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퇴직한 문과생 이야

7. 다른 세상에서는 부디 더 행복하고 평온하시길 빕니다.

by 드리머

방학 때마다 내려오는 손자 반찬 걱정이 과했던걸까?

할머니는 인문이가 결혼을 하고 몇 년이 흐른 뒤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되셨다. 물론 그 전부터 조금씩 치매가 진행은 되었지만 갑작스레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이제는 시골집에서 혼자 생활하시기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인문이 기억으로는 결혼하기 직전인 2004년1월 결혼 전 아내인인 가은이와 함께 할머니가 계신 서천 시골집으로 찾아가 동네 어르신들은 물론 할머니께도 인사를 드릴 때가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2년 후에 인문이에게 집 살때 보태라고 2천만원을 보내주시고 몇 년이 흐른 뒤 할머니는 서천에 있는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셨고, 그런 이후로는 연락 한 번 직접 못드리고 요양원으로도 찾아뵙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인문이는 부모간 불화에, 부모님과의 불화도 겹쳐 자기 가족만 챙기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흘러 15년여쯤 지났을까? 어느날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은 인문이…


“야! 이놈아! 할머니 요양원에 한 번 가보자고를 안하냐!”

“아..그게…”
“이번주 토요일 날 한 번 내려와라~ 함께 자보자. 할머니가 오래 못 버티실 것 같으니 돌아가시기 전에 손자 한 번 보여주러 가자꾸나. 못 알아보실테지만….그래도 너 집 사라고 돈도 주셨는데 이놈아!”


그렇게 전화를 끊은 인문이 아버지 또한 그간의 풍파와 하루하루 나이가 들어 이제는 현장 일을 못하는 까닭으로 할머니가 사시던 집으로 귀향하여 혼자 살고 계셨다.

인문이는 그런 아버지에게도 명절 때 즈음에 가끔 둘째를 데리고 토요일 날 내려가 마당에서 텐트치고 야영을 하고 돌아올 뿐 그렇게 홀로 계신 아버지에게 살갑게 신경을 다 쓰진 못하던던 터였다.

주말에 차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할머니가 인문이에게 해준 은혜에 비해 인문이가 했던 일,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도 초라했기 때문이었다. 평생 모은 돈을 손자 집 산다고 쾌척하기가 물론 쉽다면 쉽겠지만 풍족하지 않은 삶을 사신 할머니가 그렇게까지 헌신적으로 나서줄 거라고는 인문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이는 어땠는가? 때가 되면 시골에 가서 할머니를 찾아뵙기는 커녕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게로 여유있는 마음으로 할머니 얼굴 한 번 뵈러 간 적이 없었던 것이다.

요양원에서 손자가 오는 줄도 모르고 계실 할머니를 생각하니 지난 세월이 참 후회스러웠다. 정정하실 때 증손자들도 데리고 가서 인사도 드리고 했어야 하는데 할머니께 너무나 무심했던 자기 자신이 원망스럽고 한심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도착한 입구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인지라 굳게 철문으로 닫혀 있었다. 마치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교도소를 방불케 했다. 날씨가 쌀쌀했지만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인문이의 마음이 공허할 뿐.


10여분 정도 지났을까? 휠체어에 몸을 맡긴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마자 인문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유리창 하나를 두고 몇 십년만에 마주한 할머니의 얼굴은 너무나도 야위어 있었다. 가마솥에 밥을 얹으며 타기라도 하면 손자가 안먹을까봐 그 앞에 쪼르리고 앉아 게시며 시간을 보내던 모습이 아련한데 몇 십년 사이 이렇게 몸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대하려니 차마 맨 정신으로는 쳐다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요양원에서 할머니와의 짧은 만남을 가지고 떠나려니 발이 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그간의 세월을 후회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저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남은 인생 지내셨으면 하는 바람이 전부였다.


그렇게 요양원을 방문한지 6개월여가 지났을까?

출근해서 간만에 일에 집중하고 있는 인문이에게 또 다시 걸려온 전화는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야! 할머니 돌아가셨다. 얼른 내려와라~”


다급한 목소리 뒤로 약간의 흥분을 느낀 인문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실장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한달음으로 집에 도착했다. 급하게 이것저것 챙길 여유없이 먼저 가있겠다는 말만 남기고 운전대를 잡은 인문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난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휙휙 지나갔다. 마치 바로 옆에 할머니가 계신 것처럼…..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 출발한 인문이는 내내 눈물을 머금으며 운전에 집중했다. 별의 별 생각이 다 지나갔지만 할머니를 자주 못 뵈었다는 후회는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장례식장에 도착한 인문이의 손을 잡아 끄는 건 아버지였다. 다짜고짜 여기 앉으라고 하면서 밥부터 먹으라고 했다. 잠시 후 맞은 편에는 생전 처음보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앉더니 인문이에게 인사를 했다. 자초지종을 몰라 그저 동네 사시는 양반들인가보다 하면서 엉겁결에 인사를 받고 나누고 했다.


그러더니 나이가 아버지 또래로 보이는 어느 여성분을 아버지가 모시고 오더니 나보고 인사를 하라고 했다. 뭐 동네 어르신인가 싶어 인사드리고 밥을 먹는데 돌아가는 모양새가 좀 석연치 않았다. 혼자 사시는 것 보다는 그래도 두 분이 함께 사시면 식사도 거르지 않고 말동무도 되고 그런 얘기를 하면서 인문이를 빼고 나머지 4명이 모두 고개를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눈치였다.


아니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이 양반들이 무슨 얘기를 하나 싶어 도무지 감을 못잡던 인문이는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먹던 음식을 내려놓고 테이블에서 일어나 손님들 조문문을 받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인문이는 자기를 제외한 이 4명의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했던건지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3일장을 치루기 전날, 장의사가 가족들을 불러 모으더니 고인에게 전할 추모사를 써 달라는 당부를 하며 누가 할지를 정해달라는 것이었다. 가족들 서로 눈길을 주고 받는 사이 갑자기 사촌동생이 “형이 해”라는 한마디에 장의사는 관계가 어떻게 되시냐고 되물었다. 옆에 있던 작은아버지께서

“우리 집안 장손이에요”라고 하니 장의사는 올커니 잘되었다는 표정으로 내일 아침까지 작성하셔서 직접 낭송까지 하시면 된다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글하면 인문이였으니 큰 부담은 느끼지 않았지만 가족들 앞에서 읊으라고 하니 그게 좀 불편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이는 살아생전 할머니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 것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만회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밤새 고민하며 추모사를 스마트폰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 추모사 전문 -

뜻하지 않게 갑작스런 소식을 접하며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여기까지 오는 시간이 왜그리 길게만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렸을적 여름과 겨울을 가리지 않고 방학때마다 찾아와 놀다갔던 기억이 이제는 제 마음 속 깊숙히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은지 이미 오래입니다.


끼니때마다 손자반찬 걱정을 하시면서 장날 사오신 나물을 무치시던 모습과 가마솥 밥위에 얹은 계란찜의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날이 더우면 더운대로 날이 추우면 추운대로 밤낮으로 자식 걱정만을 앞세우신 당신의 그마음을 가족들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이른 나이부터 홀로 자식을 키우시며 인생의 모든 고난과 시련을 외로이 이겨내신 당신이었기에 그 떠난 자리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공허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기나긴 시간 인내와 끈기로 모든 역경을 웃음과 여유로움으로 승화시켜 우리 가족들의 커다란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셨던 당신에게 이제야 비로소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고생하셨고 수고하셨다고 온 가족의 마음을 담아 전합니다.


부디 다른 세상에서는 이곳에서 누리시지 못한 행복과 건강을 마음껏 누리셨으면 합니다. 남아있는 가족들 한명 한명도 당신의 강인한 정신력을 이어받아 인생의 고난과 시련을 보란듯이 이겨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세상살이에 지쳐 나약해지고 쓰러지는 가족들이 보이면 당신의 손을 뻗어 일으켜 세워주셔서 보이지 않는 가족들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마치시고 고요하게 잠드신 당신의 모습을 보니 평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평온함을 잃지 마시고 다른 세상에서 부디 행복하십시오.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가족 일동.




장례절차가 다 끝나고 작은 아버지가 추모사를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하셨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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