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퇴직한 문과생 이야기

5. 꾸준함은 언젠가 빛을 발한다.

by 드리머

‘탁! 탁! 탁! 드르륵~드르륵~’


복도에서 뭔가를 설치하고 올려놓고 정리하는 소리가 수업시간 내내 교실로 스며들었다. 인문이는 그 소리가 영 거슬려 가뜩이나 집중력이 약한 탓에 수업시간에 몰두할 수가 없었다.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20여분 정도 흘렀을까? 수업을 마치려는 담임선생님이 인문이를 호명했다.


“인문아~ 축하해”

“네???”

“밖에 복도에 가보면 알 수 있을꺼야. 다른 친구들도 지난 겨울방학 때 매일매일 일기 쓰느라 고생했어요. 물론 제출하지 않은 학생은 그에 응당한 벌을 선생님이 준비 중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고~”


무슨 말씀이신가 싶어 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나서자마자 인문이는 복도로 달려갔다. 기다란 복도 저 끝에서부터 인문이가 속한 반 교실 앞까지 쭈욱~ 늘어선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것들이 올려져 있었다. 그림, 수수깡으로 만든 조형물, 액자, 곤충박제물 온갖 노트 등 실로 다양한 물건들은 벼룩시장을 방불케 했다.


호기심에 가득찬 친구들은 웅성거리며 길게 늘어선 작품들을 살펴보며 누구는 박수를 치고 있었고, 또 누구는 기쁨에 찬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인문이도 빠질새라 친구들 사이로 몸을 구겨 넣으며 하나하나 작품들을 뜯어보았다. 복도 중간쯤 다다랐을까? 인문이는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녹색 표지의 노트를 발견했다.


“어?? 이거 인문이 니꺼 아니야?”

옆에 서 있던 정태가 말했다.

“맞네…여기 이름도 있고”

“그러게…”

“어? 금상이라는데? 인문아~ 축하해~ “

인문이의 일기장 옆에 금색으로 빛나는 꼬리표가 하나 붙어있었다.

‘축, 금상’


3학년 때까지 줄곧 개근상으로 성실함을 대변해오던 인문이가 드디어 학교로부터 첫 상장을 받은 것이었다. 물론 대상보다 한단계 아래이긴 하지만 인문이는 나름 보람과 성취감을 느꼈다.

사실 상장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겨울방학 숙제를 평가해서 상장을 준 적도 없었던 일이기에 기대는 일도 없는 상태에서 받은거라 너무 뜻밖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 많은 방학숙제 중에 일기분야에서 받은 상이라 더욱 값진게 아닐까 싶었다. 다른 거야 뭐 하루이틀 단시간 안에 만들어서 제출을 하면 되지만, 일기는 기나긴 방학 동안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써야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작성하는 보통의 방학일기는 이런 스토리였다.

오늘은 날씨가 맑았다. 점심은 무얼 먹었고 숙제는 뭘 했으며 누굴만나 어디서 놀았다. 잠을 잤다. 뭐 이런 골격을 바탕으로 조금씩 살을 붙이고 비가오거나 눈이 오면 날씨변화에 따른 놀이가 살짝 달라지는 정도였다. 하지만 인문이의 일기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인문이 부모님은 충남 서천이 고향이시다. 시골이라고 표현하는 그곳에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6.25 때 돌아가셨는데 유해는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고 다행이 할머니는 국가유공자 가족으로 연금을 받으시면서 살고 계셨다. 다만 할아버지가 너무 젊으셨을 때 돌아가셔서 어린 나이에 할머니는 두 아들을 홀로 키우셨다는 것이다.


암튼 인문이는 여름방학이고 겨울방학이고 방학만 되면 할머니가 계신 시골로 내려가 방학내내 지내다 왔다. 그런 인문이를 할머니는 반찬걱정으로 노심초사하셨다. 인문이는 대국민 반찬 중 하나인 김치는 입에 잘 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된장찌게나 국은 쳐다보지도 않는 그야말로 편식으로 똘똘 뭉쳐진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방학 때만 되면 할머니는 손자 반찬 걱정으로 5일장이 서는 읍내로 나가 계란이며 멸치며 마른 오징어며 손자가 좋아할 만한 반찬거리를 사오셔서는 볶아보기도 하고 무쳐보기도 하셨다. 근데 문제는 편식쟁이 인문이가 입도 짧았던거였다. 한 번 상에 오른 반찬은 두어번까지는 먹었지만 다음날이 되면 또 손도 대지 않았던 것이다. 반찬도 가리고 또래에 비해 비만이었던 인문이가 걱정도 되었지만 할머니는 방학 때마다 찾아주는 손자가 기특하고 고마워 어떻게든 입맛에 맞는 밥상을 차려주려고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


당시만 해도 부뚜막이라고 일컫는 소위 부엌에서 아궁이 불을 때는 시골집 구조로 가마솥에 밥을 하던 시절이었다. 인문이는 그 가마솥밥이 어찌나 맛있었던지 그리고 거의 밥이 익을 때 즈음에 스댕 그릇에 계란을 풀어 만들어 주시는 계란찜을 먹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만 같았다.


사실 계란 후라이, 찜, 말이만 있어도 인문이는 밥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내려와 한 두달 있다가 가는 손자에게 계란반찬만 줄 수는 없었으리라.


그러다가 도저히 먹을만한 반찬이 없을 때면 동네에 다른 집에 가서 먹기도 하고 라면도 끓여 먹기도 했다.

할머니가 계신 시골에는 당시에도 사람이 많이 살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에 비하면 인구 과밀이었지만 말이다. 당시 시골에 가면 같은 또래 친구들이 3명, 위아래 형, 동생들이 너덧명 정도 있었다. 그들과 함께 인문이는 바닷가와 접해있는 그리고 울창한 산이 있는 동네 여기저기를 아침부터 해가 떨어질때까지 떠돌며 다양한 놀이를 즐겼다.


사실 인문이가 살던 도시에서는 만끽하지 못할 환경을 바탕으로 실로 다양한 놀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그 때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큰 복이었는지 새삼 느낀다.


여름에는 서해안의 짜디짠 바닷물에 하루 종일 몸을 담그고 등짝 허물이 벗겨지는 고통을 이겨냈으며, 또 한 겨울에는 산 중턱에 올라가 쌓인 눈위에 비료를 담는 비닐을 타고 활강하는 짜릿함을 느끼며 그 추운 날씨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산을 구르고 오르고를 반복했다.


도서관만큼이나 조용했던 시골동네는 인문이가 방문하는 방학때만 되면 시끌벅적해졌다. 동네 곳곳에서 아우성이 들렸고 때론 동네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괴성이 퍼졌으니 이 모든게 인문이의 방학일기 소재가 되었던 것이다. 놀거리가 없어도 주변환경이 모두 소재가 되고 땅에 굴러다니는 돌조차도 놀거리의 소재가 되었다.


하루는 수영, 하루는 낚시, 또 하루는 수박서리, 또 하루는 할머니와 5일장 방문, 읍내시찰, 시골버스 체험, 갯벌체험, 주말에 교회에도 가보고, 망까기, 비닐 눈썰매도 타고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인문이는 외동아들이 주로 보여주는 이기적인 모습을 갖출새가 없었다.


어떤 일을 주도적으로 하자는 리더십도 없었지만 반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내세우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외아들이 보여줄 수 있는 모난 점을 인문이는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깍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긴 겨울방학 동안의 경험을 일기에 하루하루 적어가면서 인문이는 조금씩 성장해갔다. 그렇게 내면의 성장을 해나가면서도 방학숙제 평가에서 금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었으니 이 작은 성취감도 인문이의 뇌리에 아직도 깊숙히 남아있으리라.



아마도 인문이가 말보다는 글이 편한게 이 때부터 쌓인 내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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