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전과 김밥

우울, 예민, 얼굴엔 홍조

by 홍조

한창 우울증이 심하던 시절, 나는 태어나 두 번째로 김치전을 만들고 있었다.

완벽했던 첫 번째와 달리, 이번엔 흐물거리고, 뒤집어지지도 않고, 바삭하지도 않았다.


시간은 없고, 요리는 엉망이고, 나는 김치전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인 것 같아

너무너무 속상한 마음에 엉엉 울었더랬다.

물론 남자친구는 내가 해주는 건 뭐든지 맛있다고 맛있게 먹어줬지만.


허나 우울증이 심했던 나는 김치전이 안 돼서 속상, 맛난 음식 못 내줘서 속상,

김치전 하나도 제대로 못 부치냐고 나 자신을 탓하다가,

김치전 좀 못 부칠 수도 있지 왜 자학을 하냐고 나를 또 혼내다가,

김치전 못 부쳐서 속상해서 자학 좀 할 수도 있지 왜 자학할 정도로 속상한 나를 못살게 구냐고 또 탓하고,

그렇게 맛없는 김치전을 끝도 없이 나를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그 이후로 김치전 트라우마가 생겨서 해 먹지 않았고, 남이 김치전을 잘 부치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


언젠가의 상담에서 나는 김치전 이야기를 꺼내며 선생님 앞에서 또 한 번 엉엉 울었다.

김치전 하나에 이렇게 우울해하는 내가 싫고, 우울한 나에게 또 못된 말을 하는 내가 너무나 싫다고.



그로부터 1년은 더 지난 어느 날,

나보다 한참 나이 있는 지인의 남편분이 종종 주말에 다 같이 나눠먹으라고 김밥을 잔뜩 싸주시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김밥이 점점 더 예뻐지고, 흐물 하게 풀리던 게 짱짱하게 말려있는 걸 발견했다.

"이거는 홍조씨 줘" 하셨다며 제일 예쁜 김밥만 담은 한 통을 받아와서 혼자 먹다가 멍하니 생각했다.


- 좋아하는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즐겁게 만든 음식

- 그간 예쁘지 않은 김밥을 나눠줬다고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음

- 조금 부족한 실력에도 꾸준히 만들어주신 끈기

- 특별한 건 매일매일의 김밥의 모양이 아닌 나누어주는 정성과 마음



우울증과 완벽주의가 나를 점령해 작은 실수에도 너무나 괴롭던 나인데

조금의 회복 후 다시 김치전에 도전했다.

언제는 짜고, 언제는 흐물대고, 언제는 잘 구워지지도 않았다.

"미안한데 오늘 김치전은 못생기게 완성됐지만 맛있게 먹어줘." 라고

이제 덜 우울한 나는 힘을 내서 당당하게 말했다.



여전히 내 김치전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일정하지 않지만

이제 나는 김치전 부치기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어떻게든 먹여주고 싶은 마음, 그냥 그걸로 된 거야.

그렇게 우울증 리스트에서 눈물의 김치전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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