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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bj Dec 10. 2022

[1] 내 삶의 조연으로 살 것인가

주인공병 치유기

의학을 공부하던 스물아홉 율리에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찾아 세상으로 나온다. 파티에서 만난 만화가 악셀과 사랑에 빠진 율리에, 하지만 삶의 다른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걸 원했고 조금씩 어긋난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율리에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달려 나간다.


내게 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나조차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숙제를 나답지 않게 꾸역꾸역 아는 척 그럴싸하게 꾸미는 데에 급급해 해치우고 있다는 감각이 요즘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내키지 않는 방식으로 궁금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 알아보고 생각하지 않는 대로 쓰는 일. 내 삶의 변두리에서 조연 역할을 하며 남을 위한 한 챕터씩을 겨우 채워주는 일. 그마저도 하루를 가고 다음날 거리를 알아보아야 하는 일. 그조차 누구도 내 능력과 노고를 존중해주거나 감사해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하루의 연속


  '직장생활이 다 그렇지'라는 체념에는 모두 힘을 잃는 고민이지만, 이런 고민 앞에 그런 위로밖에 못하는 사람이 되기 싫어 끝까지 고민하고 싶은 거다. 나는 이런 감정들로 하루하루를 채우길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다는 내 목소리를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쓸 땐 신중하고 더 귀 기울이고 싶은데 그런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다. 부끄러운 줄 알고 쓰고 싶은데.


  궁금하지도 않고 평소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일뿐더러 알고 나서도 별로 문제라고도 생각되지도 않는 내용에 대해 일주일에 두 개씩 일단 사례자를 섭외하고 일단 문제점을 그럴듯하게 지적하고 기사를 갈기란다. 내 말이 맞는지 내가 뱉어놓고도 좀 더 내가 주어가 되어 고민하고 싶은데, 방송용 그림을 확보하고 사례자를 섭외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다는 감각은 나를 꽤나 서글프게 한다.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보다 자야겠다.


  잘 알고 말하고 싶다. 몰랐던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공부하고 싶고, 남들에게 좀 더 의미 있는 깊이 있는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 영혼 없는 바이라인 말고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 쓰고 싶다.


나는 사실 내가 어떤 기사를 쓰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4년여간의 이 생활이 후회되지는 않는다. 직접 해보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직업의 실생활상.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알게 해 준 여정에는 이 회사가 준 혐오감이 큰 선생님이 되었다. 해보고 싶던 일에 몸담다 자신의 의지로 빠져나온다는 것과 해볼 기회조차 얻어본 적 없는 건 너무나도 다른 거니까


회사라는 공장의 톱니바퀴가 된다는 것.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되는 양 넘겨야 할 때도 있다는 것.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눈물을 참으며 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 타인의 태업에 경솔함에 내 결과물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것


나는 기본적으로 직장생활에 잘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납득 안 가는 건 하기가 싫고  하고 싶은 말을 참기도 힘들고 원치 않는 사람과 궁금하지 않은 내용 백문백답하는 점심 저녁도 아깝다


모험이 두려워 이 회사에 평생 다닌다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이 들기 어려울 것 같다. 결론이 구리더라도 그 과정이 도전이 내가 원했던 것이라는 감각이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남이 보기에 그럴듯하더라도 그 과정 중 내가 원했던 건 그 어느 것도 없다는 감각은 나를 죽어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이 직업 준비도, 이 직업을 4년 동안 발 담가 본 것도 모두 내가 원했던 것. 이제 내가 뭘 원하는지 더 귀 기울여 볼 때가 됐다. 사람이 원하는 건 아는 만큼 변하는데, 나는  4년간 나 자신에 대해 이 회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으니까


스스로에 대해 공부하게 해 준 기회에 감사하며, 나는 이제 내 인생의 다음 챕터로 걸어 나가고 싶은 것 같다.

나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그날에는 하루 종일 검정치마의 Flying Bobs랑 중경삼림 ost 몽중인을 번갈아가며 들어야지. 네 스스로가 원했던 일을 후회하지 말라고 해주고 인천공항 출국장 면세점의 기분으로 새 세계로 걸어 나가야지

성장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새삼 먼저 용기를 냈던 친구들이 대단히 느껴진다. 닮고 싶은 사람이 없는 곳. 배울 점 없이 영혼 없는 하루를 반복해야 하는 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용기

중경삼림의 마지막 대사는

어디로 가고 싶죠?

아무 데나,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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