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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si Nov 30. 2016

길고 어두운

네가 걷는 길

너는 종종 걸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그 길이 너를 덜 외롭게 할 거라 생각했다. 연신 덥다고 이야기하는 뉴스와는 다르게 조금은 서늘한 길. 끔벅거리듯 길게 늘어선 길 위엔 주황색 가로등이 선을 이루었다. 조금은 추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길은 계속 나아갔지만, 어느 순간 사라질 것 같았으니까.
 길 위에 새로움이 가득하다는 것은 그만큼 네가 이 길을 걸은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말했다. 너는 생각했다. 여전히 발을 굴려 가며 언제였더라 생각하는 너.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너는 예뻤다. 조금 추워질 것 같은 모습을 제외하고는 하늘거리는 얇은 옷도 걷고 있는 길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생각났다며 ‘아’. 아주 작게 벌려지는 입. 너는 아주 밝고 명랑한 아이다. 맑고 깨끗하다는 광고처럼 너는 참 그랬다. 입을 아주 작게 벌려 ‘아’라고 발음하는 것. 너의 그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아마 나도 그중에 작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정확히 6개월. 너의 손가락은 작게 까딱였다. 딱히 여섯 번째 손가락을 펴기 위해 노력하진 않았다. 계절이 변하는 순간부터 반년이 흘렀음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너는 세던 손을 가볍게 내렸다.
 너는 오늘의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기념일이거나 기억해야 하는 날이라기보다 누군가가 며칠이냐 물었을 때, 제일 먼저 대답해 줄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숫자들의 조합이 하나의 그림 같은 날. 너는 그런 날을 쉽게 잊지 않았다. 정확히 하자면 너에게 그런 그림들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숫자를 모르던 어린 시절에도 너는 버스 번호만 보고도 ‘아, 할머니랑 시장가는 버스다.’라고 기억했다고 한다. 너의 어머니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천재라고 이야기했지만 너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바보처럼 웃었다. 글과 숫자를 그림으로 기억하는 방법이었을 뿐이니까. 그래서 너는 더욱 사랑스러운 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너는 사람의 이름과 생일을 그림으로 기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바람이 조금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멀리 걷지 않을 거라 다짐했지만, 오늘은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않겠다고 작게 되뇌었다. 여전히 아무도 없는 길. 작게 울어대던 풀벌레 소리는 점차 크게 울었다. 너의 숨소리는 점차 커졌고 길에 다가갈수록 더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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