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바로 나의 길이다.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삼겹살집의 따듯한 온기와 알코올로 달궈진 몸의 온도를 떨쳐버릴 만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인문이는 핸드폰을 들었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오전에 면접 보고 가셨던 모대학 자유전공학부예요~, 일단 합격은 하셨고요. 정확한 출근날짜는 성범죄경력조회서 제출하시고 나서 학교에서 승인 나면 다다음주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진행하면서 또 연락을 드릴게요. 출근에는 이상이 없으신 거죠?”
“네~ 팀장님, 이상 없습니다.”
“네, 그럼 또 연락드리기로 하고 성범죄경력조회서는 메일로 보내주세요~”
“네~ 잘 알겠습니다.”
드디어 25년여 전에 취득해 놓은 직업상담사 자격증으로 그쪽 분야의 일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이 펼쳐진 순간, 바로 그날은 인문이의 생일이기도 했다.
사실 그 자격증으로는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에서 일을 하는 게 보다 더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었지만, 나이 오십에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대학교에서 채용공고를 올릴 때마다 지원을 해봤지만 전혀 경험이 없는 오십대라는 게 발목을 잡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이는 어떻게든 장롱자격증의 불명예를 씻어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으로 지원서를 고치고 또 고치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사실 직업상담사 1회 합격생이었던 인문이는 자격증 취득 1년 후 졸업 직전에 당시 경인지방노동청에서 잠시 일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먼저 그곳에서 일하던 남자선배의 한 마디가 그 쪽분야에 발을 들이려는 인문이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인문씨~, 여긴 사실 나도 근무는 하고 있지만, 경제적인 보상이 좀 박한 곳이야. 물론 외벌이 가정 주부가 자격증 취득해서 일을 한다면이야 금상첨화겠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 여기서 일을 하면서 외벌이로 가정을 꾸려가기엔 좀 힘들 거야. 물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느낌은 잘 오지 않겠지만….”
그 선배 역시도 아직 미혼이었지만, 대충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던 인문은 다음 날 바로 퇴직 의사를 밝히고 힘들게 딴 자격증을 장롱에 넣고 또다시 취준생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 아마 그곳에 계속 근무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었으니 잘 된 선택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굳이 인문이가 이쪽 분야에 다시 발을 들여놓으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지금 운영 중인 학원과의 연계성이었다.
초등학생 대상의 학원이긴 했지만 어차피 고교학점제다, 자유학기제다 그런 교육정책의 변화들이 진로교육의 중요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직감한 인문이는 대학교 현장에서 관련된 분야를 직접 경험해 그것을 자기가 운영하는 학원에 조금씩 녹여서 커리큘럼도 짜보고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간 수많은 이력서를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들이밀어 보았지만 어느 한 곳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 곳이 없었다. 나이만 많았지 동종 분야 경험이 1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다행스러운 것은 몇 년 전부터 정부가 전공자율선택제를 도입하는 대학교에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 드라이브로 각 대학마다 자유전공학부, 자율전공을 다른 학과 정원을 줄이면서 확대해 가던 와중에 인문이가 지원했던 그 대학은 학부 내에 신입생들의 전공선택을 도와주는 전공선택 컨설턴트 제도를 도입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대학일자리플러스를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학 내 각 부서, 기구마다 각각 고유의 영역이 있기 때문에 업무를 분장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대학교에 일단 진학해서 1년 동안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탐색해 2학년 올라가기 직전 자신의 전공을 확정하는 전공자율선택제가 좀 더 활성화되면서 학부 소속의 컨설턴트가 신입학부생들의 전공, 진로선택에 도움을 주는 상담을 하는 것 또한 앞으로 확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인문이의 기대 역시 이쪽 분야로의 진출을 이끄는 기폭제가 되었다.
전화를 황급히 끊은 인문이는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얼른 복귀해 불판에 남은 삼겹살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 2주 정도 후에 출근하라고 전화 왔다~”
“그래 축하해, 근데 참 너 대단하다. 무슨 자격증이길래 같은 분야 경험도 없는데 출근을 시키지?”
의아한 표정으로 안교가 물었다.
“짜식!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자나~”
“암튼 축하한다! 여긴 네가 쏘는 거지?”
언제나 어디서든 어떻게 하면 상대를 덤터기 씌울까를 고민하는 강원이가 훅 들어왔다.
“당연하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분위기상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인문이가 대답했다. 오늘 술자리가 다 끝나고 헤어질 때쯤 말을 할걸.. 하는 후회가 밀려드는 찰나에
“이모~ 여기 항정살 2인분 추가요~’
역시 안교와 강원은 서수남 하청일 아저씨들처럼 참~ 죽이 잘 맞았다. 어쩜 그리 얄미운지…
그렇게 친구들과 식사를 마친 후 헤어질 무렵, 자기가 제일 먼 곳에서 왔으니 택시비는 니들이 좀 내라고 읍소하는 강원이를 무시할 수 없어 인문이가 카카오 택시를 호출했다.
“ 강원아~ 다음에 우리가 동탄으로 가면 택시 태워서 보내줘야 한다~”
안교가 제안하자
“그럼 내가 계속 이쪽으로 올게, 아무래도 두 명이 움직이는 거보다는 한 명이 멀리 움직이는 게 낫잖아?”
옆에 잠자코 서있던 인문이는 찰떡같이 얘기했지만 개떡같이 알아듣는 강원이가 못내 얄미워 저 멀리서 다가오는 택시에 얼른 밀어 넣고 싶은 심정을 애써 감췄다.
다음 날, 인문이는 성범죄경력조회서를 출력해 팀장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출근날짜가 정해지면 미리 좀 알려달라고 했다. 그 사이 전공자율선택제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참이었다.
사실 인문이는 이미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보를 습득했다.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전공자율선택제 포럼’이라는 영상을 접하고 나서 정말 오랜만에 준비하는 면접을 성공리에 마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를 했던 것이다.
이미 이 제도를 도입해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는 대학들의 성공사례를 발표하는 행사가 그간 총 3회에 걸쳐 개최된 바 있었던 것이다. 각 학교마다 약 20여분 내외의 임팩트 있는 발표로 지루하지 않게 여러 대학들의 사례를 접할 수 있었고 발표자료 또한 인터넷으로 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관련 분야 배경지식을 쌓기 위한 인문이의 이런 활동은 당연히 면접 시에도 십분 발휘되었던 것이다.
이제 2주 후에 출근하게 될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업무적응을 위해 또다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 인문이는 아직 전공을 선택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상담을 하고 정보를 제공해해 진로 선택과 결정이라는 생애전주기적인 관점에서의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휩싸였다.
정보습득을 위해 우선 동네 도서관을 찾은 인문이는 자기 자신 역시 학창 시절에 제대로 된 진로고민을 해본 적 없이 그저 남들이 가는 대학이니까,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점수니까 그런 관성적인 태도와 성적표에 드러나는 숫자만으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동시에 나이 오십에 자기 자신도 아직 진로를 확정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초조함에 잠시 이게 뭐 하는 건가라는 푸념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다만 인문이는 앞으로 수행해야 할 업무가 자식뻘 되는 신입생들에게는 조금이라도 적은 시행착오를 겪게 해야 하는 것이라는 책임감 또한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아쉬움, 푸념, 책임감 등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책을 뒤적거리며 인문이는 몇 권의 책을 집어 들고 도서관 문을 나섰다.
이론적인 부분은 책이나 영상을 통해 얼마든지 접할 수 있었지만 실제 현장에서 학생들과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내고 특히 내담자인 학생들의 생각을 어떻게 잘 끄집어내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 인문이는 직업상담사 실무교육을 수강해 볼 요량으로 또다시 인터넷이라는 드넓은 정보의 바닷속으로 푹! 빠져들었다.
모대학에서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을 타깃으로 전국 각 지역에서 실로 다양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교육 수강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 인문이는 이러한 상담 관련 실무교육에 이미 경험이 있었던 터였다.
직업상담 초보자를 위한 교육이 눈앞에 쫘악 펼쳐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인문이는 신청을 머뭇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