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이불거' 실천한 한국의 대표적 지성인

토론토 거주 딸·손자가 말하는 함석헌 선생

by 조 욱 John Cho

씨알(민중)의 힘 강조..."그들이 역사의 중심"

믿음·생각·삶이 하나였던 세계적 사상가

교사시절 워낙 엄해 '함도깨비'로 통해


함석헌.
언론인, 출판인, 종교인, 사상가, 시민사회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언제나 중심에 있었던 행동가. 20세기 초입에 태어나 1980년대 까지 한국 현대사의 가장 굴곡지고 역동적인 순간을 민중과 함께 한 참 지성인.

20251224_1.jpg 말년의 함석헌. 그는 ‘종교 사상가’이자 ‘한국의 양심’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지식인은 많지만 지성인은 드물다.
샤르트르는 ‘지성인을 위한 변론’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자신을 갈고 닦으며 시대의 잘못을 정확히 간파하고, 이에 대해 당당히 비판하며, 상처받은 여린 영혼을 위해 실천하고 희생한다.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훼손될 때 침묵하지 않고 맹렬히 저항하며 가시밭길을 스스로 택하는 사람.”
함석헌은 씨알(민중)들이 권리와 존엄성을 빼앗길때마다 어김없이 거리로 뛰쳐 나갔다. 그 어떤 직함 하나 없이 씨알의 삶을 산 ‘바보새 함석헌’.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함석헌이지만 정작 그를 아는 씨알이 많지 않은 이유다.
그는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의 삶을 철저히 지켰다. ‘공을 이루었지만 거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노자의 말. 한국 현대를 산 수많은 위인들이 권력 앞에서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과 대조되는 삶이다.
믿음·생각·삶이 하나였던 실천가이자 시대의 예언가.
존재에 대한 근본적 고뇌와 진리의 말씀이 필요한 이 시대, 다시금 함석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함석헌 선생이 살아 생전 토론토를 3번 방문했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딸과 손주는 아직 이 곳 토론토에 살고 있다. 함석헌 자녀는 총 2남5녀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딸은 둘째 함은삼 여사다. 함 여사의 딸이 결혼해 먼저 캐나다로 건너왔고 1980년대 중반 함 여사를 초청이민으로 데려왔다. 3녀 은자씨는 LA에 살다가 작고했고 2남 우용씨는 서울, 4녀 은화씨는 호주, 5녀 은선씨는 대구에 살고 있다. 첫째 아들 국용씨와 딸 은수씨는 일찍이 출가해 북한에서 생을 마감했다.


20251224_2.jpg 토론토에 살고 있는 함석헌 선생의 둘째 딸 함은삼(오른쪽) 여사와 외손자 정현필씨.


함 선생의 자녀들은 아버지 때문에 항상 정권의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
2남 우용씨는 감시와 방해에 못이겨 일찌감치 귀농을 택했다. 함은삼 여사도 항상 공관 관계자의 감시하에 있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당시 북미지역에도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다. 함 선생이 캐나다에 오면 방문했던 토론토한인연합교회는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다. 김재준·이상철 목사를 중심으로 저항운동이 활발했다. 이 교회는 당시 교민사회에서 ‘빨갱이’로 몰려 비난에 시달려야했다. 지금은 알파한인연합교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난달 5일 본사 사옥에서 함석헌의 딸 함은삼 여사와 외손자 정현필씨를 만났다.

고(故) 조형균 박사의 딸 조은아 전 미협회장도 함께 했다. 조 박사는 함 선생의 제자로 평생을 함석헌 연구에 바친 사람이다. 함은삼 여사는 90세가 넘는 고령이었지만 2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함 여사 기억에 아버지 함석헌은 무척 엄했다. 오산학교 선생님이었던 시절, 지식에 막힘이 없고 학생들을 무섭게 지도한 것으로 유명해 별명이 ‘함도깨비’였다.
외손자 정현필씨는 유지를 받들어 한국에서 5년 동안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 일했다. 현재 함석헌 선생의 자료를 전산화 작업 중이다.


정씨에 따르면, 함석헌 사상을 연구하는 움직임은 지금도 뉴욕, 워싱턴 등 해외 각지에서 계속되고 있다. 토론토에도 몇 년전까지 연구모임이 있었지만 지금은 흐름이 끊겼다. 정씨는 지금도 세계 각지로부터 함석헌 선생 관련 자료 요청 이메일을 꾸준히 받는다. 정씨는 “토론토 한인 중에서도 함석헌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며 이메일(hyeonpil56@gmail.com)을 공개했다.


조 전 미협회장은 “아버지는 평생동안 선생님 강의를 정리해 책 출판에 전력을 다하셨고 일본에도 선생님 사상을 전하고자 번역에 심혈을 기울이셨다”며 “그때는 밤새도록 하시는 게 안쓰러워 보였는데 지금은 아버지의 삶 역시 너무나 존경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조 전 회장은 “지금 이 시대는 함석헌 선생과 같은 정신적 지주가 없다”며 “사람들이 깊은 신앙을 바탕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삶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함석헌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퀘이커와 일본 평신도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다.
퀘이커(Quaker)는 영국인 조지 폭스가 17세기 창시한 기독교 교파다.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떤다(quake)는 의미로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신성(神性) 곧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기른다면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함 선생이 한때 심취했던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는 말그대로 하나님과 통하는데 교회가 필요없다고 주장한다. 함 선생은 “나는 진리가 기독교에만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진리는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서만 독점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기독교계의 교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기독교를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된 그가 ‘종교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이유다.


함 선생은 그 자신이 퀘이커 신자였지만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는 ‘신앙적 성찰’을 반복했다. 그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오직 유한하게 무한한 존재를 이해할 뿐’이라며 모든 종교 조직과 제도는 '하느님이 창조한 세상의 현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자 정씨가 말하는 함석헌의 종교관은 보다 명확했다.
“할아버지는 노자·공자·석가 등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등 계속 파고들었다. 배타적으로 구분 짓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예수의 사상과 타종교 간 진정한 대화를 통해 신앙과 삶의 혼연일체를 꿈꾸는, 진리와 자유를 향한 ‘생명평화공동체’를 구현했다”고 그는 말했다.


함석헌은 종교와 신앙을 원천삼아 철학과 역사까지 아우르는 세계적 사상가였다.


함 선생은 평생동안 '씨알 사상' 전파에도 각별했다.

‘승자만의 기록’인 주류 역사를 부정하고 씨알을 우주와 역사의 중심과 주체로 세우는 새로운 생명철학.

씨알은 ‘나’를 나타낸다. 나는 ‘자유로운 주체’이고 주체는 물질이 아닌 '영'과 '얼'과 '정신'이다. 씨알은 ‘스스로 존재하고 변화’하는 ‘생명의 주체’를 나타낸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고난의 한국 역사’도 ‘살아있는 씨알의 역사’로 재해석된다. 예수가 고난을 통해 인류를 구원했듯, 세계사 속에서 ‘수난의 역사’을 당한 씨알들이 세상의 고통과 불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한 고위관료가 민중을 개·돼지로 비유한 적이 있었다.

‘진리는 민중에 있다’는 함석헌의 울림이 큰 이유다. “민중이 노하지 않고 역사가 나아가 일은 한번도 없다”는 함석헌. 일제와 독재정권의 수많은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신념과 민주주의를 위해 저항한 함석헌. 평생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세상의 씨알들과 대화해 온 ‘시대의 양심’.


“우주가 무한하다 하여도 그 중심은 나요, 만물이 수없이 버려져 있다 하여도 그것을 알고 쓰는 것은 나다. 거울에 비치는 네 얼굴을 보라. 그것은 백만년 비바람과 무수한 병균과 전쟁의 칼과 화약을 뚫고 나온 그 얼굴이다.”


- 캐나다 한국일보(2018.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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