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퇴직한 문과생 이야기

8. 나 빼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by 드리머


‘탁!탁!탁!’


장작불 타는 소리가 정적이 흐르는 동네 마당에 퍼졌다. 인문이는 둘째 아들인 유진이와 함께 시골 아버지 댁 앞 마당에서 장작을 피우며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마침 바로 옆에 당숙할아버지도 살고 계셔서 저녁겸 함께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았다. 삼겹살이 노릇노릇 익어갈 무렵 아버지가 상추와 쌈장을 내오시면서 인문이에게 말했다.


“작은 아버지한테도 전화도 드리고 해라. 작은 엄마 돌보시느라 집에만 계시단다.”

“예~내일 올라가는 길에 한 번 가보든지 할게요~


인문이가 어렸을 적에 명절 때마다 조금이라도 늦게 시골로 오는 낌새가 느껴지면 좀 일찍 나서서 오라고 핀잔을 주던 작은 아버지는 성격이 인문이 아버지와는 정반대로 약간 다혈질이었다.

인문이 아버지와 어머니 신혼초에 갑자기 이혼서류를 사들고 부산까지 내려와 형인 인문이 아버지 보고는 당장 형수랑 이혼하라고 윽박지른 적도 있다고 했다. 물론 전후 사정을 인문이가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작은 아버지는 뭔가 자기 자신이 맘에 안든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성격이었다.

소주를 한 잔 드시며 당숙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가긴 어딜 가려고? 그냥 올라가라!”

“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인문이가 당숙할아버지의 술잔에 소주를 채우며 대답했다.

아버지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당숙할아버지는 말을 이어갔다.


“인문이는 아직 그걸 모르나?”

“내가 얘기 안했으니까 알리가 없죠…”


인문이 아버지가 대답했다.

두 어르신의 대화를 들으며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마치 유리벽 하나가 떠억 하니 쳐진듯한 느낌이 둔 인문이가 말했다.


“제가 뭘 모르는게 있어요?”

“그게 말이다,,,,,”


당숙 할아버지가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에이 말해 뭐해, 다 지난 얘기인데,,,,”


아버지가 당숙할아버지의 말길을 가로 막았다. 인문이도 내용이 궁금하긴 했지만 어르신들이라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당숙할아버지가 말씀을 이어갔다.


“인문이 너 잘 들어라. 다 지난 얘기지만 그래도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얘기하는 거니까.,,”

“아,,네네”

“너 처음에 집 산다고 돈 모자라서 할머니가 보태준 적 있지?”

“네~ 기억하죠, 할머니가 장례는 저 보고 치뤄달라시면서 모은 돈 보낼테니 보태시라면서요”

“그래, 니가 기억을 못하면 불효자지, 근데 그 때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냐?”


무슨 괴담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어린애 눈빛으로 인문이는 귀를 쫑끗 세웠다.


대충 그 때 시기가 조금 지나고나서 인문이도 대략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아버지로부터 들은 바가 있긴 했다.

당시 건강문제로 작은 아버지는 할머니가 계신 시골로 내려와 살아야 했는데 할머니 댁에서 지내기가 불편해 인문이 아버지 명의로 된 밭을 절반 뚝 잘라서 작은 아버지 명의로 돌려달라고 할머니한테 요구를 했다고 했다. 근데 할머니 입장에서는 형보다 벌이도 좋았고, 사는 것도 훨씬 나은 둘째 아들에게 첫째 명의로 된 땅의 절반을 주는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물론 수도권 어딘가에 있는 땅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충남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시골 땅이니 그렇게 뭐 크게 신경쓸 건 아니었는데, 할머니 입장에서는 둘째에 비해 돈도 힘들게 벌고 그럼에도 불구하게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첫째에게 마음이 더 쓰이셨던 것이리라.


그렇게 동생과 어머니가 날을 세우고 있는 와중에 인문이 아버지가 결국 해결책을 제시했으니…자기는 괜찮으니 아파서 시골로 요양온다는 동생한테 그냥 절반 내어주라고 한 것이었다.


인문이도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심 작은 아버지가 얄밉기도 했다. 집도 서울 자가에 건설관련 회사에서 임원까지 한 분이셨는데 형이 힘들게 사는거 뻔히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던 것이다. 내심 혼자 자란 자기가 오히려 속 편하다는 생각도 함께 하면서 어른신들 일이니 그냥 지켜볼 따름이었다.

당숙 할아버지께서 말씀을 이어 가셨다.


“인문이 니 작은애비가 어떤 사람이냐면….그 때 인문이한테 돈 2천만원을 보태준다는 소식을 또 어떻게 들었는지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니 할미한테 찾아와서는 그 돈을 왜 그 놈한테 주냐면서 할미한테 대드는게 아니냐! 아침부터 무슨 난리가 났나 싶어 가만 얘기를 들어보니 참…니 작은 애비가 배가 아팠던게야! 무슨 장손이라고 손자한테 돈을 그냥 주는게 어딨냐고, 그럼 자기 자식한테도 돈을 줘야 하는거 아니냐며 아주 그냥 니 할미를 들들 볶더구나. 근데 또 니 할미가 어떤 사람이냐. 눈 하나 꿈쩍 안하시는 분이거든…”


난생 처음 듣는 얘기였다. 인문이는 그저 당시에 할머니의 의지대로 아무 문제없이 당신이 모아온 돈을 손자에게 준 것이라고 생각했던 인문이었는데 이건 또 무슨 스토리란 말인가?


“내가 아주 그냥 니 작은애비를 작살을 내려다가 말았다.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지 엄마가 여기 니 애비를 포함해서 두 아들새끼들 기르느라 맨날 바닷가 가서 바지락 캐고, 굴 따고 장에 나가 팔아서 그 젊은 청춘을 혼자 그렇게 외롭게 보내셨는데 아들놈이라는 녀석이 그 돈 몇푼 손자한테 주는게 배가 아파서 아침부터 와서는….쯧쯧…내가 그놈 그거 살림살이라도 변변치 않았으면 이해라도 하지, 살만한 놈이 그 지랄을 하니 내가 볼썽 사나와서 도무지 참기가 힘들었다”


인문이의 머리속에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모르긴 몰라도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작은 아버지의 성격이 아니었을테니 그 사단이 났을 것이라고 예측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암튼 그렇게 일단락이 된 줄 알았는데 몇 년 후엔가 또 어느 날 와서는 니 애비 땅을 절반 뚝 잘라달라고 하더구나. 몸이 안좋아서 여기 와서 살아야하겠다면서…”


이제 조금씩 앞뒤 사건의 흩어진 조각들이 하나둘씩 맞춰지고 있음을 인문이는 깨달았다.

당숙할아버지께서 술잔을 기울이시면 말씀을 이어갔다.


“근데 내가 볼 땐 건강은 핑게고 니 할미, 그니깐 지 엄마가 정신이 더 악화되기 전에 인문이한테 갔던 돈을 보전하려고 니 애비 명의로 된 땅을 달라고 한 것 같더구나. 맨 처음에 그 땅을 다 달라고 했거든….”

이제 인문이가 몰랐던 그간의 흩어졌던 사건들의 조각들이 다 맞춰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 사건의 중심에는 인문이가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나도 니 작은 애비를 욕하긴 싫은데 내가 왜 자꾸 나쁘게 말을 하냐면,,,,그렇게 니 애비 땅을 절반 뚝! 잘라서 주었더니 2층 짜리 집을 짓고 잘 사는가 했지. 근데 1년도 안돼서 그 집을 외지 사람한테 팔았지 뭐냐? 물론 몇 푼이라도 이익을 남겼겠지 않겠어? 하는 짓을 보면 안다니까….”


그랬다. 잠깐 살다가 다시 이사를 간 작은 아버지를 보고는 몇 년전 어느날 술을 거하게 드시고 인문이에게 전화를 하신 아버지 말이 떠올랐다.


“나쁜 놈에 새끼. 그 놈은 내 동생 아니다!”


물론 작은 아버지도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이유 중 하나가 인문이와 연관이 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던 인문이를 대하던 작은 아버지는 얼마나 참기가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인문이는 모르는게 약이다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지금에서야 그간의 일들이 밝혀졌지만 지난일이었다. 인문이가 알았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작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면서도 가급적 마추지지 않는 걸로 마음을 정한 인문이는 다음날 바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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