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와 함께 - 13. 책이란?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언젠가는 도서관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엄청난 소망. 이 꿈은 책을 사서 모으는 명분이 되어 책을 계속 끌어당겼다. 그렇게 모인 책이 집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먼지를 가득 머금고 있는 모습을 본 어느 날. 그 꿈은 사르르 흩어져 버렸다.
집안에 책이 가득했다. 이럴 수가. 내가 책을 소유한 것이 아닌, 책이 집을 점령한 것만 같았다. 책장이 자리한 집의 벽면은 빈 곳이 없었다. 책장마다 책이 가득하여 책꽂이 칸마다 이층, 삼층으로 쌓아 놓기도 하였다. 이런 것을 소위 현타가 온다고 하는 것인가. 세상에나 세상에나. 집도 아니고, 도서관도 아닌, 이곳은 진정 어디란 말인가.
책 다이어트에 돌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올여름이 가기 전에 저 여섯 개의 책장 중 두 개를 치우겠노라 마음을 먹었다. 일단, 그림책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컸으니 이제 그림책을 볼 일이 얼마나 있겠냐고 생각을 하면서, 그림책처럼 생긴 책들을 끌어냈다. 생각보다 많은 그림책들을 바닥에 펼쳐 놓으면서 내게 계속 물었다. ‘정말 버릴 수 있는 책인가.’
정말 버릴 수 있는가. 아니. 정말로 버릴 수가 없다. 책이 아깝다. 이 책을 고르기 위해 고심했던 순간이, 이 책을 사려고 온라인 서점을 뒤졌던 기억이, 책이 언제나 올까 기다리던 시간이 떠오른다. 책 한 권에 이렇게 많은 고민과 기억과 설렘이 가득한데 책을 몇 번 읽었다고 어떻게 버릴 수가 있겠는가. 책을 읽는 과정에서 느꼈던 그 마음들은 다 어찌하라고.
그림책을 쌓아두고 그 앞에서 심란한 마음을 달랜다. 다시 책을 하나씩 찬찬히 펴서 읽으면서 헤어짐을 책에게 전한다. 브런치에 올려놓은 책 리뷰도 다시 살피고, 그때와 달라진 나의 마음도 헤아린다. 다시 팔 수 있는 책은 판매할 책으로, 판매가 불가한 것은 폐기할 책으로 구분해 놓는다. 적당히 모이면 품에 안고 중고책방으로 간다. 바코드가 찍히면서 매입가가 뜨는 화면을 바라보면서, 좋은 새 주인을 만나서 또다시 사랑받는 책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렇게 몇 권의 책을 보내며, 나름의 이별 의식을 치른다.
아직 보내야 할 책이 참 많다. 사실 눈에 보이는 책으로 쌓여 있지만, 미처 버리지 못하고 쌓아 놓은 과거의 마음이 그렇게도 많다. 바로 정리하고 버렸어야 했던 마음들, 다음에, 나중에 하며 여기저기 마음의 빈자리에 쌓아 놓은 생각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아직 끝까지 들여다보지 못한 나의 마음. 처음에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결정했던 일들. 남들이 좋다고 해서 나에게도 좋은 줄 알고 가져왔던 것들. 예전에 좋았던 기억에 사서 그저 꽂아만 놓았던 책과 같은 나의 추억과 아련한 그리움. 그 모든 마음들이 그때 골랐던 책이 되었다.
이번 여름에 저 거실 한편의 책장을 비워 내면, 그 자리에는 당분간 아무것도 놓지 않으려 한다. 무언가가 가렸던 공간에 빛이 들게 하고, 새로운 공기가 들어가게 해 보면 어떨까 싶다. 책이 가득해서 청소하기도 어려웠던 그 공간에 잠시라도 빛이 들고, 공간이 숨을 쉬게 된다면, 그곳에 다른 책장을 옮겨 놓을 테다. 정말 꼭 읽고 싶어서 사고, 정리하고, 오직 딱 그만큼만 적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세심하게 조절하면서. 아무리 책들에 내 마음과 미련이 가득하더라도, 책 없는 거실이란, 책 없는 집이란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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