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서

매일 글쓰기 1일차

by 홍유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 놓고 차 안에서 멀거니 밖을 보고 있자니, 많은 감정이 느껴진다.




첫 번째로 격분을 느꼈다. 주차장에서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자니, 참을 수가 없었다. 공은 여기저기 튀면서 많은 차들의 범퍼를 때린다. 공을 잡으러 달려 온 아이들은 그 관성을 이기지 못해, 차들의 보닛에 쿵쿵 부딪히며 “꺄르르” 웃는다. 분명 보호자로 보이는 어른이 근처에 있는데도 말리지 않는다. 우리 차도 몇 번 공에 맞기에, 참지 못하고 내렸다. 문이 열리고 내가 내리자마자, 우리 차의 보닛에 부딪힌 아이는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휭하니 가버린다. 뒤에서 소리를 쳐서 잡을까도 싶었으나, 이미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아이들 뒤를 따르는 보호자가 나를 째려보는 눈길이 덤으로 따라붙는다. 머뭇거리던 나는 화낼 기회조차 놓쳐 버렸다. 남은 화가 분으로 남을까봐, 깊이 심호흡을 했다.


두 번째는 의문을 느꼈다. 왜 차를 다른 차 앞에 이중주차를 해 놓고, 연락처도 없이 그냥 사라지는 것일까. 급한 일이 있었나보다 양해하고 싶어도, 무한정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꽤나 힘들다. 출발하려고 켰던 시동을 끄고, 20분을 기다렸다. 건물 안에서 호다닥 누군가 나와서 미안하다는 눈짓도 없이 자기 갈 길을 가버린다. 추운 차 안에서 앞차의 주인을 기다리던 그 시간이 참으로 허망했다.


세 번째는 안쓰러움을 느꼈다. 제 몫을 하지 못하는 공간들에 대해서 말이다. 차 한 대가 들어가기에 넉넉한 공간이건만, 주차선을 물고 두 칸을 쓰시는 분들도 계시고, 주차라인 밖으로 차 앞부분이 불쑥 튀어 나온 차도 있다. 그 차 옆으로 딱 한 자리, 주차 공간이 남아 있다. 속으로 온갖 불평을 하면서도 정신을 집중해서 주차를 한다. 겨우겨우 주차에 성공하니 차 안에서 어떤 남자분이 내린다. 아이를 데려 온 아빠인가보다. 차 뒤쪽으로 제 몫을 하지 못하고 남겨진 주차 공간에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다.


네 번째. 융통성에 대해 고찰한다. 아이들 수업이 끝날 때쯤, 항상 차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다른 차들 앞에 이중 주차를 한다. 주차 공간이 있든 없든, 다른 차들이 나갈 길을 막고 항상 현관 바로 앞에 자리를 잡는다. 그 차를 타는 아이는 바로 현관 앞에 엄마가 기다리고 있으니, 조금의 힘듦도 없이 차를 타고 떠날 것이다. 어느 날은 참지 못한 차 한 대가 경적을 크게 울렸다. 다행히 차를 비켜준다. 자리도 생겼고, 다른 차들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제대로 주차를 할 것이라 믿었다. 잠시 자리를 비켰던 차는 역시나, 주차라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표지가 있던 것은 의외였지만 말이다. 내가 융통성이 없이 꽉 막힌 것인지 심히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부모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공부와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것이 맞을까, 조금 더 불편해도 지켜야 할 것들이 있어야 함을 알려줘야 할 것인가. 다른 사람들은 어디까지 배려해야 하는 것일까. 주차장이 작으면, 주차 공간이 없으면, 내가 바쁘면, 잠깐 불법을 저질러도 괜찮은 것일까. 다른 사람들에게 일방적인 양해와 배려를 바라는 것이 옳은가. 나만 즐거우면 행복한 일인가. 즐거움과 행복의 저변에 타인의 불편이 깔린다면 나는 어떤 기분을 느껴야만 할까.


오랫동안 지녀왔던 나의 가치관은 그 작은 주차장 안에서 종종 위협을 받는다. 그럴 때면, 차 안에서 하늘을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끝을 눈으로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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