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퇴직한 문과생 이야기

6. 구세주가 나타났다.

by 드리머

‘지지징~ 지지징~~~~~지징~~ 징~’


건물운영팀으로 인사발령을 받은지 6개월여 남짓, 건물을 그림그리듯이 머리속에 각인시키기 위해 텍스센터 곳곳이 샅샅이 쥐잡듯이 돌아다니고 있는 인문이의 핸드 진동이 거세게 울렸다.


“여보세요~”

“인문이냐? 할미다! 잘 들리냐?”

“네네~ 할머니….”

“니 애비한테 얘기들었다. 집을 사고 싶은데 돈이 부족하다고? “

“어,,,,,네”

“니 애비도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버는데도 많이 벌지를 못해서…. 이 할미가 모아논 돈 2천만원 보낼테니까 집 사는데 보태라~”


그랬다. 인문이가 결혼하고 2년쯤 지나고 였을까? 여차저차 집을 살 기회가 예고없이 닥쳤다. 근데 자금이 좀 부족해 실례를 무릅쓰고 뻔히 상황을 알면서도 욕심이 나서 부모님께 자금조달을 부탁했던 터였다. 더구나 처갓댁에까지 그 얘기 한 상태에서 갑자기 할머니가 전화를 하셨던 것이다.


“대신에 이 할미가 언제 하늘나라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할미 장례식은 인문이 니가 치뤄주어야 한다. 2천만원을 갚는 대신에 말이야.”


무슨 말씀이신가 싶었지만 반사적으로 네라고 대답하고 나서 가족들 안부를 묻는 말씀에 좀 더 대답하고는 이내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얼마후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 할머니한테 전화 받았지? 노인네 그렇게 안해도 된다고 했는데 굳이 고집을 부리시고는 ….”


전후상황을 알리없는 인문이가 어리둥절해 하는 틈을 타 아버지는 말을 이어갔다.


“일단 돈은 받고 할머니가 하자는대로 하겠다고 해라. 그 돈은 내가 갚든지 할테니까”

“네…”


인문이와 인문이 아버지가 나눈 짧은 통화시간이었지만 이 얘기를 하기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인문이는 감출 수 없었다.


일단 난생 처음으로 집을 사기 위한 자금이 모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내심 우리집은 얼마나 가진게 없길래 그 영향이 할머니께까지 가나 싶은 원망도 없지 않아 죄송스럽고 불편한 마음 그지 없었지만 일단은 자금이 해결되었다는 사실에 그 부정적인 감정은 뒤로 감추기로 했다.

인문이는 바로 와이프인 가은에게 전화를 했다.


“할머니께서 보태주신다고 하셨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뭘?”

“아니 그 아파트 매수자금 모자라는거….”

“정말? 할머니가 무슨 돈이 있으시다고 그 돈을 받으려고 해!”

“아이 뭐…몰라…암튼 더 자세한 얘기는 이따 집에서 해~”

“자기야! 그건 아닌거 같애…….”


바쁘다는 핑게로 이내 전화를 끊었지만 가은이의 목소리에는 우려가 섞여있음을 인문은 알았다.

정말 없어도 이렇게도 없는 집안이 있나 싶을 정도로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며 여차저차 결혼까지는 했지만 그래도 뭐 성실하고 착한 남자려니 하고 있든 없든 돈은 벌면 된다 생각하고 살던 터였다. 근데 갑자기 아파트를 산다고 근 며칠동안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파트 얘기만 하면서 돈 없어서 하고 싶은 것도 못한다고 푸념에 원망섞인 노래를 부르던 남편이 불쌍해보이기도 하면서 한심하게도 보였던 가은은 굳이 이렇게까지 돈을 받아서 아파트를 사고 싶지는 않았던 눈치가 역력했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한 인문은 가은과 함께 대화를 이어갔다.


“여기 3~4년 있으면 잠실에서 지하철도 연장되고 그럼 삼성역까지 출퇴근 시간도 30분 이내로 줄어~”

인문이가 기대와 희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자기 거기 들어가서 살려고 하는건 아니지?”

상대가 뭐뭐 할려고 하는건 아니지?라고 물을 때의 정석 답변은 ‘아니야’라고 배운 인문이는….

“뭘 거기까지 가서 살어.. 기반도 없고 자기 아는 사람도 없고, 친정도 멀어지는데…”

“그치? 난 친정에서 멀어지는 거 싫어~”

“그래 내가 잘 알지~”

“그럼 여기 있는 아파트를 사야되는 이유를 설명을 해봐~”


가은이 역시도 내집마련에 관심은 있었지만 저렇게 급하게 결정내리려는 남편이 우려스러워 그에 합당한 근거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몇 주동안 인터넷을 뒤져가며 모아온 자료를 스터디하면서 머리 속에 각인된 사실을 풀어내는 인문이를 보며..


“할머니가 그 돈 보태주시면 다 해결되는 거야? 세금은?”

“응 딱 맞아!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아~”

“그래? 그럼 사! 대신 아버님 명의로 산다고? 그건 왜그런거야? 돈을 할머니께 받아서?”

“아니 그런건 절대 아니고 우린 무주택으로 남으면서 분양을 노려야지~~”


그렇게 인문이와 가은이는 갓 돌이 넘은 재민이가 깬 줄도 모르고 그렇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노래하며 아파트 매수를 결정지었다.


약 한 달여 동안 아파트를 매수하기 위해 마른 수건 짜듯이 자금 계획을 세워왔지만 답이 없어 답답해하던 인문이는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자기를 보살펴준 할머니라는 구세주를 만났던 것이다.


사실 내집 마련이라는 목표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쥐꼬리만한 월급 받아서집을 살 형편이 안되었던 인문이는 회사 출장이든 가족여행이든 여기저기 차로 돌아다닐 때마다 도로 양옆에 즐비한 아파트를 바라보며 이 땅에 정작 우리 가족이 살 수 있는 방 한칸 없다는 사실에 드높은 아파트 만큼이나 현실의 높은 장벽을 느끼던 찰나였다.


그런 감정이 절정에 다다를 무렵, 새로 인사발령 받은 건물운영팀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된 용역회사 과장님이 뜻 밖의 제안을 했던 것이다.

사실 처음 제안은 이 팀에 오자마자였다. 아파트가 같은 동네에 2채가 있는데 한 채에 실거주 하고 있어서 나머지 한채는 팔고 싶은데 사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인문씨가 이집 관심있으면 시세보다 좀 더 싸게 팔 생각이 있는데 한 번 생각해봐요~”


당시 인문이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자금도 없었을 뿐더러 서울도 아닌 경기북부에 있는 15년 넘은 복도식 아파트라니…..인문이가 꿈꿔오던 보금자리와는 너무도 갭이 컸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약 5개월 후 또 다시 그 과장님은 인문이에게 제안을 했다.


“인문씨, 내가 자금이 필요한데 이 아파트를 넘기지 않으면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거든…..물론 더 싸게 내놓으면 팔리긴 할텐데 그렇게 헐값에 모르는 사람한테 넘기느니 인문씨한테 넘기는게 나을 것 같아서…다만 얼마전보다 시세는 좀 올랐지만 예전에 제안했던 가격으로 넘길려고 하니까 한 번 생각해봐요~”


처음 제안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두번째 제안은 인문이의 가슴에 콕콕 박히는 느낌이었다.

이때부터 인문이는 그 아파트를 둘러싼 환경과 각종 정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2주동안 모은 정보는 인문이에게 매수라는 결정을 내리게 해주었다.


막상 매수라는 결정은 내렸지만 인문이에게는 자금이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 과장님은 지금 살고 있는 임차인 보증금이 8,500만원이고 매수금액이 11,500만원이니까 인문씨는 3천만원만 있으면 되고 취등록세, 법무사비용까지하면 2백만원이 채 안들거라고 했다. 더불어 비용을 아끼기 위해 계약서는 자기가 알고 지내는 부동산에서 쓰면 공짜라고까지 했다.


지나고보니 그게 바로 갭투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인문이는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의 도움으로 생애 첫 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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