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잘하는 외할머니가 물공포증이 있었대요

여전히 생생한 그날... 결국 극복해 냈습니다

by 이서홍
IE003507257_STD.jpg ▲얼마 전 오랜만에 수영에 도전한 할머니. ⓒ이서홍


며칠 전, 유튜브 촬영을 위해 수영장에 갔었다. 나의 외할머니인 귀녀씨가 약 10년 만에 수영장에 있는 25m 레인에 도전하는 날이었다.


할머니는 한때 '인어'라고 불릴 정도로 수영을 잘하는 분이었다. 그리고 수영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처음부터 수영을 잘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수영해 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물공포증이 있었다.




아직도 생생한 그날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 할머니가 열여섯 살 쯤이었다.


"그때 동네 애들이 여럿 모여서 한강에 갔었지. 그때는 물이 빠지고 나면 갯벌에 들어갈 수 있었어. 거기서 조개 캔다고 간 거야."


조개를 캐기 위해 찾아간 한강에서 할머니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조개를 찾던 할머니와 친구들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서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갯벌 한가운데 서 있던 할머니는 가장자리부터 빠르게 차오르던 물을 보았다고 한다. 그때 지나가던 아저씨가 "빨리 나오라"며 소리를 지른 덕에 정신을 차린 할머니와 친구들은 허겁지겁 뭍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은 순식간에 차올랐다. 할머니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아휴. 그때 너무 무서웠지. 이 물이 가장자리부터 확 차더니 나가려고 보니까 가슴까지 오는 거야. 그래서 다들 울고불고 난리였지. 이대로 죽는 거 아니냐고."


귀녀씨와 친구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열여섯 살 남짓 된 아이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손이라도 잡은 거야. 다 같이 꼭 붙들고 뭍으로 천천히 나간 거지. 잘 걸어지지도 않아. 물은 턱밑에서 찰랑거리고 무서워 죽겠지. 그래도 살아야 되니까. 어떻게든 나갔어."


다행히 귀녀씨와 친구들은 손을 꼭 잡고 함께 뭍으로 나왔다고 한다. 누구는 물을 잔뜩 토하고, 누구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단다. 그렇게 할머니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물을 쳐다보는 것도 힘들 정도로 물공포증이 생겼다.


"그 후로는 물을 쳐다보는 것도 무서웠어. 조그만 대야에 찰랑거리는 물도 무서워서 그 앞에를 못 가겠는 거야."


그렇게 귀녀씨는 평생 물과 가까이할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물공포증 할머니가 수영에 도전한 이유

IE003507797_STD.jpg ▲유튜브 <귀한 녀자 귀녀 씨> 채널에 업로드된 영상의 한 장면. ⓒ귀한 녀자 귀녀 씨


귀녀씨가 50대 초반이었을 때다. 고된 시집살이와 2교대 직장일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귀녀씨는 우연히 수영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사촌 올케가 동네에 같이 살았어. 그래서 친하게 지냈는데, 수영장을 한번 오라는 거야. 너무 좋다고. 자기도 물이 무서웠는데 지금은 하나도 겁이 안 난대."


귀녀씨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사촌 올케의 간곡한 부탁에 "딱 한 번만"을 외치며 수영장을 찾았다고 한다.


"수영장에 들어갔는데 또 심장이 두근거리고 물을 못 쳐다보겠는 거야. 올케가 들어오라고 그러는데도 들리지도 않아. 그래서 다시 집에 가려고 했는데, 이미 수영복에, 수영모에 다 입었잖아? 내가 또 한 번 마음먹으면 일단 해봐야 되는 성격이고(웃음)."


그렇게 귀녀씨는 당신이 새로 사 입은 수영복이 아까워서라도 물에 들어갔다고 했다. 사촌 올케의 손을 꼭 잡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물에 들어간 날, 그것이 귀녀씨 인생에 첫 수영이었다.


"그날 기분이 아직도 기억나. 말도 못 하게 좋은 거지. 내가 그렇게 무서워하던 물을 이겨냈구나 싶고. 신기하게 물이 안 무서워진 거야. 정말 뿌듯하고 기뻤지."


그동안 취미 하나 없이, 살림과 2교대 직장일을 책임지며 가정을 위해 헌신했던 귀녀씨는 처음으로 '수영'이라는 취미가 생겼다.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귀녀씨에게 수영이란


"할아버지(남편)가 아프면서 수영이고 뭐고 다 그만뒀지. 그때 뇌경색이 오면서 걷는 것도 제대로 못 걸으셨어. 그래서 수영도 못 하게 된 거야. 수영 끝나면 그 친구들이랑 같이 밥 먹고 놀러 다니고 했는데 그런 것도 할 수 없게 된 거지."


귀녀씨가 50대 후반 정도 되었을 때쯤, 남편(나에게는 외할아버지)의 뇌경색 발병으로 인해 귀녀씨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간호에 전념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수영까지도 말이다.


"그때 수영을 그만두게 된 거야. 그리고 병원에 같이 다니면서 집에서는 간호하고, 그러면서 살았지. 그래도 할아버지가 당신 덕분에 살았다고 그러시더라. 맞아, 내가 진짜 열심히 살폈어(웃음)."


귀녀씨에게 수영은 숨통을 트이게 하는 존재였다고 한다. 한숨도 돌릴 수 없는 가정과 직장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곳. 그곳이 수영장이었다. 그래서 결국 귀녀씨는 70대 초반에 다시 수영장을 찾았다. 수영장이 폐업하는 바람에 오래 다니지는 못하였지만, 지금까지도 귀녀씨는 그 짜릿함과 해방감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80대 중반을 달리는 지금까지도, 귀녀씨에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존재가 수영이다. 얼마 전, 귀녀씨가 약 10년 만에 수영에 도전하면서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솔직히 예전처럼은 못해. 힘도 들고 자세도 제대로 안 나오고. 그런데, 이 나이 먹고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지. 할머니도 하는데 누구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 네가 내 유행어 만들어 준 거 있잖아. 까짓것!(웃음)."



귀녀 씨의 도전, 영상으로 만나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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