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 한 페이지, 그 이야기

신간읽기 프로젝트 37

by 홍유


동백꽃이 가득한 살롱이라면 어떤 느낌이 드세요? 저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애잔한 영화의 한 장면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왠지 고전 영화 ‘카사블랑카’를 연상하게 된다고 할까요? 몽환적인 화면 속에 아름답게 그려졌던 잉그리드 버그만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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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멜리아 싸롱 / 고수리 / 클레이하우스 / 2024 / 책표지 출처: 알라딘 인터넷 서점


이 아름답고 꿈결 같은, 그러면서도 고풍스러운 이 공간이 사실은 망자들이 49일간 머무는 공간이라면 어떠신가요? 누군가 생을 마친 후 49일이 되는 날에 고인의 영혼이 다음 생으로 잘 환생하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를 ‘사십구재’라고 합니다. 그럼 49일간, 고인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들이 머무는 곳이 바로 이곳. ‘까멜리아 싸롱’입니다.


여느 날과 같이 일상을 시작한 25세 설진아, 53세 박복희, 75세 구창수, 16세 안지호. 아침에 도착하는 열차를 타고 양미동을 떠났는데, 이 열차는 가야 할 곳으로 가지 않네요. 얼떨결에 이들이 도착한 곳은 까멜리아 싸롱이 있는 동백역입니다. 처음에 이곳을 매우 낯설어하던 사람들은 나름의 사건을 겪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까멜리아 싸롱에서 이들의 49일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까멜리아 싸롱의 직원들, 여순자, 지원우, 마두열, 유이수와 검은 고양이 바리가 이들과 함께합니다.


이제 자신들의 인생을 반추하는 사람들. 자신의 인생이 한 권의 책이 되어 각자의 앞에 놓입니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까멜리아 싸롱에 모인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한 번씩 만났고, 이들의 삶이 타인과 단단히 엮여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쓰면 가슴이 따스해지면서도 감격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두 인생의 무수한 페이지 가운데 한 페이지가 겹쳐졌다.

저는 이 부분이 참 좋았어요. 이 문장이 세상에 홀로 사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여 준다고 생각했거든요. 인연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아주 중요한 일을 겪고, 그것을 계기로 사람의 운명이 흘러갔다는 것. 그 겹친 한 페이지 덕분에 한 사람이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먹먹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웃에게 행한 작은 일 하나가 사람을 살게 하기도, 죽게 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해서요.


49일간, 네 명의 새로운 망자들에게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음.. 이 부분은 소설로 치자면, 각자의 인생 책에 수록될 특별 외전으로 남길 만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어느덧 다가온 마지막 날, 까멜리아 싸롱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자신만의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잔잔하게 펼쳐지는 49일 이후의 이야기는 더 이상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로 남습니다.


이 책은 아마도, 사람 사이의 인연을 알알이 엮은 목걸이가 아닌가 합니다. 홀로 살지 못하는, 사람 속에서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책의 페이지의 겹침으로 강렬하게 보여주니까요. 인생 책이라는 뛰어난 발상, 페이지의 겹침, 그리고 그 사람과의 만남. 실제로 우리의 책이 있다면, 그래서 그 페이지에 적힌 사람을 감사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저의 인생 책의 무수한 페이지에는 누가 어떤 모습을 남아 있을까요? 그리고 저와 함께 했던 인연들의 인생 책에 저는 어떤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을까요? 이왕이면 참 좋은 모습으로, 고마운 사람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어느 한순간 참 고마웠던 사람이 떠오르는 것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나쁜 마음을 심지 않고 선한 영향을 주며 살아왔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냥 소설책이겠거니 하며 읽었던 이 이야기를 통해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 방법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에는 최근 우리 사회에 있었던 일들이 자작하게 담겨 있습니다. 사회를 반영하고, 그 안에서 사람을 생각하고, 그리하여 읽는 사람의 가슴을 두드리는 글. 글을 쓰고자 한다면 이런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다는 것은,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만나고 얽히면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겠지요. 너무나도 포근하고 따스하고, 그래서 길에서 스쳐가는 누군가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내는 이 이야기를, 이 글을 읽어주시는 님께 전해드립니다.



커버 이미지: 까멜리아 싸롱 앞표지(출처: 알라딘 인터넷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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