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by 후현

나는 조난됐다. 어쩌다 이 섬에 떠밀려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난파된 기억은커녕 조난되기 이전의 삶 자체가 머릿 속에 없다. 내가 누구인지, 뭘 하던 사람이었는지, 가족은 어땠는지, 친구는 있었는지, 이런 것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마치 누군가 '나'라는 의식주체만 쏙 빼내간 것 같다.


생각보다 그렇게 외롭진 않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 그래서 외롭긴 하다. 외로운데, 애초에 그리워할 사람이 없다. 그 대상이 떠오르질 않는다. 오랫동안 굶으면 배가 고프다는 관념만 남고 정작 식욕 자체는 그리 강렬하지 않기 마련인데, 이 외로움 역시 비슷하다. 대상이 없는 그리움은 외롭다는 관념만 남긴 채 마음속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이런 면에서는 기억이 없는 게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기억이 있었다면 외로움에 미쳐버리기 전에 배구공 친구라도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굳이 윌슨이 필요하진 않다. 기억도 그렇다.


의식주가 어느 정도 해결되다 보니 외로움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이 섬에서의 의식주 해결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보통의 생존 상황에서는 나뭇가지와 커다란 잎사귀를 엮어 옷과 잠자리를, 열매나 물고기 수렵을 통해 음식을 해결한다. 이 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나는 섬에서 할법한 어떠한 수렵행위도 하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할 수 없다. 섬에는 당연히 바다와 숲이 있지만, 그곳엔 괴물이 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햇살에 눈을 뜬 섬에서의 첫 번째 날, 살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선 햇볕이 너무 강했다. 원래 태양이 이렇게까지 뜨거웠던가. 비교할만한 경험이 떠오르지 않았다. 물이라도 끼얹으려고 바다에 다가갔다가 덜컥 멈춰 섰다. 바다는 푸르다 못해 까맣다고 할 지경이라 그 속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을 억누르고 바닷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얼마 안 가 몸이 바닷속으로 쑥 가라앉았다. 순식간에 머리 위까지 차오른 바닷물은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쳐 겨우 뭍으로 올라왔다. 이 어두컴컴한 바다는 발걸음을 조금만 옮겨도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는 데다가 물결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구조였다. 수영은커녕 낚시조차 불가능했다. 무언가 잘못 걸리면 물고기가 아니라 내가 저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결국 바다에 접근하는 것은 포기했다. 괜히 근처에 돌이라도 던져보았지만 얼마 못 가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바다에서 탈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뜨거운 햇볕에 다시 살이 익어가기 시작했다. 물속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어 이번엔 숲 속으로 향했다. 저 안에는 햇빛을 피할 곳이 있으리라. 숲 속의 모습은 이런 기대를 과도하게 충족시켰다. 조금만 들어가도 걸어온 방향조차 헷갈릴 정도로 빽빽한 숲은 햇빛은 고사하고 처음 보는 나까지 거부하는 것 같았다. 몸에 벌레가 기어오르는 것 같은 불쾌한 감각을 꾹 참고 앞으로 나아갔다. 지나온 길에 눈에 띄는 표식을 남겨 흐려지는 방향 감각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했다. 어두운 숲 속에 빛나는 무언가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눈이었다. 그 눈빛은 내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고집스럽게 탐닉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건 자살 행위였다. 한 발자국만 더 앞으로 갔다간 반드시 살해당한다는 확신이 머릿속을 메웠다. 지나온 흔적을 곁눈질로 확인하며 천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 끔찍한 시선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뒤돌아 헐레벌떡 숲을 빠져나왔다.


결국 섬에 갇혔을 뿐만 아니라 앞 뒤가 꽉 막힌 모래사장에까지 갇힌 신세가 됐다. 무력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다는 공포에 당장 음식과 불도 없었다. 가만히 앉아 좌절할 수만은 없었기에 억지로 몸을 움직여 모래사장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섬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모래사장이 펼쳐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했을 때쯤 저 멀리 무언가 흐트러진 것들이 보였다. 간절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들은 잔해였다. 온갖 종류의 배와 비행체들의 잔해가 끝도 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옷가지와 간편식, 불을 붙일 수 있는 도구들까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허겁지겁 물과 음식부터 입 속에 구겨 넣고 땀에 절은 옷을 갈아입은 뒤 불을 지폈다. 긴장이 풀리자 금세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행기 잔해에 기대어 쓰러지듯 잠들었다.


묘한 기계음 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푸르스름한 새벽녘이었다. 기계음이 날 수가 있나? 희망을 안고 바다 쪽을 둘러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을 자랑하는 바다는 푸르스름한 하늘마저 잡아먹을 기세였다. 구조를 요청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기계음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 숲 쪽으로 다가갔다. 숲 근처 흙바닥에 거대한 반원 형태의 레버 장치가 있었다. 어제는 잔해 더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눈여겨보지 않았다. 잘못 봤었다. 이건 잔해가 아니다.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산산이 조각나 제 기능을 상실한 기계 더미들 사이에서 이 거대한 레버는 땅에 단단히 고정되어 충실하게 제기능을 수행 중이었다. 그런데 무슨 기능을? 기계음의 정체는 레버의 손잡이가 오른쪽으로 넘어가면서 나는 소리였다. 얼마 안 가 오른쪽 끝에 닿을 것 같았다. 끝에 가까워질수록 커지는 소음에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온몸이 마비되는듯한 감각을 느꼈다. 어제 숲 속에서 마주쳤던 그 시선이 다시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숲을 바라보았다. 그 괴물이다. 어제보다 훨씬 가깝다. 이제 숨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숲에만 있는 게 아니었던 걸까. 레버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손잡이는 거의 끝에 도달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내 키 만한 손잡이의 끝을 붙들고 온 힘을 다해 왼쪽으로 당기기 시작했다. 근거 같은 건 없었다. 어차피 괴물에게 잡아먹히나 도망치다 바다에 빠지나 죽는 건 매한가지였다. 뻑뻑한 레버를 죽을힘을 다해 당겼다. 마침내 레버를 왼쪽 끝에 고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계음도, 괴물도, 언제 있었냐는 듯 모두 사라졌다.




섬에서의 첫 번째 날 이후 내 삶은 일정한 루틴을 갖췄다. 먼저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온 힘을 다해 레버를 당긴다. 기계음을 듣고 깨기 위해 레버 근처에 잠자리를 조성했다. 근처에 떨어져 있는 잔해들로 만든 조악한 나의 집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금세 무너지고 만다. 보수할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건축학 지식이 전무하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넘을 수는 없었다. 레버 당기기와 밤새 비바람에 약해진 집 보수가 끝나면 다시 잠에 든다. 얼마 못 가 뜨거운 태양열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이때부턴 특별히 할 게 없다. 숲도 바다도 갈 수 없는 이 섬에 유일하게 새로운 건 모래 위 잔해들 뿐이다. 그래서 남은 하루의 대부분은 잔해를 탐색하며 보낸다.


조난 초기에는 잔해의 물건들로 구조 요청을 시도해 봤다. 무서울 정도로 복잡한 계기판을 이리저리 눌러보고, 무전기 같은 장치들의 주파수 범위를 모조리 청취해 봤다. 기체 내에 비상 버튼처럼 생긴 건 모조리 다 눌러봤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한 스프링 소리뿐이었다. 밖에서 무얼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섬을 살아가거나 탈출하는데 필요한 지식은 단 한 개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잔해에서 탈출의 실마리를 찾는 것은 포기했다.


굳이 탈출이 아니더라도 잔해를 탐색할 이유는 여전히 많다. 수렵활동이 불가능한 이 섬에서의 생존은 잔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식량은 기체에 있던 간편식, 저장식품 같은 것들로 해결한다. 엄청나게 많은 양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필요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아껴야 한다. 옷은 잔해에서 압도적인 비율을 자랑하는 캐리어에서 찾는다. 처음에는 캐리어가 아닌 그 주인의 흔적부터 찾았다. 이렇게 많은 캐리어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부 유품이라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탐색할수록 형형색색의 캐리어만 늘어날 뿐, 기쁜 마음으로 캐리어에 짐을 넣었을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지쳐버린 머릿속에서는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숲의 괴물이 쓰러진 탑승객들을 통째로 씹어 삼키는 모습이었다. 다들 레버를 당기지 못했구나. 그냥 그렇게 납득했다. 유실물의 지위를 상실한 캐리어는 내 손에 의해 철저하게 파헤쳐졌다.


캐리어는 그야말로 옷의 화수분이다. 매일매일 갈아입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많으며, 사계절에 모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땀에 젖은 옷을 걱정 없이 갈아입을 수 있고,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추운 새벽에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을 수도 있다. 이 옷가지들이 주는 부가적인 여흥도 있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아무 옷이나 다 입어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사회에서라면 절대 시도해보지 않았을 과감한 스타일링과 색상 조합부터, 어느 나라의 옷인지 파악조차 안 되는 전통 의상까지 모두 입어볼 수 있다. 성별과 사이즈를 가리지 않고 몸만 들어가면 다 입어본다. 굴러다니는 손거울에 비춰보면 매번 색다른 꼴불견을 마주할 수 있었다. 못났으면 어떠한가. 이곳에선 그 누구도 나의 의상을 평가하지 않는다. 오늘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발견하고 모두 입어보았다. 턱시도는 팔다리가 맞지 않아 아빠 옷을 훔쳐 입은 모양새가 됐다. 드레스는 차라리 아빠 옷을 훔쳐 입는 게 훨씬 나을 정도로 엄청난 몰골을 선사했다. 거울을 보며 한참을 웃다가 점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드레스와 턱시도를 모두 찢었다. 그 후 한동안 옷을 입어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소년은 낚싯배 위에 있다.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주변의 어른들은 모두 낚시에 여념이 없어 이를 보지 못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아이들이 모두 날아갔다. 소년은 손에 잡히는 걸 붙잡고 간신히 버텼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소년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뱃머리로 다가갔다. 거대한 상어의 실루엣이 배를 스치듯 지나갔다. 괴롭히던 아이들은 모두 바다에 빠졌다. 중년의 남성이 나타나 소년에게 구명구를 찾으라고 지시하고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중년 남성은 허우적거리는 아이들을 한 군데 모으기 시작했다. 소년은 남성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구명 행위가 납득되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배에도 구멍이 뚫려 가라앉고 있었다. 결국 아이들과 남성 모두 상어의 아가리로 빨려 들어갔다. 마지막에 잡아먹힌 남성은 나를 향해 무언가를 말했다.




"실망이다"

꿈에서 본 남성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실망이라니, 나한테 하는 소린가? 지금의 나에게 누가 실망 같은 소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빌어먹을 섬에 혼자 조난된 게 내 탓인가? 아무도 구조하러 오지 않는 게 내 잘못인가? 실망이라니, 오히려 내가 당신들에게 실망이다. 이렇게 거대한 섬에, 이렇게 수많은 잔해가 쌓일 때까지 그 누구도 찾지 못했다니.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 차라리 그 중년 남성이 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꿈에 나온 실망이다는 내가 타인에게 한 말일 것이다. 나는 그럴 권리가 있다. 점점 커지는 기계음에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허겁지겁 일어나 레버를 당겼다.


섬의 잔해는 옷과 음식을 해결해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문화생활까지 향유할 수 있게 해 준다. 스마트폰, 태블릿, 전자책 리더기, 종이책 등. 게다가 보조배터리까지 잔뜩 있어 충전도 가능하다. 물론 전기를 구할 방법이 전혀 없는 섬에서 언제 동날지 모르는 보조배터리를 함부로 쓸 수는 없다. 구조 요청에 활용될지도 모르는 전자기기들은 한 곳에 모아두고 종이책들을 펼쳤다.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종류는 자기 계발서이다. 온갖 종류의 투자 방법, 창업, 업무 방식이나 CEO들의 성공 신화같은 것들이 화려하게 적혀있었다. 아무리 봐도 운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열등한 멍청이들로 만드는 글귀들을 마주했다. 기분이 불쾌해져 책을 덮었다. 어차피 이 섬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얘기들일뿐이다. 성공하려면 적어도 비교할 수 있는 실패한 다수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 그런건 없다. 멋져 보이는 인문학책들을 읽어보려 했지만 영 집중이 되질 않아 금방 금방 다른 책으로 넘어갔다. 어떤 사람이 폭력을 근본적으로 거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의 책을 조금 읽었다. 거부하려 할수록 세계의 폭력성에 자꾸만 휘말렸다.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이 섬에 온다면, 나와 같은 상황이 될 수만 있다면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마음이 아파 다 읽지 못하고 덮고 말았다. 주인공을 살았을까. 살아남길 바라는 나의 마음 역시 일종의 폭력일까.


정신분석학자의 책도 조금 읽었다. 거의 읽지 않고 넘기기만 하다가 눈을 사로잡는 단어가 있어 잠시 멈췄다. 애도와 우울은 둘 다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했을 때 주체가 보이는 반응이다. 애도는 대상의 상실을 받아들이고 그 대상에 쏟았던 에너지를 철회하여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우울은 대상의 상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그 대상과 동일시하면서 자기 파괴적인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나는 나 자신을 잃었다. 그 의식을 애도하기엔 쏟았던 에너지도, 복귀할 일상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울한 것도 아니다. 대상의 상실을 거부하기엔 붙잡고 있을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주변인들은 어떨까. 그들 역시 나를 상실했으니 애도와 우울을 겪고 있을까. 내가 이 섬에서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상실하지도 않고, 에너지도 쏟지 않고, 자기 파괴적인 무력감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서로를 천천히 잊어가며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아니지. 나는 이미 잃어버렸으니 반대쪽만 잊으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너무 어려운 책이라 금방 포기하고 이번엔 좀 더 짧은 책을 골랐다. 어떤 남자가 삶을 견뎌내지 못하고 자꾸 죽으려고 한다. 혐오감과 죄의식으로 점철된 생이 어쩐지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왜 자꾸 여자랑 같이 죽으려고 하는 거야. 혼자 죽을 용기조차 없는 걸까. 아 이렇게 또 자기혐오의 굴레로 빠지는 거구나.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 같아 조금 웃겼다.




남자는 크루즈보다는 조금 작은 배 위에 있다. 배 위에서는 선상 파티가 한창이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한 손에 샴페인을 들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남자가 있는 테이블에는 나이 차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두 여성이 있었다. 둘은 쉬지 않고 말다툼을 벌였다. 남자는 둘을 중재해 보려 대화에 끼어들었다. 남자가 대화에 참여하자 도리어 언성이 더 높아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화가 났다. 자신의 의도가 통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런 얼토당토않은 언쟁에 자신도 휘말렸다는 것에 화가 났다. 같이 언성을 높이려던 남자는 문득 두 여자의 손에 시선이 멈췄다. 둘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남자는 잠시간 붙든 두 손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티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부터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까지 다양했다. 남자는 동년배 그룹에 슬쩍 끼어들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은 남자를 환대해 주었다.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침묵이 도래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어색한 고요함이 파티장을 감쌌다. 남자는 당황하여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 다른 그룹으로 향했다. 하지만 다른 그룹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남자를 반겨줬지만 얼마 가지 않아 침묵이 시작됐다. 갈 곳을 잃은 눈동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들고 있던 잔으로 향했다가, 마침내 바닥으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남자는 화장실을 핑계로 파티장을 벗어나 배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다들 파티장에 있는지 배의 반대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까의 침묵을 만회라도 하듯이 파티장에서는 대화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파티장의 분위기를 감싸고 남은 여분의 ‘Nearer, My God To Thee’의 선율이 내가 있는 곳에 겨우 닿았다가 이내 바닷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남자는 배 끝에 서 찬바람을 맞으며 골몰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일순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남자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 배 바깥으로 떨어졌다. 꽤 높은 곳에서 떨어졌지만 다행히 기절하지 않고 수면으로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남자는 도움을 요청하려 소리를 지르려다 이내 목소리를 삼켰다. 우선 창피했다. 혼자 바닷바람에 발을 헛디뎌 배에서 떨어지다니, 이런 멍청함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파티장이다. 아마 내가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면 파티는 끝이 날 것이다.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나를 구하려 할 것이고 파티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난간을 붙잡고 걱정 어린 눈빛으로 구출 장면을 바라볼 것이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나는 저 광경을 깨고 싶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몸을 붙들고 배 쪽으로 다가갔다. 비상출입구나 하다못해 구명 튜브 같은 것이라도 메여 있으리라. 잠이 오기 시작했다. 몸을 계속 움직여야겠다. 문, 조끼, 튜브, 보트, 어딘가에 분명히...




한껏 불쾌해진 기분으로 일어나 레버를 당겼다. 기계음 때문인지 점점 악몽이 심해지고 있다. 컨디션도 악화되고 있다. 잠자리를 해체해서 레버와 조금 떨어진 위치에 다시 만들었다. 저 굉음은 이 정도 거리를 벌렸다고 안 들릴 수준의 소리가 아니었다. 제시간에 일어나는데 별 지장은 없을 것이다. 다만 악몽을 조금이라도 덜 꾸길 바랄 뿐이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전자기기들의 전원을 켜기 시작했다. 역시나 데이터 같은 건 잡히지 않았다. 애초에 구조 요청을 목적으로 전원을 킨 것이 아니었다. 보조배터리를 잔뜩 가져다 놓고 본격적으로 구경을 시작했다. 구조 요청 방법을 연구해도 모자랄 소중한 전기를 시간 때우기에 날리고 있다는 죄책감이 방해됐다. 연이은 악몽에 대한 보상심리로 감싸 한구석에 치워버렸다. 처음에는 사진첩을 구경하려 했으나 범죄를 저지르는 기분이 들어 그만두었다. 대신 다운받아놓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금방 질리기도 하고 휘발되는 전기가 자꾸만 떠올라 짧게 조금씩만 봤다.


나무 괴물을 만난 소년을 봤다. 어른들에게서 탈출하여 바다를 향해 무작정 달리는 소년도 봤다. 자꾸만 사람들에게 버려지는 여자도 봤다. 스스로를 살덩이에 가둬버린 남자도 봤다. 개구리비가 내리는 세계, 이상한 이름을 가진 행성과 충돌해 종말을 맞이하는 세계도 봤다. 서로의 이름만 부르는 두 로봇이 참 귀여웠다. 물수제비, 돌 던지기, 나뭇가지 옮기기 같은 시답잖은 놀이들에 몰입하는 남녀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행복하려고 노력할수록 파경을 맞이하는 부부의 이야기가 많았다. 인공지능, 범죄자, 이미 애인이 있는 사람들과 사랑에 빠져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볼수록 피곤해지는 영화들에 지쳐 장르 영화를 찾아봤다. 이야기 순서가 뒤죽박죽인 기묘한 범죄 영화를 찾았다. 이상한 편집만큼이나 대사도 이상했다. 어떤 남자가 맥도날드의 Quarter Pounder with Cheese 버거를 유럽에서는 Royale with Cheese 버거라고 말한다며 실실거렸다. 파운드는 미국에서만 사용하는 단위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파운드를 안 쓰는데 왜 쿼터파운더 치즈버거라고 부르게 된걸까? 로열 치즈버거라고 하는 게 맞지 않나? 쿼터파운더나 로열이나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건 매한가지이니 별로 상관없을 것 같다. 어차피 둘 다 이 섬에는 없다.




남자는 비행기 안이다. 옆에는 또래의 여자가 타고 있다. 갑작스런 경보음과 함께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승무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쓰러지고 안내방송은 나오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나는 후회했다. 안절부절못하지 못하고 응급매뉴얼을 찾으며 중얼거렸다. 휴가를 오지 말걸. 휴가를 국내로 갈걸. 휴가 날짜를 미룰걸. 왜 이 나라를, 이 비행기를 선택했을까. "무서워" 여자가 말했다. 무섭지? 미안해 지금 매뉴얼을 찾았으니까 해야 할 거 알려줄게. 침착하면 살 수 있을거야. 이제 곧 산소마스크 떨어질 거고… 그래, 좌석 밑에 구명조끼가 있어. 그리고 어... 어... 여자가 내 팔을 붙잡았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네가 무서워". 비행기에 커다란 구멍이 났다. 여자는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안전벨트를 붙잡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뜨자 평소와는 다른 위화감이 느껴졌다. 평소보다 더 기분 나쁜 꿈이었나? 하늘이 좀 더 밝은 거 같기도 하고... 아 알았다. 소리다. 기계음이 들리지 않는다. 악몽에서 나를 어거지로 끄집어냈던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레버가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보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괴물이 숲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지금 등을 돌리면 그 소름 돋는 눈빛을 삶의 마지막 광경으로 마주하게 되리라. 조심스럽게 상체만 일으킨 채 미리 구비해 뒀던 구명조끼를 천천히 입기 시작했다. 굳어가는 몸에 억지로 칼을 씌우는 것 같았다. 버클을 하나씩 채울 때마다 가까워지는 사형 집행인의 숨결이 느껴졌다. 마지막 버클을 채운 순간 사형장으로 변해버린 나의 작은 집을 뛰쳐나와 바다로 달리기 시작했다. 괴물이 물에 들어오진 못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뛰었다. 발에 차가운 감각이 느껴진 바로 다음 순간 몸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동여맨 구명조끼는 유속에 휩쓸려 순식간에 벗겨져버렸다. 괴물에게 죽는 것이 지금보다 덜 무서웠을까. 부질없는 고민과 함께 의식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무언가가 얼굴을 간지럽혔다. 풀이었다. 나는 고른 잔디밭에 누워있었다. 적당한 수분기와 부드러운 토양, 기분 좋은 바람이 느껴졌다. 햇살이 따듯하다. 이런 태양 아래라면 평생 그늘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잘 보이진 않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쪽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이쪽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설마 날 부르는 건 아니겠지. 그럴 일은 없다. 그야 나는 조난됐는걸. 섬. 그래 나는 섬에 조난됐다.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작은 언덕 같은 것이 보였다. 크기가 너무 작아 봉분처럼 보였다. 그 위에 익숙한 무언가가 보였다. 레버였다. 매일 새벽마다 기를 쓰고 당겼던 그 레버다. 오늘은 레버를 넘기지 못해 바다에 빠지고 말았었다. 아, 이건 환상이구나. 이 빌어먹을 섬이 나를 죽이려고 보여주는 환각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레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무시한 채 앞만 보고 뛰었다. 온몸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자꾸만 가라앉는 몸을 필사적으로 휘적거렸다. 언덕에 다다랐을 때는 거의 기어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마침내 언덕에 손이 닿는 순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섬으로 돌아왔다. 젖은 채로 태양열에 지져지기 시작한 몸뚱이를 작은 집에 내던졌다. 기절할 것처럼 피곤했지만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몸을 억지로 일으켜 레버에 다가갔다. 레버의 손잡이가 오른쪽 끝에서 왼쪽으로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 내일부터는 레버를 반대로 당겨야 하는구나. 하고 납득하고 말았다. 오늘처럼 실수해서 레버가 왼쪽 끝에 닿으면 그땐 어떡하지?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실수하지 않으면 된다. 레버가 왼쪽 끝에 닿는 일을 절대 만들지 않으면 된다. 한 번 죽을뻔했으니 더 이상의 실수는 없다.


레버에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아 오늘은 보수를 안 해도 될 것 같다. 하루 정도는 잔해 탐색 같은 건 생략해도 괜찮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잔해가 늘어난 것 같다. 기분 탓일까. 더 이상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냥 이대로 내일까지 쭉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 일찍 잠들면 내일 새벽에 일찍 깨겠지. 그러면 레버를 좀 더 안전한 시간에 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참에 아예 수면 루틴을 바꾸는 것도 좋겠다. 잘 된 일이다. 죽을뻔했지만 살아남았다.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다. 쏟아지는 눈꺼풀 사이로 띄엄띄엄 드는 의식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은 악몽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달리기