못하고. 방학 때 비싸지는 여행비를 아끼려는 절약 정신도 없으며, 그것을 학습으로 연결시키지도 못하는 무능한 엄마였다. 어느새 내 아이는, 방학에 여행을 간다는 이유로 다른 아이와 그 부모에게 안쓰러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체험 학습을 통해 그제야 나는 아이들과 엄마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 또한 하나의 체험학습이리라.


커버 이미지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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