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와 함께 16-격려와 제약 사이에서
시작은 어린이집이었다. 어느 날,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그림 한 장을 소중하게 가지고 나왔다. 나를 보자마자, “엄마, 나 이거 받았다.” 하며 신나게 자랑을 하던 그 그림. 포켓몬이었다. 놀이 시간에 선생님께서 한 장 출력을 해 주시며 색칠 공부를 한 모양이다. 최대한 애니메이션에 나온 것과 비슷하게 색칠하려 노력한 흔적이 가득하다. 여기저기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귀여웠다. 그렇게 시작된 포켓몬 사랑. 집에 와서 “나 ○○○ 출력해 줘.”로 시작된 포켓몬 사랑은 점점 깊은 학구열로 이어지는 듯했다. 어느 날인가, 이름도 생소한 포켓몬의 이름을 줄줄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많은 포켓몬을 출력해 달라고 했다. 집에 오면, 씻고, 밥을 먹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색칠이 되지 않은 포켓몬을 검색하여 출력하고 같이 색칠했다. 이 포켓몬의 이름은 △△△이며, 어떤 능력치를 갖고 있는지 아이에게 꽤 오랜 시간 배우고 함께 찾아보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어린이집을 졸업할 무렵, 제법 많은 포켓몬을 강제 학습 당하고, 몇 개의 포켓몬 인형이 집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의 한때 즐거움이라 생각하니 못 받아 줄 것도 없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별 말이 없기에 잊어버리는가 했다.
코로나가 성행하던 어떤 날, 갑자기 포켓몬 빵을 먹겠다고 한다. 아이들 사이에 또 무언가 시작되는가 했는데, 포켓몬 빵이었다. 스티커만 받지 않고, 빵을 다 먹는다는 약속을 하고 일주일에 빵 하나를 사기로 했다. 그렇게 포켓몬 스티커가 집안 곳곳에 붙기 시작했다. 내 휴대전화에는 다섯 개쯤 붙었으려나. 빵이 물렸는지 포켓몬 빵의 품절 사태가 끝나갈 무렵의 어느 날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아이들 사이의 유행에 함께 지나가는 바람 같았다. 그럴 수 있다 여겼다. 그렇게 또래 문화 속으로 들어갔구나 싶었다. 친구가 좋아질 나이니, 꼭 같이 하고 싶은 무언가가 그렇게 생겨나는가 싶었다.
그렇게 반년쯤 흘렀나? 이번에는 포켓몬 카드이다. 허허. 이 녀석 봐라. 일주일에 1000원, 한 팩씩 포켓몬 카드를 사야 하겠단다. 어디까지나 일주일을 잘 보낸 보상으로 사주겠다는 약속을 걸었다. 매주 주말, 그동안 한 것을 검토하고 확인하고 근처 문구점으로 간다. 신중하게 골라서 카드 한 팩을 고르면, 그중 대부분은 별것 없어서 버리지만, 가끔은 희귀한 카드가 나온다. 카드를 곱게 모아 놓을 앨범도 샀다. 또 한 주가 지나면 한 팩을 사고, 또 한 주를 보냈다. 카드를 하나하나 모으면서 한 주를 꼭꼭 살아갔다. 앨범 하나가 다 찰 무렵, 포켓몬 카드를 사는 일도 끝났다. 희귀한 포켓몬 카드가 한 장당 50만 원이 넘는다는 뉴스가 나올 무렵이었다. 그렇게 하나의 소장품으로 포켓몬 카드가 꽂힌 앨범이 남았고, 몇 번 아이들과 서로 카드를 교환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마치 사기를 당한 것처럼 안 좋은 카드 여러 장과 좋은 카드 한 장을 바꾸고 와서는 속이 쓰려서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같이 속이 상하면서도 귀여워 웃음이 났다. 그래, 인생을 이리 배워가는구나. 포켓몬 카드 한 장에 2000원을 잡아도, 그 카드값으로 교환과 물건의 가치를 배운다면, 이만한 교보재가 없지 싶었다.
휴대전화를 사 주었다. 게임을 하나 깔고 싶단다. 뭐냐 물으니, 포켓몬 고. 아. 아직 마음속에 포켓몬이 남아 있구나 싶었다. 길을 가면서 하지 않기로, 길을 가는 중에 휴대전화를 꺼낸다면 게임도 삭제하고 휴대전화를 압수하겠다고 했다. 약속을 지킨다는 말을 듣고 게임을 깔아 주었다. 길에서는 안 꺼내는 것을 몇 번 확인하고 가만히 지켜보니, 처음 보는 장소에 가면 슬쩍 휴대전화를 꺼내는 것 같았다. 생소한 곳에서 처음 보는 포켓몬을 잡고는 자랑도 하고, 열심히 뭔가를 설정하고 잡고 하다가 다시 잊는 것 같았다. 이제 포켓몬에 대한 설명이 점점 깊어져 갔다. 슬쩍 보니, 가질 수 있는 포켓몬의 수가 정해져 있어 우선순위를 정해 남길 것만 남기고 버리는 듯했다. 그래. 무엇이든 그것에 대해 알아야 우선순위도 정할 터, 아는 것을 통해 판단의 기준을 세우고 있으니 됐다. 지킬 것을 지켜가며, 인생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이제 제법 크더니, 포켓몬을 잡으러 포켓몬 대회를 찾아 떠나야겠단다. 아니, 아직도 마음속에 포켓몬을 품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계획된 출정이 아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우연히 본 광고를 따라 주말에 반드시 가야겠단다. 그렇게 한참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종로의 어느 광장. 보호자로 따라간 그날, 얼마나 춥던지 콧물을 훌쩍거리다 아이를 잠시 남겨 두고 커피와 코코아를 사러 커피숍을 찾아갔다. 그 짧은 사이에도 얼마나 많은 포켓몬을 잡고, 또 버렸을까. 알람이 쉴 새 없이 뜨는 것을 보니, 저쪽으로 가서 새로운 것을 잡고 싶었을 텐데, 기다리기로 한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사람들을 피해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문득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가고 싶은 마음을 따라 아무 곳이나 향하던 어린아이가, 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같은 자리에 서서 기다리며 스스로를 돌볼 나이가 되었다. 잠시 하고픈 마음을 누르며 쉴 줄도 알고, 멈출 줄도 알고, 상황을 판단할 줄도 안다.
온전히 생존을 나에게 의지하던 아주 어린 시절을 지나, 이제 집에 혼자 찾아올 수 있을 만한 나이가 되기까지. 그 어린 인생의 절반을 포켓몬과 함께 커 왔다. 완전히 푹 빠지지도 않았지만, 은근한 관심도 놓지 않으면서. 그 안에서 소근육을 단련하고, 인생을 배우고, 절제를 배워간다. 다른 이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함께 하는 법을 배운다. 어느덧 진화를 거듭해서 능력치가 점점 커지는 포켓몬처럼. 작은 아이는 점점 커서 자기만의 포켓몬을 잡는 여정으로 들어섰다. 앞으로 펼쳐질 그 길이 반드시 꽃길은 아닐지라도, 부디 가시밭이 아니기를. 지우(주인공)가 포켓몬을 잡으러 가면서 좋은 사람들과 피카추를 만나서 의지하며 함께 한 것처럼 이 아이 인생에서 이루어질 만남과 인연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로켓단을 만나서 때로는 힘들었지만 악당이라고 보기에는 참으로 하찮고 귀여운 악당들이기에 적당한 긴장이 있어 애니가 즐거웠던 것처럼. 이 아이에게 나타나는 악당들도 그렇게 하찮고 귀여워 이 아이의 인생 또한 적당한 긴장과 어려움이 있어 즐겁기를. 포켓볼 안에 자신만의 포켓몬을 가득 채워 다니는 것처럼 이 아이의 주머니에도 즐거운 추억과 뛰어난 능력과 아름다운 사랑이 가득하여 어려움을 만났을 때 주머니를 던져 물리치기를. 그래서 한 회 한 회 즐겁게 끝나는 애니처럼, 이 아이의 하루하루가 즐겁게 끝맺기를.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옆으로 비켜서야 하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런 것뿐이라 참으로 소소하지만, 다음번 포켓몬 사냥에도 함께하여 아이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