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나는데…. 좀 씻고 오지.” 마포역 앞 지하상가 목욕탕 안, 조그만 건식 숯가마방 한편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막 들어와 벽에 달린 모래시계를 바라보며 기분 좋게 목과 어깨를 주무르던 중이었다. 혼잣말인가? 내용이 또렷이 들리지도 않았다. 그때였다. “아가씨, 냄새가 너무 나. 좀 씻고 와.”
그제야 돌아본 등 뒤, 별로 가깝지도 않은 거리엔 짝다리로 앉은 한 아주머니가 나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말소리에 주위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세상에, 이렇게 무례할 수가? 아니, 내게 냄새가 난다고? 난다고 하더라도 그걸 저렇게 말한다고? 내가 그래도 배운 사람인데, 목욕탕에 오자마자 체리향 바디워시로 구석구석 씻고 온탕, 열탕을 다 돌고 온 건데. 이건 혹시 영화 기생충에서 말로만 듣던 지울 수 없는 가난의 냄새? 아니 그보다, 냄새가 날 확률이 높은 쪽은 나보단 40도 넘는 바닥에서 10분은 넘게 푸지게 죽치고 있던 듯한 당신 아닌가?
‘아주머니 인중 냄새 아니에요?’ 공격적인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고 답했다. “저 방금까지 내내 씻다 왔는데요?” “들어오니까 냄새가 확 나는데. 아이구.” 더 쏘아붙이려다 심호흡했다. 가만히 있어도 열받는 숯가마에서 동네 아주머니와 언성을 높이며 소중한 주말을 망칠쏘냐. 대신 네 뜻대로는 안 되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세요‘ 되뇌며 아주머니의 요구를 묵살했다. 그렇게 한참 유유히 스트레칭을 이어나갔고, 그는 얼마 안 돼 자리를 떴다.
이겼다. 뭐 저딴 사람이 다 있어. 승리를 자축하며 다음 코스인 냉탕에 풍덩 뛰어들었다. 빠르게 퍼지는 짜릿한 찬 기운에 세포 하나하나를 소독이라도 한 듯 온몸이 시원해졌다. 내 기분만 빼고.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해 보면 제정신이 아니지 않고서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지 않는 냄새를 난다고 할 리가 있나? 그럼 진짜 났다고? 혹시 평소에도 냄새가 났는데 주위 사람들이 쉬쉬해 준 건가? 따지고 보니 언젠가부터 주말 글쓰기 교실에서도 내 옆자리는 늘 비어 있다. 아니면 60대 이상 중·노년이 대다수인 곳에서 혹시 내 상대적인 젊음이 아니꼬웠던가? 말로만 듣던 수영장 중년 여성들의 텃세 같은 것? 자기 객관화 부족에 대한 공포와 자의식 과잉 사이를 진자운동하며 탕 모서리에 팔을 괴고 물장구를 쳤다. 거기선 아담한 내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아주머니는 어딨을까.
앗, 돌아보니 어두운 숯가마방 조명에 시력 나쁜 내가 렌즈도 끼지 않았던 탓에 그의 얼굴은 전혀 기억에 없다. 푸근한 체형과 큰 가슴 정도가 얼핏 기억나는데 목욕탕에는 그런 이들이 참 많았다. 저 사람인가, 아 저 옆 사람인가. 서로가 서로를 닮아있는 살색 풍경의 익명성이 새삼스레 놀라웠다. 순간 생각했다. 정체불명의 타인이 온라인상에서 함부로 내뱉는 평가 뒤에 남겨진 유명인들의 심정이 혹 이런 걸까.
나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혀를 차며 나가버린 게 누구인지 나는 평생 알지 못하겠구나. 찾아내면 뭘 어쩌겠다고 가자미눈을 뜬 채 시야의 모든 이들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진작 집에 갔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내 옆에 이 분도 혹시 내 냄새에 괴로워하고 있나? 아니면 혹시 개차반인 건 내 쪽이었으려나? 더 유쾌한 사람이라면 다르게 웃어넘길 수도 있었을까. “아이고 제가 방귀를 뀌었나 보네요. 한 번 더 씻고 올게요.” 나는 그럴 위인이 못 되는 것이다.
냄새란 게 참 이상하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고 무엇보다 당사자에게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명백하게 사실관계가 어긋난 비난이라면 신경도 안 쓸 자신이 있었는데, 이게 정말 내 체취라면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런 생각에 몰두하던 냉탕에서 나는 하나도 쿨하지 않았다. 악취의 진위부터 화자의 의도, 내 대응의 성숙도까지.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지도 않을 생각이 마구 뻗어갔다. 아주머니 대신 스스로와 싸우며 몸에 콧구멍을 대고 연신 벌렁거리다 보니 왠지 조금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끝없는 번민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제할 방법을 찾던 나는 급기야 ‘불면증’을 최고의 스승으로 꼽던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말까지 떠올려 버렸다. “‘잠 못 이루는 밤’ 만큼 육신과 생각을 다스리고 타인을 위로하는 방법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를 부드럽게 감싸고 배려해주는 건 스스로 그런 것을 필요로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의 쿨하지 못했던 냉탕도 스승이 될 날이 올까. 벌거벗은 채 무방비로 맞이했던 무례가 끔찍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닐 이들의 밤을 헤아려 본다. 나보다 어린데도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여성이 수년 전 울 듯이 웃으며 카메라 너머로 건넸던 말 같은 것. “기자님들, 시청자님들, 저 좀 예뻐해 주세요.”
사색 끝에 겨우 냉탕을 빠져나온 목욕탕의 철학자는 다시 한번 체리블라썸 바디워시로 온몸을 박박 닦으며 다짐했다. 연예인 같은 건 절대로 하지 말아야지. 아무도 안 시켜주겠지만 꼭 그래야지. 절대로 유명해지지 말아야지. 집에 돌아와 양 겨드랑이에 드리클로를 잔뜩 바른 채 누웠다. 잠들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해명을 중얼거렸다. ‘저, 그렇게 냄새나는 사람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