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와 함께 15 - 우리가 쓰는 말들 4. 비교와 질시 사이에서
그 집은 건조기 얼마나 걸려?
응? 한두 시간 걸리지 않나?
어유. 우리 집은 오래된 거라 오래 걸리는데. 역시 새로 산 게 좋아~
동네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오는 지점이 생긴다. 발단은 별 것이 아니다.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맥락에서 벗어나서 갑자기 던져지는 질문. "그 집은 건조기 얼마나 걸려?". 별 것 없는 이야기가 이어지겠거니 싶어 무심히 대답하는 순간, 어김없이 비교에 '너는 이것저것 잘 풀려서 좋겠다'하는 짜증이 뒤섞인 답이 돌아온다. 답을 되돌리기 애매하여, '허허' 그저 웃는다.
한 두 번이 아니다 보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여전히 표정을 관리하기가 어렵다. 아니. 건조기를 그 집보다 늦게 산 것이 뭐 그리 큰 죄란 말인가. 새로 샀으니 여전히 성능이 좋을 것이고, 오래 쓰면 가전제품의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빨래 양에 따라 건조 시간도 들쭉날쭉한 것이 무에 그리 짜증으로 귀결될 일이던가. 그 짧은 대화에, 쾌활하게 걷던 담벼락 아래에서 물벼락을 맞은 것 마냥 마음이 축축해졌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엄마들의 모임에 투입되었다. 어린이집 시절까지는 내 바쁜 일상이 어느 정도 핑계가 되어 주었다지만, 취학 아동의 엄마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얼굴을 아는 엄마들이 한둘 있다 보니, 자연스레 그들과 엮이게 된다. 하지만 조직 내의 뉴비이므로, 이럴 때 어린이집에서부터 쭉 교류를 하여 검증(?)되지 않은 나와 같은 엄마의 아이는 감히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의 입까지 틀어막을 수 없는 법. 받아쓰기를 한 개 더 맞고 돌아온 우리 아이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되도록 화제를 돌리려고 애를 쓰지만 칭찬으로 포장된 조리돌림 앞에서는 역부족이다. "어머~ 좋겠다~". '1학년 받아쓰기가 무엇이 그리 대단한가요', "한글은 어떻게 떼서 보내셨어요?" - '모릅니다.' "집에서 공부 많이 시키나 봐요?" '제가 집에 오면 7시라 씻고 밥 먹고 자면 끝입니다.' 등등. 속으로 답변을 꾸역꾸역 삼키면서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은 참 고역이었다. 여기에 "아이가 똑똑한가 봐요~"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어떻게든 그 원인을 찾고자 아이 생일이 빠르냐고 묻는 이가 나타난다. 아이들이 어리면 생일이 빠른 아이가 상대적으로 발달이 많이 되다 보니, 일찍 태어난 아이가 상대적으로 좀 똘똘해 보이는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이들이 커갈수록 의미가 없어진다. 엄마가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나 보다는 추측까지 이어진다. 엄마가 어릴 때 아이를 낳으면 똑똑하다는 설이 있지만,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받아쓰기 한 개를 더 맞은 후폭풍은 이렇게나 몰아친다.
그런 일이 몇 번 쌓이고 나니, 이제 별 것들이 다 비교의 대상이 된다. 집에 놀러 왔다가 새로 교체한 발코니 새시가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 집에 책이 (그 집보다) 많은 것도, 애가 하나라 (애가 둘인 그 집보다) 편하겠다는 것도, 집에 가구가 별로 없이 비어 있는 것도, 그리고 이제는 건조기 시간까지. 점점 집을 비공개로 하고, 만나더라도 무엇을 말하기가 껄끄러워진다. 그저 '날씨가 좋네요' 이외의 말을 섞는 것을 잠시 주저하게 된다.
그저 편안히, 다른 이를 받아들여주면 좋겠건만. 아무래도 쉽지가 않다. 그래. 이런 생각을 하는 나의 마음은 무엇이 다를 것인가. 나 역시 그러한 것을. 나도 분명 그러한 날들이 있었다. 나보다 좋은 차를 가지고 다니는 친구가 부러웠고, 나보다 예쁜 친구가 미웠던 날도 있었다. 나보다 공부를 잘하던 친구를 보며, 나도 모르게 흘겨보았던 일도 있었고. 그런 날이면 작은 내 마음의 크기가 확연히 느껴져서 참으로 서러웠다.
사람의 마음이 모두 같고, 모두 그러하기에 우리 모두가 사람이겠지. 누구라도 그런 마음속에서 축축하게 젖어 본 적이 있을 터이다. 이 또한 빨리 말려 버리면 그만인 것. 문득 궁금해진다. 그런 마음.
그런 마음의 건조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그림 출처: FreeP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