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삼천포로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1)
‘딩딩딩~~~, 딩딩딩~~’
‘지금 청량리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주시기 바랍니다.’
출퇴근 시간이 지난 시간인데도 지하철 플랫폼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랜만에 이 시간대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인문이로서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대학교 다닐 때부터 20년 넘게 다닌 회사에 출근할 때마다 보통 1시간 이상씩 소요됐던 터라 소요시간이 길고 짧은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지하철 내부 혼잡도에 더욱 민감한 인문이었다. 꼭 앉아서 가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서서 목적지까지 가더라도 그래도 좀 여유 있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더구나 덩치가 좀 큰 편인지라 좌석에 앉아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모든 걸 감안해 극심한 혼잡도를 피하기 위해 보통 지하철 맨 앞과 맨 뒷칸만을 고집하는 인문이었다.
‘칙~~~’
지하철 문이 열렸지만 인문이는 승차하지 않았다. 아니, 지하철도 인문이를 태워줄 생각조차 못하는 것 같았다. 이미 내부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맨 끝에 서서 대기했던 인문이 바로 앞에 사람도 내부 사람들의 날카로운 눈길을 받으며 겨우 탑승하고 있던 터였다. 열차 배차시간을 봐도 약 5분 후에 다음 열차가 올 예정이었고 시간적으로도 아직 여유가 있어 굳이 민폐를 끼치면서까지 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징~~~~~~~탁!’
지하철은 열렸던 문을 닫고 출발했다. 플랫폼을 가득 메웠던 그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로 떠나 또 하루의 여정을 시작했다. 인문이도 오늘 주어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평소 같으면 도서관이나 학원에서 책을 읽던지 블로그 게시글,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모학원 월급원장 포지션에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작년 이맘때 즈음에 모대학 컨설턴트로 근무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간 이후에 오랜만의 면접 기회였던 것이다.
재수종합학원 상담실장직, 경기도 외곽에 있는 재수 기숙학원 야간 실장직, 이런 학원들이 학생들에게 자율학습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운영하는 스터디카페 실장직 등 주로 학원분야에 재취업을 하기 위해 거의 매일 원서를 접수하고 있었던 인문이에게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었다.
이어서 도착한 지하철은 좀 전의 상황과 정반대였다. 착석한 사람만 드문드문 보일 뿐 지하철 내부는 밝은 형광등 빛만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전전 정거장에서 출발하는 지하철이었기 때문이리라.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다음 열차에 편히 앉아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가 느껴졌기 때문일까?
왠지 하루의 시작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것 같아 인문이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퍼졌다. 이 기세를 몰아 오늘 면접도 잘 봐서 꼭! 재수종합학원 원장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힘찬 다짐을 속으로 외쳤다.
평소에 독서논술학원을 운영하면서도 틈틈이 교육정책이나 수능제도 개편 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며 꾸준히 학습을 해 온 인문이었다. 하지만 주로 상담하는 층이 초등학교 학부모다 보니 실제로 상담하면서 이런 무거운 주제를 논하기에는 그들에게는 아직 먼 예기처럼 느껴질 것 같아 약간의 멘트만 추가할 뿐, 주로 문해력의 중요성과 학원 커리큘럼에 대한 상담을 주로 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매번 스터디하는 대학입시, 교육정책의 내용도 가끔 잊을 때가 있어 면접을 대비해 며칠 전부터 다시금 복습을 해오던 인문이었다. 다행히 그러한 정보들은 이미 배경지식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한 번 정도만 스캔하면 예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인문이는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정책이 너무나 자주 바뀌는 것 같아 아쉬움도 많이 느꼈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일선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의 노고도 모르는 바 아니고, 선진국을 벤치마킹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취지도 알겠는데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진정 학생들을 위한 것이냐?라는 질문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인문이었다.
사교육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문이가 뭔가 획기적인 묘안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인문이가 고3 때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담임선생님과 10분도 안 되는 시간으로 원서를 쓸 대학을 정하고 2 지망도 그렇게 점수 위주로만 정하는 더구나 아직도 대학 간판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여전한 것에 대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 역은 안양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 왼쪽입니다.’
면접을 대비해 스터디를 하려고 펼진 스마트폰 메모장을 들여다보며 또 엉뚱한 생각을 하던 인문이가 안내멘트를 듣고 내릴 준비를 했다. 역시 인문이의 집중력은 여타 사람들에 비해 떨어지는 게 분명해 보였다. 요즘 같은 변화무쌍한 시대에 장점이라고 표현해 주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인문이 역시도 그런 면이 장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목적지를 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타야 했다. 승강장에는 ’KTX 광명역 방면”이라고 적힌 허름한 종이박스가 철기둥에 매달려 있었고 바로 옆에는 로또를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마을버스가 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마을버스 치고는 배차간격이 좀 길다라는 생각을 하던 인문이는 아침부터 아다리도 잘 맞는데 로또를 해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대기줄을 이탈해야 했고 그러고 나면 다시 맨 뒷줄로 이동해야 할 듯한 분위기여서 이따 돌아오는 길에 하기로 하고 찍을 번호를 생각했다.
‘마을버스 번호가 10번이니까 일단 10번 하나 찜해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노란색 마을버스가 도착했다.
약 20여분 정도 흘렀을까?
나머지 5개의 번호를 조합하던 인문이는 하차 한 정거장 전이라는 스마트 폰 음성이 흘러나오자 차 밖을 바라보았다. 주택지역을 벗어나 업무지구로 들어서는 듯한 분위기의 건물과 거리에는 어디로 가는지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며 옛 생각에 잠시 잠겼다.
지하철 역에서 불과 200여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출근하면서 지각하지 않기 위해 단거리 달리기를 했던 기억, 로비에서 엘리베이터가 늦장을 부려 계단을 타고 16층까지 올라갔던 기억, 들고 다니는 백팩과 겉옷을 1층 안내데스크에 맡겨놓고 근처 커피전문점에 가서 차 한잔 들고 사무실로 들어가던 기억…
그럴 때가 좋았지..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멈춰 선 버스에서 인문이는 반사적으로 내리기에 바빴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재수종합학원 본사가 있는 빌딩 앞이었다. 3개의 동으로 구분이 되어있긴 했지만 로비와, 지하주차장이 통으로 연결되어 있어 자칫 처음 오는 사람들은 헤매기 일쑤인 구조였다.
로비 천정에 걸린 안내판을 따라가면서도 여기로 가는 게 맞는지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던 인문이는 그냥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몸을 맡기기로 했다.
많은 인파만큼 엘리베이터에 대기하는 사람 또한 많았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겨우 몸을 집어넣은 인문은 10층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