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퇴직한 문과생 이야기

11. X세대의 동질감은 무엇?

by 드리머


‘딩동!, 딩동!’

“여기 소주 한 병 더요!”


고기냄새가 사방으로 퍼지는 삼겹살집에 모여 앉은 안교, 강원 그리고 인문.

이 셋은 수원, 안양, 인천에 살면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통학을 했던 같은 과 동기동창이었다.

국가유공자 자녀인 안교는 군대도 아주 짧게(6방) 다녀와 다른 친구들보다 1년여 먼저 사회에 진출해 지금은 모은행 부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빡쎈 군생활(공병대)인 탓이었는지 얼굴이 나이에 비해 살짝 더 들어 보이는 강원은 여차저차 포워딩 업체에 입사해 지금까지 두어 번 정도의 전직을 통해 지금은 후배들을 몇 거느리며 포워딩업체 부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나름 시간적인 여유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결혼을 하고 4년이 흐르고 용인 수지에 새로이 터전을 잡았던 인문이는 결혼 후에도 수원에 살고 있는 안교와 가끔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지내며 동탄에 보금자리가 있는 강원과도 함께 어울리던 터였다.


그렇게 또 오랜만에 그것도 평일 3시부터 이들이 만날 수 있었던 건 안교는 그간 은행에서의 업무가 스트레스로 작용했는지 심장암이라는 판정을 받고 1년간 휴직을 하고 있는 상태였고, 강원은 업무를 오전에 바짝 끝내고 외부 영업을 나간다는 핑계로, 그리고 인문이는 오전에 모대학 교직원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고 나서 짬을 내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대낮부터 그간의 안부를 서로 물어가며 삼겹살 집을 여간 소란스럽게 만드는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취기가 살 오르려는 순간, 인문이가 손목에 차고 있는 스마트워치가 요란하게 진동을 부렸다.

다름 아닌 오전에 면접을 보고 왔던 모대학 사무실 전화번호였다.

인문은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술자리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 아무 일 없듯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똑! 똑!’

“네 들어오세요~”

“10시 30분에 면접 보러 온 임인문입니다.”

“업무를 보던 직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소곤거렸다.”


마침 사무실 저 뒤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어머! 벌써 오셨어요? 지금 시간이….”

“아.. 네…”


면접시간보다 약 20여분 남짓 일찍 도착한 인문이에게 잠시 대기할 곳을 알려주며 다른 팀장님들도 오셔야 하니 5분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긴 그 사람은 바로 채용공고를 낸 교학팀 총괄을 맡고 있는 팀장이었다.

잠시 후 면접관들로 보이는 중년쯤, 아니 인문이의 또래와 엇비슷해 보이는 남자와 여성 2명 총 3명이 회의실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남자분이 어색함의 정적을 깨고 먼저 포문을 열였다.


“ 자기소개서를 보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역시도 비슷한 감정을 느껴서 그리고 나이대도 우리와 1~2년 아래 위고 해서 궁금해서 일단 오시라고 했어요.”

“아.. 네~”

“잘 다니시던 회사 그만두고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선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거 여기 있는 우리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신 건지 궁금해요”

“ 꼭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만두었다기보다는 저 역시도 그렇고 지금의 학생들도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찾아 전공을 선택하고 진로의 방향을 잡는 경우가 많지는 않더라고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점수로 대학교 가는 건 변함이 없고, 다만 그간의 교육정책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아직도 정책이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학원을 운영하면서 공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런 아쉬움도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저는 저 역시도 졸업 후 취업이 힘들 것을 대비해 미리 따놨던 자격증으로 취업을 앞두고 있거나 전공선택을 앞둔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이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운영하는 학원의 경영상 어려움도 있어 투잡을 생각하면서 지원은 했지만 본업과의 연계성, 더구나 대학교에서의 업무 경험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그렇도 이력서를 접수시켰던 인문이었다.


“더불어 사교육 분야이긴 하지만, 길지 않은 기간 교육분야에 몸을 담그며 깨달은 점은 저 역시도 대학교 원서를 작성할 때 누군가가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랬다면 저의 선택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죠. 제가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인데 당시 모의고사 평균 점수로 원서를 쓸 수 있었던 대학교가 졸업한 그 학교와 시민대 교육학과 이렇게 두 가지의 선택이 가능했었는데 단순히 집에서의 거리만으로 학과를 결정했다는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만약 그때 시민대 교육학과를 선택했다면 제 인생은 또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고요.”


그렇게 약 50여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회의실 안에 모인 인문이를 포함한 4명은 마치 오랜 시절을 달리 살아온 친구를 몇 십 년 만에 만난 것처럼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저도 여기 노조활동도 해보고 하는데, 물론 그러면서 입지가 좀 거시기 해졌지만, 아무튼 임인문 씨를 보니 나 역시도 말씀하신 대로 삶을 관성적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싶네요. 근데 뭐 여기 다른 두 팀장님들도 여자분이시긴 해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특히 남자가 하던 일을 갑자기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 나서기란 참,,,,우리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경력이나 스펙이 훌륭하다면 모를까….”


“ 맞아요! 우리 남편도 맨날 새벽부터 여의도로 출근하는 모습 보면서 좀 짠한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렇다고 나이 많은 사람 다 잘리는데 그래도 우리 남편은 그 자리를 지키고는 있어서 대책 없이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고.,... 어찌 보면 배부른 소리 같지만, 오히려 남편은 저보고 정… 힘들면 그만두라고 할 정도니까요…”


“ 맞아요. 그나저나 우리야 뭐 그렇다 치고 우리 애들은 또 어떻게 살지 참 막막합니다. 전공이니 뭐니 흥미 적성 찾으면 뭐해요. 취업이 저렇게 안되는데.. 적어도 우린 취업이라도 할 기회라도 있었는데 지금 애들 보면 그런 기대는 아예 하지도 않는 것 같아서 더 걱정이에요. 우리 집 고등학생들만 봐도 공부해서 뭐 하냐고 할 정도거든요.”


그렇게 그 4명은 X세대, 오렌지족, 마지막 학력고사, IMF 등 역사에 길이 남을 어휘들을 소환해가면서 서로 위로를 하기도 맞장구를 치기도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동질감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었다.


인문이 역시 이런 감정들이 비단 나만의 감정이 아니었음을 진즉에 알고 있던 터였다.


“오늘 긴 시간 수고 많았어요. 결과는 여기 3명의 팀장들이 의견을 나눈 후에 빠르면 오늘 중으로 연락을 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네~ 면접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6개월여 만에 또다시 면접을 보면서 그것도 전혀 다른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본 면접치고는 편하게 아쉬움이 남지 않을 정도로 잘 본 편이라고 스스로 자화자찬을 하며 인문이는 그 자리를 떠났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서류통과 이후 면접이라는 산을 넘기 위해 한 번 더 연습을 했다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한 인문이의 발걸음은 여느 때와 달리 가벼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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